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대기업 구조조정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은 여러 업무 중에서 특히 대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관과 차이가 있다. 한국산업은행법 18조 6항에 산업은행의 업무 내용으로 “기업구조조정”이라고 못 박혀 있다. 산업은행이 주로 언론에 등장할 때도 대기업 구조조정과 관련될 때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 위기와 관련하여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운영을 산업은행에 맡겼기 때문에 이 기금이 투여되는 재벌 대기업 구조조정에도 직접 개입한다.

정부 자금은 대부분 산업은행을 통해서 투여되거나 관리된다. 위기에 몰린 대기업에 정부 자금이 투여되지 않으면 곧바로 파산하거나 법정관리 신청을 하므로 산업은행은 그 순간 대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주 채권단으로서 대기업 구조조정과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 특성상 재무적인 판단만 한다. 달리 말하면 기업 구조조정에서 산업은행은 오직 재무적 차원의 구조조정만을 집행하는 기구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구조조정 관련법과 절차가 모두 재무적인 구조조정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산업은행의 변명 거리가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 부실(징후)기업들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워크아웃)에 들어가 금융지원(채무조정)에 한정된 형태로 진행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파산보호신청인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재무적 구조조정이란 재무제표에서 비용은 줄이고 수익은 늘려 기업의 수익성을 제고를 최고의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을 말한다. 수익성을 내기 위해 필요한 자본금 총량, 부채비율, 수익률, 비용 등 재무적인 문제만을 기업 가치로 삼고 있다. 매각이나 통합에서도 빌려준 자금을 어떻게 하면 회수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수익성을 높이는 구조조정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무적 구조조정은 재무제표상의 숫자 놀음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우선으로 노동력 감축이 고려돼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노동력을 더 쥐어짜며, 기업이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도 강요하는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과정이다.

물론 기업에서 재무적인 차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기업 특히 대기업일수록 산업과 사회, 지역과 환경의 영향, 고용과 노동 등 사회적 특성과 영향을 놓고 판단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 주도의 재무적인 구조조정 방식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특히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위기는 대면 산업 전반에 걸쳐서 발생하고 그동안 각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은행의 재무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해외의 거대자본, 국내 재벌 또는 재벌급 사모펀드로의 매각 외에 다른 매각이 이루어진 사례가 없다. 많게는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들여 부채를 탕감하고 자본 총량을 증가시키는 반면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높인 후 해외의 대기업이나 국내 재벌, 재벌급 사모펀드에 매각한다. 산업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해외매각을 포함하여) 재벌 지배체제를 안정화할 뿐만 아니라 시장 독점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의 사례도 모두 그렇다.

▲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모습. ⓒ 연합뉴스
▲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모습. ⓒ 연합뉴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이미 영구채 3천억을 포함해 1.2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한항공의 지주회사 한진칼에 산업은행이 8천억원을 지원해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했다. 대한항공도 엄청난 위기 상황이라 아시아나를 인수할 자금이 없어서, 산업은행은 (빌려준 것도 아니고) 지분 참여로 자금을 한진칼에 주고 인수하라고 내밀었다. 이것만으로 특혜시비가 붙을 법한 조치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에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니라 지주회사이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칼의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지원했다.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의 우호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도움을 줘, 특혜에 특혜를 더 얹은 모양새로 지원했다.

또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지휘하며 국내 1, 2위의 항공사 통합을 통해 대한항공의 항공산업 독점 확대도 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로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더하면 통합항공사의 점유율은 62.5%에 달한다. 국제선 점유율은 외항사를 제외하면 73.1%다. 공정위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하는 점유율 50%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공정위는 “어떤 회사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기업결합에 있어 예외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라고 기업결합 용인 가능성을 열어 주더니,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용인했다. 산업은행이 시작한 재벌의 시장독점 확대조치를 공정위는 묵인하고 정부가 승인한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에서 산업은행의 개입은 무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시발점이기도 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도 산업은행은 소위 ‘뒷배’ 역할을 했다. 당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10조 원이 넘는 자금을 동원해 2006년에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각각 인수했다.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모두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국유기업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산업은행이 이 자금을 빌려줬고, 대한통운 인수자금은 먼저 인수한 대우건설에서 끌어다 썼다. 

이처럼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 인수에 무리하게 계열사 자금을 쓰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9년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다시 매물로 내놨다. 이것을 산업은행이 재인수 했다. 요컨대, 물건 살 사람이 돈이 없어 파는 사람이 돈을 빌려줬는데, 1년 후 그 물건을 판 사람이 돼 산 꼴이다. 빚도 제대로 못 받은 것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은 경영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런데, 박삼구 회장은 2010년에 ‘기존경영자관리인제도(DIP)’로 인해 전문경영인으로 경영에 다시 복귀한다. 이렇게 복귀한 박삼구 회장에게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약간의 사재출연으로 금호산업 우선매수권을 전문경영인인 박삼구 회장에게 주었고, 그는 2015년 말 7,228억원에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한다. 그렇게 다시 그룹 총수가 된 박삼구 회장은 그룹 전체를 되찾기 위해 금호타이어까지 인수하려 또 무리하게 계열사의 자금을 끌어다 썼고, 결국 아시아나에서 문제가 터져 위기가 그룹 전체로 확산했다. 박삼구 회장은 또다시 회장직을 내려놓았고 산업은행과 채권단은 아시아나를 매물로 내놓아 HDC현대산업개발과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HDC와 매각이 불발되자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자금을 대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를 인수하게 했다.

▲ 11월16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들이 서있다. ⓒ 연합뉴스
▲ 11월16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들이 서있다. ⓒ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산업은행 관리체제인 국유기업으로 복귀한 대한통운은 당시 시장점유율이 20%가 넘어 업계 1위였는데, 2위인 CJ그룹이 2011년 인수해 지금의 CJ대한통운이 됐다. 이 인수합병 역시 시장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독점기업을 탄생시켰다. 금호타이어는 논란 끝에 2018년 중국 타이어 기업인 더블스타에 인수됐다. 대우건설은 건설업 도급순위 3~5위 수준인데, 매각이 안 돼, 산업은행이 대주주(채권단 관리)인 국유기업 형태로 있다.)

이처럼 장구한 역사 속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지가 돈을 들여 재벌의 지배권을 안정시키고 주력산업 중심으로 시장 독점이 강화되도록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지휘했다. 이런 사례가 더 추가됐는데, 바로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다.

현대중공업의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최근 위기에 빠진 두산그룹은 3.6조원의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에 나서 두산인프라코어를 매물로 내놨다. 12월10일,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 특혜 인수로 말이 많았던 현대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어 본 계약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이번 인수에서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말하자면, 두산인프라코어의 주 채권자인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돈을 대주고 현대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게 한 것이다. KDB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7월에 설립된 산업은행의 사업 구조조정 업무를 전담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현대중공업이 건설기계 부문 1위 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 현재 자회사인 현대기계제철과 두산인프라코어가 통합하기 때문에 국내 굴삭기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 인수합병도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대상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주도한 인수합병에 공정위는 단 한 차례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기업결합심사도 형식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KDB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했기 때문에 당연히 산업은행의 돈으로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두산중공업에 들어간 정책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서 현대중공업으로 하여금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게 했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의 이런 식의 특혜 지원을 대우조선과 합병하면서 이미 받았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지난해 3월 산업은행이 대주주였던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합병 했다. 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산업은행은 정몽준 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지주 이외에는 그 누구도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에 올라설 수 없도록 했다. 산업은행의 현대중공업 주식 처분에 엄격한 제한을 두었고 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거래가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 변동 등을 초래하는 거래는 금지됐다. 다시 말하면, 정몽준 일가의 지배권을 확실히 보장해 주는 가운데, 13조 원 가까이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을 2조7000억 원의 현대중공업 중간 지주회사의 주식을 받고 대우조선을 넘겨준 것이다.

▲ 2019년 3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왼쪽부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9년 3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왼쪽부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우조선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7조 원이 넘고 출자 전환, 영구채 등을 포함하면 10.3조원이다. 유상증자와 자금 지원으로 2.5조원이 추가되면 12.8조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이 합병으로 추가 투자한 자금은 고작 4천억에서 6천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산업은행의 매각은 정부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을 갈아타는 것이라 산술적으로 따지면 10조 원 손해를 보면서 대우조선 대주주의 권한을 현대중공업 총수 일가에 모두 넘긴 것이다. 게다가 수주량 기준으로 조선업 세계 1위와 2위 기업의 합병이라 국내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시장독점이 강화된다. 국내 공정위원회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EU 등 관계국의 합병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 승인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부동산 건설사로,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의 독점 강화를 위한 재무적 구조조정 사례는 현대중공업이 두산인프라코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불과 2주일도 되지 않아 하나 더 추가됐다. 지난 12월22일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한진중공업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 컨소시엄에는 동부건설이 전략적 투자자(SI)로, 한국토지신탁 등이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동부건설이 주축인 듯 보이지만 동부건설의 최대주주가 사실상 한국토지신탁이기 때문에 한국토지신탁이 주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도 알 수 있듯이 한진중공업의 부산 영도조선소는 폐업 수순을 거치고 그 땅에 부동산 개발을 하기 위해 조선업과 아무 관련 없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이 나섰다. 게다가 한진중공업의 건설부문을 합치면 동부건설의 도급순위는 10위권으로 도약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중공업의 매각은 조선사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건설사 통폐합과 연결되는 모양새다. 이번 한진중공업 매각에는 앞서 현대중공업에 두산인프라코어를 안겼던 산업은행의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가 다시 등장했다. KDB인베스트먼트가 한진중공업 인수전에 참여해 두산인프라코어와 마찬가지로 직접 인수하려는 게 아닌가 점쳐졌지만, 동부그룹-한국토지신탁 컨소시움으로 우선협상권이 넘어갔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올해 7월 KDB인베스트먼트에 보유 중인 1조3천600억원 규모 대우건설 지분(50.75%) 전량을 넘겼다. 그래서 현재 대우건설 대주주는 KDB인베스트먼트이며, 대우건설 매각은 KDB인베스트먼트 주도로 이뤄지게 된다. 대우건설은 도급순위가 3~5위를 오락가락하는 대형건설사다. 매각되면 건설사의 도급 순위가 변동한다.

산업은행, 재무적 구조조정 중단해야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언론의 접근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이다. 아시아나 인수와 관련해서 산업은행이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 노릇을 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또 현대중공업의 두산 인프라코어 인수에 KDB인베스트먼트가 관여한 것에 대해서도 산업은행이 사실상 자기매수 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이 지배 구조상의 주식매입 대상의 문제나, 자기매수와 같이 공정하지 못한 경쟁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방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즉, 구조조정의 부분적이고 과정상의 문제가 아닌 구조조정 방식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다. 재무적인 측면에서 비용을 줄여 수익을 맞추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부터 용인하고, 산업과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를 따지지 않고 오직 수익성을 기준으로 삼아 조선사를 부동산 업체에 팔고, 재벌 기업을 다시 재벌에 매각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무적 구조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상의 문제로 인식한 언론들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국유기업의 매각이 재벌의 지배체체 안정화는 물론이고 시장독점 확대로 귀결하는 것에 대해 입을 닫거나 다소간 불가피한 상황으로 용인한다.

백기사 논란부터 구조조정 책임론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쟁점은 (한겨레, 2020년 11월28일)
또 셀프매각 논란… 두산인프라코어 이어 한진重도 KDBI 품으로? (조선비즈, 2020년 12월15일)

게다가 산업은행이 벌이는 이런 식의 구조조정과 매각에는 면책이 주어져 있다. 지난 5월1일 기간산업안정기금의 설치와 운영을 도입하면서 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에는 이른바 ‘면책특권’이 신설됐다. 한국산업은행법 41조에 징계 등의 면책에 관한 특례 조항이 신설되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업무 처리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조항에 대해 소위 ‘변양호 신드롬’으로, 2003년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추진했던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것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논란이 될 만한 정책은 손대지 않고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한다.

▲ 2006년 9월4일 오전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노조원들이 론스타 불법매각 원천무효 촉구 100만인 서명지를 앞에 두고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100만인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 2006년 9월4일 오전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노조원들이 론스타 불법매각 원천무효 촉구 100만인 서명지를 앞에 두고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100만인 서명지를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

그러나 17년이지나 갑자기 그 문제 때문에 산업은행의 정책 집행에 문제가 될 리 없고,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어차피 다른 법률이나 규칙 등으로 처벌이나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과정과 절차가 부합하면 구조조정 방식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것인데, 산업은행이 재무적인 상황만 놓고 대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것에 대한 ‘면벌부’ 조항을 만들어 위법과 무책임 논란을 없애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실제 5월 이후 산업은행의 구조조정에는 거침이 없어졌고 KDB인베스트먼트 설립과 연결되면서 매각이 더욱 공격적이고 활발해 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수십, 수백조원의 정책자금을 직접 다루며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기관이다. ‘면책특권’이 아니라 검찰과 같이 ‘민주적인 통제’를 받는 집단이라는 얘기다. 재무적 구조조정의 문제와 논란을 피해 나갈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고용 중심의, 생산의 사회적, 공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구조조정의 목적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위기 속에서 산업은행이 지금처럼 재무적 구조조정에 치우쳐 재벌의 지배체제와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집중하는 형태로 진행한다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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