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KBS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에 ‘깜작’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조대현 KBS 사장은 자신의 연임 프로젝트에 ‘까메오’로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지만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애국 마케팅에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청자들은 사유화돼 정권의 프로파간다로 몰락하는 씁쓸한 극 한편을 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KBS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국민대합창-나는 대한민국’ 1부 ‘특별 게스트’로 소개받고 무대에 등장해 “오늘은 우리나라가 광복 70주년을 맞는 축제의 날이다. 이 뜻 깊은 날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가 돼 광복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애국가’를 참가자들과 제창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여동생’으로 불리는 김연아와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나는 대한민국’ 프로그램이 조대현 사장의 연임 프로젝트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양 노조는 △갑작스러운 프로그램 편성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한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편성 △자체 제작 단일 프로그램에 50억원이라는 거액 예산 투입 △예산 부족으로 기자를 기업 협찬·광고에 동원하고 타 프로그램 예전 전용 등 준비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추진되는 정황을 제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BS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국민대합창-나는 대한민국 프로그램에 참여해 김연아씨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조대현 사장이 사장 임명권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프로그램에 초청해 연임을 낙점 받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방송을 하루 앞둔 14일 성명을 내고 “‘나는 대한민국’은 임기만료를 앞둔 조대현 사장이 정권에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정치적 쇼일 뿐”이라며 “사장직 연임이라는 사익추구를 위해 공공재인 전파와 공영방송의 인적·물적 자원을 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KBS를 권력에 팔아 관제방송, 국영방송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방송의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 같았다. 출연 시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방송에서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우리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뭉쳐서 세계가 놀란 경제 발전과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왔다”며 산업화의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했으며 “광복의 기쁨을 완성하는 마지막 길이 되는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국민들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이 최근 띄우고 있는 ‘건국절’과 ‘통일’ 주장의 완곡한 변형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BS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국민대합창-나는 대한민국 프로그램에 참여해 해방둥이합창단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건국절 주장은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일을 일컫는 것으로 1945년 해방 국면의 친일-독립 세력 구도를 지우고 좌-우익의 이념 대립을 강화하는 프레임이다. KBS는 이런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 세력의 틀짓기에 공영방송이라는 공공재를 내준 것이다. 

KBS 한 PD는 “KBS본부나 PD협회 등에서 대통령을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것에 대해 ‘국가주의 행사’나 ‘정부 홍보 방송’이라는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사측은 처음부터 대통령을 출연시킬 목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PD는 이어 “정부 행사를 중계한다면 모르지만 특정한 목적으로 세팅된 자리에서 대통령이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며 “KBS가 북조선TV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영방송에 나와서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도 난센스로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 낼 만큼 명창 가수가 아니라면 15일 오전 정부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정연우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애국가 제창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사심 없이 대한민국을 새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될 것”이라며 “광복절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조대현 사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각자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 이벤트로 전락했다”고 비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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