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상 초유의 대국민 사기극 Mnet 프로듀스 전 시즌 과징금”. 지난달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자료 제목이다. 이날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 임시회의에서 CJ ENM 관계자 의견을 청취한 심의위원 전원이 제재 최고수위인 ‘과징금’ 의견을 모았다. 최근 공개된 회의 속기록을 통해 살펴본 CJ ENM 경영진의 입장은 ‘조작사건은 개인의 일탈이며 우리는 피해자’라는 사태 초기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직문화를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방안은 확인할 수 없었다. 순위조작으로 피해를 본 연습생과는 개별 협상 중이지만 누군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로 얻은 수익금을 KC벤처스 등 펀드조성으로 환원했다고 했지만 CJ ENM과 KC벤처스 연관성을 묻는 질문에는 “파악해보지 않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올해 꾸려진 시청자위원회에서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7월22일 Mnet ‘프로듀스101’, ‘프로듀스101 시즌2’, ‘프로듀스48’, ‘프로듀스 X101’이 객관성 위반 등에 따라 심의 안건으로 올라왔다. 임형찬 CJ ENM 전략지원실 부사장과 신정수 CJ ENM Mnet 사업부장이 의견 진술을 위해 참석했다. 당시 순위조작사태의 실질적 책임자라 볼 수 있는 신형관 전 CJ ENM 음악콘텐츠본부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Mnet은 최근 조작사태의 책임을 물어 신 전 본부장을 인사 발령냈다고 밝힌 바 있다. 

▲프로듀스101 시즌1의 한 장면. 
▲프로듀스101 시즌1의 한 장면. 

 

“조작된 결과 뻔히 알고 있으면서 순위 발표 직전에…”

허미숙 소위원장은 “담당 PD(안준영)는 재판과정에서 투표 결과 순위를 조작했다고 시인했다. 시청자 투표수가 조작된 내용을 방송한 것인데, 객관성 위반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임형찬 부사장은 “제작진의 불법 행위가 확인이 되었고 당사로서는 그에 대해서 사전에 몰랐고 또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미연의 시스템이 없었음에 대해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관련 조항이 위배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했다. 

이에 허미숙 소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개된 판결 내용을 보면 방송사와 담당 PD에 대한 여러 죄명이 있는데, 그중에 순위 발표 직전에 오디션에 참가한 연습생들의 긴장감과 스릴감을 사전에 극대화했다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제작진이 조작된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순위 발표 직전에 마치 과정이 공정한 것처럼, 극적인 효과가 나올 것처럼 시청자를 긴장감과 스릴감 속으로 몰고 가는 쇼잉을 4년 동안 매주 벌여왔다는 것이잖아요.”

허미숙 소위원장은 “PD나 제작진이 수년 동안 이런 조작을 벌이고 있었는데 지금 방송사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라고 추궁하자 임형찬 부사장은 즉답하지 않다가 재차 추궁이 이어지자 “제작진이 그런 불법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저희 당사가 당시에 몰랐었고, 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저희가 인정을 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앞선 대답을 반복했다. 

CJ ENM이 피해자라는 입장이냐는 질문에는 “지금도 수사 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당사는 업무방해 피해자로 되어 있지만, 계속 말씀드렸듯이 제작진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사전에 몰랐고 그것을 미연에 방지할 만한 시스템이 없었다는 점, 그것은 사실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크게 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강진숙 심의위원은 조작사태 이후 CJ ENM이 마련한 시청자위원회를 두고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있는지 운영진의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심의) 기재 내용도 심의 이슈가 없을 경우를 제외하면 상호명, 브랜드에 대한 블러처리, 자막고지, 비속어 표현, 이런 내용 등에 불과다. 정작 지금 위반사항으로 되었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14조인 객관성 조항에 관련해서는 심의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청자위원회는 지난 4월 서면으로 첫 회의를 했고 지난 6월에서야 첫 대면회의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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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중인 프로듀스101 메인PD 안준영씨(가운데). ⓒ연합뉴스

 

“이거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집단적으로…”

이소영 심의위원은 “시즌1에서는 1차 선발대상자 4명에 대해서 순위가 조작됐다라고 되어 있고, 시즌2에 대해서는 1차 선발자 대상에서 2명, 최종 선발자에서 2명, 이런 식으로 변경이 되었고, 시즌3에서는 아예 최종 멤버 선정 단계에서 미리 12명을 선정했다라고 하는 게 판결 내용인데 맞느냐”고 확인한 뒤 “시즌 3·4에서 (메인PD가) 기획사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멤버 선정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했느냐”고 물었다.임 부사장은 “저희가 상세한 내용을 파악한다든지 하는 그런 내부조사를 할 경우는 또 다른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해서 하지를 않았다”고 답했다. 

이소영 심의위원은 이어 “시즌 1·2에서는 순위조작으로 인해 순위가 내려가게 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다음에 시즌3에서도 연습생 최종 12명 선정 단계에서 실제 투표 결과와 다르게 결국에는 12명에 들어가지 못한 후보자가 누구인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파악이 안 괸 것이냐”고 물었다. 임 부사장은 “피해자들에 대해서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지금 현재 개별협상 중”이라고 답한 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파악이 된 상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몇 명인지 또 누구인지 그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경우에는 그들에 대한 2차 피해가 우려가 돼서 밝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아이돌학교’에 대해서도 유사한 순위조작 의혹으로 제작진 2명이 불구속기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수사 과정에 있어서 저희가 상황을 파악한다든지 관련자 진술을 듣고 조사하는 것은 부적절해서 아직 파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문제들이 여러 프로그램에서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된 원인에 대한 회사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콘텐츠 업계 선도 기업으로서 또 한류 세계화에 앞장서 나가려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보니 그런 미비한 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며 엉뚱한 답을 했다. 

▲프로듀스101 시즌2의 한 장면.
▲프로듀스101 시즌2의 한 장면.

이 같은 답변에 이소영 심의위원은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는 조직문화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형사판결이 근본적인 조직문화 변화를 위한 답을 주지 않는다”며 “회사가 이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판결문에 보면 시즌1에는 안준영 PD 한 명이 그걸(조작) 한 것으로 나와요. 시즌2로 가면 안준영, 김용범 두 사람으로 늘어납니다. 시즌 3·4에는 이 두 명에다가 이 모 PD까지 3명으로 늘어나요. 이거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 아니라 조직 안에서 집단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확산되고 있었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다른 프로그램도 유사한 의혹으로 또 다른 PD들이 불구속기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 저는 이 문제가 시스템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그 자리에 안 모 PD, 이 모 PD, 김 모 CP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소영 심의위원은 “이 사람들(안준영·김용범 등)을 희생자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며 “왜 그런 시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오는지에 대한 부분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정수 부장은 “MBC에서 한 20년 정도 PD 생활을 하다가 5년 전에 Mnet으로 왔다”며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고쳐나가야겠다는 그런 지시 같은 것들을 위로부터 받았다. 좀 더 좋은 조직문화, 모든 구성원들이 공적 마인드를 갖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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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 ⓒ연합뉴스 

 

“4개의 시즌, 조작 반복되고 가담자는 점점 늘어났다”  

CJ ENM의 펀드 조성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신정수 부장은 이날 “프로듀스 시리즈를 통해 얻은 수익이 300억 정도 되는데 수익금에 대해 KC벤처스라는 253억 규모의 투자조합 펀드조성을 이미 완료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 특별기금 50억을 출연하고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최대 250억 원의 지원금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부장은 “운영 등은 펀드운용사와 콘텐츠진흥원에 일임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허미숙 소위원장은 “300억 규모 재원을 음악 시장에 환원했다고 했는데 KC벤처스나 KC비바체 투자조합이 CJ ENM과는 어떤 관계인가”라고 물으며 “펀드 운용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면 피해를 봤던 여러 제작사가 혜택을 받게 되겠지만 만약 CJ와 연결돼 CJ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가 이익을 얻는 불합리함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임 부사장은 “파악을 안 했다”며 “파악해서 별도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이소영 심의위원은 의견 진술이 끝난 뒤 “2016년부터 4년에 걸쳐서 4개의 시즌이 진행되어왔었는데 (조작이) 반복되어왔고 가담자는 점점 늘어났다. 내부적으로 제어가 되거나 통제가 되지 않았다면 책임은 방송사에 있다”며 “회사의 조직문화, 실적주의 같은 것들을 통해 이것들(순위조작)을 요구하거나 묵인한 정황은 없는지 진솔하게 내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어야 시스템도 잘 돌아갈 수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내용은 (의견 진술에서) 없는 것 같다”며 ‘과징금’ 의견을 냈다. 

허미숙 소위원장 또한 “위원회가 지금까지 심의해 온 단순한 객관성 위반이 아닌 시청자를 기만하는 객관성 위반이어서 엄중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과징금 의견을 냈다. 이날 심의위는 전원 의견으로 ‘과징금’을 결정했다. 조만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과징금 결정 여부가 최종 논의된 뒤 액수가 정해질 예정이다. 

안팎에선 프로그램 1건당 3000만원, 총 1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예상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대미문의 사기행각을 벌인 거대 재벌 방송사에 부과할 수 있는 벌금치고는 초라하다. 이에 송일준 전 한국PD연합회장(현 광주MBC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PD 한두 명의 범죄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용인되는 회사 문화 자체가 범죄적이다. 모기 눈물만큼도 안 되는 과징금이 아니라 허가 자체를 취소하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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