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1월호 신문과방송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고 하지만 신문이 한 주일 엿새 동안에 8면을 세 번밖에 못내고 사흘은 4면으로 만족하여야 한다는 일은 너무도 처량한 일이다. (…) 국민 대중의 활동분야의 확대와 아울러 그 요구 특히 여러 방면의 새로운 지식·소식의 요구가 날로 커가고 있음은 사실인 것이다. 그러자면 신문은 사회의 목탁으로 또 사회의 거울로 그 봉사의 업적을 우선 신문지면 확충에서 무엇인가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닌가.”

신문과방송 16호(1965년 11월) <[오늘의 문제]온양과 IPI세미나>

더 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지면이 매우 협소하니 증면을 하자는 논의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이 나온 배경을 찬찬히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증면 논의는 1960년대 박정희 정부 이후 ‘정치 기사의 협소화’에 따른 대응이었다. 꼭 다뤄야 할 기사를 다루지 못하니 지면을 늘려 변죽만 치는 기사라도 더 써서 신문의 역할을 찾아보자는 논의였다.

1987년 언론자유화 이후엔 여러 신문사의 증면 경쟁이 이뤄지는데, 이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 방면의 새로운 지식’을 알리기보단 상업성을 위한 목적이 컸다. 신문과방송 1995년 3월호는 “가장 큰 변화는 지면의 증대와 아울러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대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신문의 증면이 과연 정보의 수용을 많이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광고를 더 싣기 위해서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는다.

▲ 어뷰징 자료사진. 사진=미디어오늘
▲ 어뷰징 자료사진. 사진=미디어오늘

증면 경쟁의 2000년대 버전은 ‘증식 경쟁’이다. 언론사들은 바이라인 없는 기자, 자회사까지 만들며 어뷰징 기사, 짜깁기 기사, 연예인 근황 기사, 방송 감상문 기사 등을 증식해낸다.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란 명분을 붙이기도 부끄럽다. 이들 기사에 대해 언론사는 ‘반쯤 포기한 상태’라고 봐도 좋다. 어디까지나 클릭 수를 위한 밥벌이 경쟁일 뿐 이 경쟁으로 생긴 기사를 ‘없는 기사인 셈’치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건 언론이다.

그래서 ‘기사 수를 줄이자’란 주장까지도 나왔다. 이봉현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지난 11월1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상생과 저널리즘 제고를 위한 포털의 사회적 책무’ 토론회에서 “언론사들이 네이버나 카카오에 보내는 기사 개수를 제한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일간지는 하루에 800~1000건을 보내고 경제지는 700~800개의 기사를 보내는데, 지면에 쓰는 20%의 기사 빼곤 조회 수만을 위한 날림 기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포털의 책무’ 논의는 별도로 하고 이 주장 자체는 매우 타당해 보인다. 당장 포털에 100건의 기사만 보낼 수 있다고 하면 그 기사에 어뷰징 기사를 넣을 언론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잘 만들어진 공든 기사만 선별해 포털에 넘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 뉴닉(https://newneek.co/). 사진=뉴닉 홈페이지 갈무리
▲ 뉴닉(https://newneek.co/). 사진=뉴닉 홈페이지 갈무리

알맹이 정보만 보고 싶은 건 독자도 마찬가지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뉴스레터 또한 그러한 독자의 수요와 만나 시작된 서비스다. 시사 뉴스레터 ‘뉴닉(NEWNEEK)’은 여러 언론사 기사의 정보를 잘 갈무리해주고 있고, 어피티의 ‘머니레터’는 널려있는 경제 정보 중 돈 될 만한 정보만 뽑아준다. 뉴스레터 부흥은 세계적 추세인데, 이메일 마케팅 서비스 회사인 메일침프는 2019년 신규 계정이 전년 대비 45% 늘었다고 보고했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뉴스레터 사업을 위해 뉴스룸을 떠나고 있다고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이메일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알맹이 정보만 잘 정돈한 결과가 이 정도다.

잘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가치는 높아진다. 밤낮 없이 취재하고 공들여 쓴 기사를, 독자가 알아봐주지 않는 건 ‘독자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온갖 어뷰징 기사에 파묻혀 있는 기사를 독자가 무슨 수로 찾아내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좋은 기사가 더 잘 노출될 수 있도록, 그래서 독자가 그 좋은 기사를 보고 다시 언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증식 경쟁’이 아닌, 좋은 기사만 남기려는 ‘알맹이 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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