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었다. 추석 연휴 중이던 이번 달 1일에 첫 공개된 ‘가짜 사나이’ 2기는 결국 한 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인 16일 공개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단 온라인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가짜 사나이’는 눈 앞에서 사라졌어도, 이 유튜브 시리즈가 낳은 파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가짜 사나이’가 2020년 한국 그 자체라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MBC ‘진짜사나이’에서 유튜브 ‘가짜 사나이’까지

‘가짜 사나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짜 사나이’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름에서 충분히 느껴지다 시피 ‘가짜 사나이’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그리고 2018년에 잠깐 부활했던 MBC의 연예인 대상 군대 체험 예능 ‘진짜 사나이’에 기반한다.

‘진짜 사나이’가 나오기 전에도 ‘군대’ 자체가 소재인 프로그램은 적지 않았다. ‘위문 공연’의 성격과 버라이어티의 기능을 하나로 합쳤던 MBC ‘우정의 무대’와 KBS ‘청춘! 신고합니다’가 일찌감치 방송되었었으며, 군대를 드라마의 소재로 다룬 KBS의 ‘신고합니다’가 쏠쏠한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다. 가끔씩 명절을 맞이해서 유명 스타들이 군대 체험을 하는 코너가 종종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진짜 사나이’는 그 앞에 붙은 ‘리얼입대 프로젝트’라는 수식어처럼 짧은 촬영 기간 동안 5~6명 내외의 연예인들이 특정 군부대에 입소하고 훈련과 숙식을 경험하며 ‘진정한 군대’를 체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시청자들은 대본이 없는 듯 실제 군대에 들어간 느낌을 선사하는 ‘진짜 사나이’의 모습에 한동안 큰 환호를 보냈다.

허나 그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방송용으로 편집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군기’를 명목으로 가해지는 온갖 얼차려와 불합리한 모습을 예능으로 희화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여기서 나오는 모습이 진짜 군대같지 않다’는 남성 시청자의 불만이 상당히 강했다. 프로그램 장면을 요리조리 뜯어가며 ‘여기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리얼하게 훈련받지 않았는데 힘든 척 한다’는 비난이 프로그램 말기로 갈수록 거세졌다. 특히 여성 연예들로만 꾸린 여군 특집은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인기와 더불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훈련 강도도 낮으면서 더욱 힘든 척을 한다’는 등의 혐오적 발언이 함께 휘몰아쳤다.

▲가짜사나이 시즌2.
▲가짜사나이 시즌2.

이러한 상황에서 생겨난 조어가 ‘가짜 사나이’다. 자신들이 정말 길게는 3년, 짧게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군대에서 겪은 강도 높은 훈련, 수위 강한 처우를 진짜 느끼지 않고 ‘가짜’로 진짜인 척 방송했다는 점이었다. 결국 ‘가짜 사나이’는 프로그램 자체의 소재 고갈과 매너리즘과 더불어 점차 험악해지는 프로그램에 대한 여론 등이 함께 이유가 되어 2016년 종영되었다. 2018년에는 ‘진짜 사나이 300’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며 다시 인기를 꿈꾸었지만, 예전의 영광은 이미 떠난지 오래였다.

이렇게 MBC의 ‘진짜 사나이’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추억의 프로그램이 되고 있지만, 이 작품이 낳은 어떤 ‘불만’을 형상화한 ‘가짜 사나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티 한 구석에서는 생명력을 지닌 조어가 되어 지속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조어 안에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연출’에 대한 집단적 불만이자, 징병의 경험을 가진 남성들의 불만이 모두 담겨 있었다. 동시에 ‘우리가 당한 만큼 출연진들이 당하지 않았다’ 또는 ‘군대에서 당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고 싶다’는 복합적인 정서가 있었다.

‘가짜 사나이’, 온라인을 응집하고 오프라인으로 뻗어 나가다

‘진짜 사나이 300’이 종영되고 나서 약 1년 6개월 뒤, 2020년 7월부터 갑자기 유튜브에서 ‘가짜 사나이’라는 시리즈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해당 시리즈를 기획한 이는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계란’이라는 닉네임의 유튜버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가짜 수염으로 가리는 것은 물론 본명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전직 해군 UDT/SEAL(특전단)’에 있었다는 정보만이 알려졌다. 김계란은 무척이나 놀라운 신체 능력과 함께, 체계적인 헬스 트레이닝 기법을 유튜브로 공개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이자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김계란을 신체 능력 향상을 위한 게스트로 초청하며 TV에 본격적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점차 인지도를 쌓아가던 김계란은 2020년 초부터 어떤 하나의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김계란은 올해 2월부터 게임사 ‘블리자드’에서 개발한 온라인 카드게임 ‘하스스톤’의 프로게이머로 알려진 유튜버 공혁준과 함께, 공혁준이 고도 비만 상태라는 것을 이용하여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라는 이름의 감량 특집을 유튜브로 공개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는 공혁준의 의욕 부족으로 결국 감량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너무나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마침 공혁준은 김계란과의 게임 대결에서 패배해서 ‘망상 해수욕장 전지훈련’이라는 벌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계란은 공혁준의 벌칙 촬영을 하나의 대형 컨텐츠로 기획하여 추진했다. 공혁준만이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을 비롯한 여러 유튜버를 모아 이들 모두가 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 참가 신청을 받아 출연을 원하는 유튜버를 선발했다. 그리고 훈련 프로그램의 교관을 맡기기 위하여 해군 UDT/SEAL의 전투 전술인 MUSAT에서 이름을 따온 사회인 대상 군사훈련을 주업으로 삼던 ‘레크리에이션 업체’ 주식회사 무사트와 계약을 맺고서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했다. 6월 말에 약 일 주일 동안 촬영을 한 ‘가짜 사나이’는 그렇게 7월부터 8월까지 약 한 달 간 순차적으로 공개되었다.

‘가짜 사나이’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단기간 내에 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은 물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몇몇 대사들이 순식간에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가짜 사나이’에 교관으로 출연한 이근은 JTBC ‘장르만 코미디’를 시작으로 메이저 미디어의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등장했다. 급기야 이근은 온라인 게임 ‘검은사막’, 롯데리아, 미국 자동차 회사 ‘지프’, KB국민은행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 ‘가짜 사나이’는 이렇게 공개된지 3개월도 채 안 지나 화제의 프로그램에 등극하게 되었다.

▲가짜사나이 시즌1.
▲가짜사나이 시즌1.

왜 사람들은 ‘가짜 사나이’에 이렇게 열광했던 것인가. 프로그램의 인기에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 ‘프로그램의 수위’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살펴봤듯 ‘가짜 사나이’라는 인터넷 상의 유행어는 MBC ‘진짜 사나이’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한다. 사실은 편하게 촬영했으면서, 괜히 힘든 척을 다하는 ‘가짜’라는 것이다. 유튜브 시리즈 ‘가짜 사나이’는 이러한 여론을 매우 충실하게 반영했다. 욕설과 얼차려는 기본이며, 출연자들이 아무리 고통을 호소해도 강도 높은 훈련은 계속 되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너무 힘들다 싶으면 퇴교(프로그램 하차)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짜 사나이’의 1기 1화에서 퇴교를 설명할 때 ‘의지가 부족해서’, ‘다쳤을 때’, ‘능력 부족, 인성 문제 등 훈련에 임하는 태도나 능력이 현저히 낮을 때’ 퇴교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이 퇴교는 ‘다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전국의 수많은 ‘익명 시청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퇴교라는 선택은 결코 쉽게 내릴 수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작중에서 몇몇 출연자는 여러 사정으로 퇴교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해서 시청자들의 논란이 분분했던 것은 그 단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논란은 고스란히 ‘조회수’가 되고, 다시 이는 ‘인기의 지표’로 기록되었다. 군대에 대한 기억 또는 트라우마가 강하게 박힌 이들은 더욱 강렬하게 프로그램에 몰입하여 반응했다. 누군가는 수위 높은 군사 훈련을 유튜버들이 받는 모습이 ‘이게 진짜 훈련이라며’, 다시 누군가는 유튜버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근성이 생겼다며’ 찬사를 보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이 겪은 군대 경험을 말하며 이 프로그램을 평했다. 어떤 의미로는 ‘가짜 사나이’는 한국 사회가 군대에 대해 가진 여러 경험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낸 총체적인 존재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잡아먹으며 끝나다

‘가짜 사나이’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김계란도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적극적으로 이 인기를 활용하는 길을 택했다. 1기 방송이 끝난지 얼마 안 되어 김계란은 곧바로 ‘가짜 사나이’의 2기 제작을 선언했다. 이전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컨텐츠인 ‘참가자의 면접 모습’도 촬영하여 ‘콘텐츠’로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전까지는 김계란 본인이 운영하는 채널 ‘피지컬 갤러리’에만 게재된 ‘가짜 사나이’는 시즌 2에서는 무려 카카오TV와 왓챠를 통해서도 공개될 것이라는 정보가 알려졌다. 유튜브에서도 공개할 수 없는 강한 수위를 보여줄 것이라는 말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러나 진정 압권인 것은 ‘가짜 사나이’의 ‘극장판’이 제작된다는 정보였다.

이미 TV조선 ‘미스터트롯’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팬미팅 영상을 발 빠르게 3면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스크린X 영상으로 작업하여 개봉한 CGV는 바로 뒤이어 ‘가짜 사나이’ 2기를 스크린X와 더불어 좌석 이동 효과나 촉각, 물뿌림 등등 여러 특수효과를 영상과 함께 선보일 수는 ‘4DX’ 기술을 담아 극장판으로 공개하겠다고 미디어오늘과의 취재에서 대답했다. (관련 기사 : CGV, '가짜사나이' 4DX로 상영한다) 해당 소식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로 먼저 알린 김계란은 ‘왓챠나 카카오TV에서도 보여줄 수 없는 수위를 볼 수 있다’고 선언까지 했다.

그렇게 ‘가짜 사나이’는 순식간에 유튜버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영상 기획에서 CJ를 비롯한 전통적인 재벌 기업, 왓챠와 같은 IT 스타트업까지 모두 붙은 엄청난 기획으로 몸집을 불렸다. 게다가 2기에는 1기에 출연한 래퍼 베이식이나 전직 프로게이머 전태규에 이어 골키퍼로 일세를 풍미한 김병지, TV 출연 등으로 많은 이름을 알린 줄리엔 강, 오현민, 샘 김의 출연이 확정되며 사실상 TV 예능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으로 스케일을 넓혔다.

▲유튜브 '이근대위' 채널.
▲유튜브 '이근대위' 채널.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시작을 끊은 것은 ‘가짜 사나이’ 1기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이근에게 제기된 논란이었다. 처음 본격적으로 문제로 오르내리게 된 논란은 그가 200만원의 빚을 잡지 않았다는 문제였다. 하지만 해당 사안이 당사자 간의 합의로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을 때, 이번에는 더욱 센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가 이미 2019년 대법원에서 성추행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지 오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에게 제기된 문제가 채무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확장되자, 그를 출연시킨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들이 서서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이근은 이미 2기에서 출연하지 않은 것이 확정된지 오래였지만, 빚을 갚지 않는 것은 물론 이미 성범죄를 저지른 이가 ‘군사 훈련 교관’으로 단시간에 이름을 알리도록 만든 ‘가짜 사나이’에 대한 여론이 서서히 나빠지게 시작했다. 게다가 이미 ‘가짜 사나이’ 2기는 1기의 강도 높은 수위를 한층 더욱 올리는 바람에, 점차 불편함을 느끼는 여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던 사람이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특수훈련 강도는 훨씬 높다’며 옹호하기에 바빴지만, 1기의 여론과는 새삼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급기야 10월 10일 카카오TV에서 선공개된 4화에서는 출연자 중 한 명이 실신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훈련 강도가 훨씬 심해지자 ‘가혹행위’라는 여론이 점차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교관 중 일부가 퇴폐업소나 성적 착취 행위를 저질렀다는 논란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10월 16일, 김계란은 공지를 통해 ‘가짜 사나이’ 2기는 물론 1기의 영상까지 모두 공개를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그렇게 올해 7월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가짜 사나이’는 10월 중순을 끝으로 약 3개월 간의 운명을 마무리했다. 물론 공지에서는 ‘게시를 중단’하겠다고 했지, 해당 기획의 폐기를 선언한 적이 없으니 논란이 잠잠해지면 다시 어떤 식으로든 공개를 할지도 모르지만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짜 사나이’를 낳은 것은 어떤 의미로는 한국 사회가 ‘군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모두 융합된 결과였다. 한국 사회의 남성 다수는 군대를 기피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여성에 대해서도 강제로 군입대를 하지 않는다며 혐오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은 자발적으로 군대를 입대하는 것은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공정’의 논리처럼,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다른 이들도 함꼐 나눠받길 원하거나 또는 그만큼의 ‘보상’을 원한다.

그러나 그 ‘공정’은 결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골고루 흐르지 않는다. 현재까지도 커뮤니티에서 등장하곤 하는 ‘공무원 시험 군가산점 위헌 판결 문제’는 ‘힘들게 군대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작은 보상마저도 빼앗아 간다’는 논리로 쉽게 분노의 정당성을 만들지만, 정작 이러한 군가산점이 여성을 비롯해 장애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 이주민 등을 배제하기 쉽다는 것은 언급되지 않는다. 설령 언급되더라도 ‘자신들의 고통’을 강조하면서 끝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미래의 징병 예정자’의 권리 획득에 소리 높여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아니다. 징병 군인들이 2020년 현재에도 최저임금에 한참 미달하는 월급을 받아야 하는 현실, 2020년에 7월 전까지는 보안을 핑계로 스마트폰 반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며 군내 부조리나 가혹 행위를 외부로 알리기에 어려웠던 상황이 있었지만 이것은 하나의 운동이 되거나 남성 대다수의 동조를 얻지 못했다. 군 입대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대체 복무’에 대해서도 다수는 무척이나 부정적이었다.

자신들이 겪은 군대의 경험은 너무나도 싫고, 이를 함부로 희화하거나 조롱하는 것에 대해서는 똑같은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보복하고 괴롭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거나, 또는 더욱 낮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등한시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다수는 영상 프로그램에서도 ‘자신과 똑같은’ 또는 ‘그 이상’의 군대 경험을 특정한 이들이 대리 체험하여 고통 받는 모습에 열렬한 호응을 보내고 기뻐한다.

이러한 유대적 심리를 김계란을 비롯한 ‘가짜 사나이’의 제작진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고, 결국 그에 매우 충실하게 부응하는 프로그램으로 단기간에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다시 역설적으로 강해지는 수위가 지속될 수록 시청자에게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 일으키고, 찬사는 쉽게 반감으로 돌아섰다. ‘가짜 사나이’를 ‘진짜 사나이’로 만들어 준다며 프로그램 대내외적으로 띄워준 교관들에 가해진 논란은 프로그램의 존속에 큰 타격을 미쳤다.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를 위한 ‘가짜 사나이’는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잡아먹은 형국이 되었다.

‘가짜 사나이’, 그 이후

그러나 이렇게 프로그램이 사실상 ‘자폭’했으니 모든 문제는 사라진 것인가. 영화를 비롯한 한국 콘텐츠 영역 전반에서 독과점의 위치를 차지하는 CJ를 비롯해 IT 기업 카카오, 스타트업 왓챠의 사업 협력은 ‘가짜 사나이’에 환호하는 시선이 일부의 것이 아니라 한국 전반에 도사리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상징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가짜 사나이’에 열렬하게 반응하며, ‘자신 이상을 넘지 않는 공정 추구’가 어떤 수준으로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스스로 입증했다.

한국 사회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더욱 넓은 차원에서는 1998년 김대중 당선 이전까지 군사 독재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밑에 있었다. 군대는 한국 사회의 매우 강력한 구성 요소가 되었고, 이는 군대에 대한 끔찍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군대를 나와서도 군대를 계속 상기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사회 구조로 2013년에는 충청남도 태안에서 제대로 된 검사나 관리도 받지 않은 해병대 캠프로 고등학생들이 훈련을 받다 실종 사고로 5명의 청소년이 세상을 떠나고, 2014년에는 일군의 병사들이 집단적으로 병사 한 명을 구타해 소중한 한 사람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외에도 언론에 크게 주목받지 않았어도, 군대가 낳은 구조와 그 여파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세상을 떠나도록 만든다. 그러나 미디어는, 그리고 이 미디어와 상호 반응하는 개인과 공동체는 조금씩 타파하고 벗겨내야 할 군사주의 문화에서 탈각하는 대신- 마치 ‘물귀신’처럼 모두가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에만 관심을 비추어 왔다.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미디어의 중심이 TV나 신문에서 유튜브로 바뀌어도 그 안에 담긴 정신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같은 문제는 같은 구조 안에서 똑같이 반복될 뿐이다. ‘가짜 사나이’가 만든 일련의 거대한 해프닝을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 그 자체이자, 구조의 순환 그 자체였다. ‘가짜 사나이’는 사라졌지만 ‘가짜 사나이’를 탄생하게 부추기고 인기를 얻도록 만든 집단의 심리와 구조는 사라졌는가. 지금 살펴봐야 할 것은 ‘가짜 사나이’가 아니라 ‘가짜 사나이’에 열렬히 호응한 요소들 그 자신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