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하나 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검열’이 사라진 것은 언제일까? 직접적으로 1980년대나 1990년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쉽게 맞출 수 있겠지만, 이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검열’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한국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사전 검열’이 존재했던 국가이다. 박정희의 집권 이후 오랜 시간 이어진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은 현대 국가에서 시민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수많은 권리를 끊임없이 제약해왔다. 해외 국가들이 68 혁명이 한창 전면적으로 일던 시기에 시민들이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검열적 제도에 반기를 내걸며 표현의 자유가 확충이 되던 시기, 한국에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3선 개헌 시도가 통과되었을 따름이다.

결국 명시적으로 사전 검열이 속속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영화, 음악, 출판물,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던 사전 검열이 연달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사전 등급분류’나 ‘사후 심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완벽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사전 검열은 폐지되었다 해도, 사실상 사전 검열과 다르지 않거나 여전히 정부가 개입하는 심의 시스템으로 인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의 심의 판정이 난무하기도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1996년 사전 검열이 위헌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등급보류’나 ‘등급외’와 같은 사실상의 사전 검열에 해당하는 등급은 2001년까지 유지해온 전력이 있다. 이후 상영 금지와 다르지 않은 ‘등급외’가 재차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자 홍보 등에 제약을 받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도록 신설된 ‘제한상영가’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지만, 너무나도 까다로운 제한상영관 설치 및 운영 조건으로 인하여 한국에는 제한상영관이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다시 사실상의 상영 금지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음악 역시 2009년 이후로 한동안 동방신기의 <MIROTIC>이나 비의 <Rainism>, 이외 가사에서 직접적으로 술을 언급한 노래들이 갑작스럽게 ‘19세 미만 이용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심의에 대한 신뢰를 심의기관 스스로가 내팽개치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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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나 음악 이상으로 심의에 대한 불신이 가장 심하게 발생하는 문화 영역은 결국 만화일 것이다. 만화는 오랫동안 제대로 된 문화 매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심심하면 ‘불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만화를 단순히 ‘아이들의 유희거리’로만 보는 시선은 해외도 매한가지였지만, 해외 각국의 경우 1960년대 이후 대중문화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68혁명의 여파로 인한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확산으로 만화에 대한 시선이 점차 다양해진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오랫동안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이었으며, 대중문화 산업 역시 2000년대 이전까지는 영세하거나 주먹구구식 운영에 머무르는 마당이었다. 그나마 1980년대부터 육영재단의 ‘보물섬’, 최초의 성인 독자 대상의 만화잡지이자 사회 풍자의 역할도 겸했던 ‘만화광장’, 일본식 만화 잡지 시스템을 도입하여 지금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아이큐 점프’ 등의 만화잡지가 생겨나며 만화 시장 자체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한국 사회가 만화를 낮게 바라보는 인식과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진 사전 검열까지 이어지면서 만화가들은 여러모로 자존감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더군다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사전 검열에서 사후 심의로 전환되며 창작에 대한 사정이 이전보다는 원활해졌던 다른 문화 영역과 달리, 한국 만화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바로 한국 만화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다들 알 ‘청소년보호법’이 낳은 논란이다. 청소년보호법 자체는 사전 검열이 속속 위헌 판정을 받고 사라지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사후 심의를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과 더하여 근거 규정을 만든 법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한창 ‘일진회’를 비롯한 학교 내나 청소년 사이의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정부나 사회는 그 책임의 일부를 ‘폭력 만화’에 전가했고, 하필 그 시기는 청소년보호법의 시행을 앞두던 시기였다. 청소년보호법의 시행과 함께 만화는 사전 검열에서 사후 심의로 전환되었지만, 만화에 대한 악감정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오히려 사전 검열에서 통과한 만화가 사후 심의 결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판정되는 일이 발생하거나, 보수적 시민단체의 고발로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를 비롯해 이현세, 이두호 같은 중견 만화가들이 대거 입건되는 사태도 있었다.

다행히도 ‘천국의 신화’는 2002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만화에 대한 사후 심의도 비교적 안정화되었지만 그 시절을 경험한 만화가들에게 1997년부터 2002년 사이의 경험은 무척이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오죽하면 ‘만화의 날’을 만화가들의 청소년보호법 반대 시위가 대대적으로 발생했던 11월 3일로 정했을까. 그 이후로도 한국 만화계는 ‘표현의 자유’에 지극하게 민감한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몇몇 웹툰 작품에 대해서 폭력성 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처분을 내리려 하자 이러한 시도가 검열이라고 판단하며 대대적인 반대 운동에 나서는 ‘노컷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었다.

이후 한국 만화에서 ‘검열’에 대한 이야기는 한동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0년, 다시 한국 만화에서 ‘검열’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까지는 정부 기관의 사전 검열이나 직접적인 작가 입건, 또는 사후 심의 이후로 발생하는 여러 트러블에 대한 지적으로 ‘검열’을 언급했었지만 2020년 현재의 ‘검열’은 독자층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래의 결을 ‘검열’이라 언급하는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가장 먼저 ‘검열’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웹툰협회이다. 웹툰협회는 지난 달, 기안84의 네이버 연재작 ‘복학왕’의 여성 혐오적 표현이 논란이 되자 (관련 칼럼 : 계속되는 ‘복학왕’의 논란, 기안84만의 문제일까) 지난 8월 25일 이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웹툰협회의 해당 성명서의 첫머리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조롱의 혐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진중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고 통감한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그 다음 문단부터였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받아들이나, 그 비판을 ‘웹툰과 작가, 플랫폼, 에이지너시에 대한 자질과 소용을 폄훼하는 시도로 확장한다면 이를 배격’하고 더 나아가서는 작품에 대한 퇴출을 강제하려는 행위가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며 그러한 행동이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나 ‘파시스트적 행동’이라 규정을 한 것이다.

▲기안84 '복학왕' 광어인간 2화.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던 기안84 '복학왕' 광어인간 2화.

웹툰협회의 해당 성명이 낳은 논란과 파장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작가가 다시 또 꺼져가던 불씨에 불을 지폈다. 다름 아닌 ‘무한동력’과 ‘신과 함께’ 등의 만화나 근래에는 예능이나 인터넷 방송 출연으로 더욱 폭 넓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만화가 주호민이다. 주호민은 지난 9월 18일 새벽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신인 작가나 작가 지망생의 웹툰을 평가, 교정해주는 코너 ‘위펄래쉬’를 진행하던 중 만화가에 대한 조언이라는 명목으로 발언한 이야기가 문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주소년 아톰’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발언을 인용하며 전쟁의 피해자나 선천적인 장애들을 희화화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말은 ‘시민 독재’였다. 웹툰에 대한 검열을 과거에는 국가가 했지만 시민과 독자가 검열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뒤이어 주호민은 ‘시민이 시민을 검열하는 시대’라 덧붙이며, ‘여러분들은 아주 힘겨운 시기에 만화를 그리고 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진정성이 없다고 (작가를) 죽인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 말에 앞서서는 ‘만화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어도 결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말했지만, 결국 ‘시민 독재’를 언급하는 표현들은 앞부분의 언급마저도 사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그야말로 ‘폭탄’ 같은 발언이었다.

주호민의 이 발언은 금새 인터넷 여기저기에 확산되었고, 급기야는 메이저 언론에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발언이 나온 시기는 한창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이던 삭 작가의 만화 ‘헬퍼 2 : 켈베로스’가 ‘19세 미만 관람 불가’를 내건 직접적인 성인용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매니악한 팬들마저도 작품의 과도하고 지나친 여성 폭력 묘사가 문제가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주호민의 발언은 이전에 나왔던 ‘복학왕’에 대한 논란과 함께 ‘헬퍼 2’에 대한 논쟁이 함께 덧붙여서 무수한 논쟁의 대상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결국 문제의 발언이 나온 다음 날인 19일 주호민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당 발언이 지나친 과장이자 실언이었다고 사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는 ‘현재의 분위기가 창작자들의 의욕을 꺾는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어떤 차원에서 주호민의 이러한 발언은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주호민은 ‘짬’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를 하기 전, 현재까지도 존속 중인 아마추어 만화 커뮤니티 ‘ExCF’(구, 3cf-삼류만화패밀리)를 통해 고등학생 시절인 2000년대 초반부터 단편 만화를 발표했던 적이 있다. 해당 커뮤니티를 통해서 발표한 작품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지만,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제 중에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2002년 당시 MBC의 인기 공익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에서 유재석과 김용만이 진행했던 독서 권장 예능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두 MC가 한 시민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만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하자 크게 웃으면서 민망하게 몰아가는 분위기로 연출한 것이 논란이 될 때, 자신의 단편 만화에서 유재석과 김용만을 연상케 하는 인물을 출연시켜 살해하는 연출을 보였던 것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만화가 주호민. 사진출처=주호민 유튜브 채널.
▲만화가 주호민. 사진출처=주호민 유튜브 채널.

분명 해당 연출은 여전히 한국 사회 주류에서 가시지 않았던 만화에 대한 낮은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모습이었고, 이러한 표현에 한국만화가협회를 비롯한 만화계 전반에서 강력하게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주호민의 작품 또한 학생이나 아마추어 시절 심심치 않게 폭력적인 장면을 노출하던 모습과 달리 상대적으로 누그러든 모습을 보이며 화풍이 변화했지만, 그의 ‘시민 독재’ 발언은 여전히 그가 한국 사회에 대해서 어떤 불신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든지 한국 사회가 다시 만화에 대해 검열을 가할 수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지금 이미 그런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벌어지는 모습이 정말로 ‘검열’이냐는 것이다. 검열이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표현물의 특정 장면이 수위나 강도를 단속하는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표현에 대한 자유로운 왈가왈부가 일기도 전에, 정부 권력이 아무런 시민의 통제 없이 독단적으로 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한하기에 ‘기본적인 권리’의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다시 말하자면, 검열은 표현 그 자체의 논쟁과 비슷해보이지만 완전히 결이 다른 개념이자 행위인 것이다.

검열을 한국보다 훨씬 이전에 폐지한 해외 각국이라고 해서 표현에 대해서 아무런 왈가왈부나 논쟁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68운동에 전후하여 다시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페미니즘의 물결은 주류적 표현 양식에 내재되어 있거나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여성 차별·혐오적 표현에 직접적인 반기를 내건바 있으며, 그 논쟁은 2020년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이외에도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나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지나치게 희화하거나 폄하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에 대해 논쟁은 2020년 이전에도 꾸준하게 일어난 바가 있었다. 검열이 사라지며 표현의 자유 그 자체는 헌법 등에 의거하여 철저하게 보호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현을 할 자유’일 뿐 ‘아무런 표현을 해도 어떤 문제도 받지 않을 자유’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각에서 언급되는 ‘문제적 표현을 남발한 작가에 대한 퇴출’ 요구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존재한다. 작가가 드러낸 표현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작가는 결국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퇴출은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 기각하는 행위이자 결코 쉽게 결정내리기에는 어려운 극단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현재 ‘복학왕’이나 ‘헬퍼 2’에 대해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세지는 것은 작가 본인은 물론 작가와 긴밀하게 상의하며 작품의 표현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플랫폼이 매우 무성의한 자세로 나선 책임도 적지 않다. 특히 네이버 웹툰의 경우, 자사를 통해 연재되는 작품의 표현이 문제가 될 때마다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했었을 뿐 왜 그 표현이 논란이 된 것인지, 그 논란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고민을 하고 논의하거나,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겠다는 실천적 의지의 표명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한국만화가협회 같은 만화계의 기존 단체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유관 기관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독자들은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작품도 그 흐름에 함께 조응하거나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작가나 플랫폼이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은 곧 요구에 대한 철저한 무시나 방기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한 채, 작품 표현에 대한 논쟁을 ‘검열’이나 ‘파시즘’, 또는 ‘시민 독재’ 같은 표현으로 일컫는 것은 역설적으로 독자나 향유자로 하여금 현재 ‘표현의 자유’가 쓰이는 논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닐까. 표현의 자유는 분명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 가치를 오용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제국주의 국가나 자본가들이 자유를 말미암아 제3세계 국가나 노동자들에게 온갖 폭압을 저지르며 ‘자유’라는 개념의 존재를 고민하게 되었던 것처럼, 오랜 시간 표현의 자유를 열망했던 이들은 지금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어떠한 의미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예측할 수 없는 반작용의 후폭풍이 더욱 세계 만화계 전반에 닥쳐올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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