AGB닐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을 기점으로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의 종료에 대한 인지율이 90%를 넘어섰다. 종료까지 8개월 정도 남아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료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는 사안 자체가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민감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란 단순히 기존 아날로그 방송을 고화질, 다채널로 전환시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새로운 환경, 이를 통해 모든 국민이 최대 이익을 얻는 디지털 격차의 해소와 연계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매체 환경, 시장 변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뜨겁게 충돌하고 있다. 주파수 재배치, 재전송, 무료 다채널 도입 요구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방송통신위원회의 행보는 너무나 조심스럽다. 심지어 2011년 방통위의 정책방안 자료에는 공공연히 ‘시장 변동 최소화’가 근거 내용으로 명시되기도 했다. 이는 현재의 소극적인 아날로그 종료 정책의 배경이 됐다. 올해 12월 마무리되는 종료 정책은 아날로그 종료시 TV를 볼 수 없는 가구의 시청권 방어 차원으로만 제한되고 있다. 이에 유료방송 가입 가구, 디지털TV나 튜너·공시청 시설 보유가구 등은 대상 가구에서 제외돼 달랑 아날로그 TV 직접 수신 가구 5.6%가 그 대상이 됐다. 이는 디지털 전환의 실제 효과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현실을 의미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과도기의 정책 방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얼마나 지속될 지도 불투명하다. 실제로 유료방송 중심의 아날로그 환경을 바탕으로 일찍이 종료를 실시했던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의 경우 아날로그 송출 중단은 쉽게 이뤄졌지만 아날로그 케이블의 비중은 상당하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TV를 구매하고도 왜곡된 화면을 보아야 하고 아날로그 TV를 폐기처분 하는 등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실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오래오래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에 디지털 전환 정책을 비판적으로 감시하기 위한 시청자 진영의 연대와 노력이 분주해지고 있다. 시청자 단체는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사업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방송통신 환경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갈등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원칙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아날로그 방송 환경에서 배제됐던 매체선택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에 있다.

디지털 직접 수신 인프라를 구축해 무료방송을 원하는 사람은 무료방송을, 유료방송을 원하는 사람은 유료방송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난시청으로 인해 유료방송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가구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전환 정책의 수혜에서 배제된 것도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미래 환경이 보장될 수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다양한 콘텐츠와 적절한 가격이 보장되는 방송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직접 수신 환경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 콘텐츠와 서비스는 국내외 자본에 의해 점유되는 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자본에 휘둘리는 불행한 미래를 예고할 수밖에 없다. 망에 대한 사적 소유가 어떤 현실을 가져오는지는 KT의 민영화, 9호선 요금인상 사례 등을 통해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이는 공공적 망의 유지 보수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무료 서비스가 안정화될 때 유료 서비스의 품질 제고도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날로그 방송 환경에서 지상파와 케이블 공조가 실질적인 유료방송 콘텐츠와 서비스의 질적 제고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임승차한 종편의 미래도 원칙이 바로 서면 기댈 곳이 없어진다.

이처럼 직접 수신 인프라 구축을 통해 시청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공공서비스를 안정적 궤도에 올려놓는 일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내 미디어 정책의 현안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많은 전문가가 언급하였던 것처럼 디지털 전환은 우리 방송환경의 누적된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향후 디지털 전환과 정에서의 원칙적인 접근, 시청자 중심의 해법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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