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을 당했다. 한 사회 약속인 시스템을 거스른 탓이다. 촛불시민의 적폐청산 요구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에 개방·소통·탈권위 행보를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참모진과 치열한 토론 문화를 복원하고 언론 브리핑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취임 초기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동인 여민1관으로 옮기면서 국민과 대통령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수석들과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모습, 청와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은 전직 대통령과는 확실히 차별화한 모습이었다. 청와대로 가던 차를 세우고 시민들과 만나 ‘셀카’를 찍었고, 격의 없는 접촉에 경호실이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임기 초반 박근혜와 달라도 매우 달랐던 문재인 대통령에 여론은 호의적이었고, 국민과 소통 의지가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주말인 2017년 5월13일 오전, 대선 당시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첫 주말인 2017년 5월13일 오전, 대선 당시 ‘마크맨’을 담당했던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집권 4년 차를 맞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보 인사들이 잇따라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국회 시정연설과 새해 기자회견에서 “더 많이, 더 자주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회와 함께 하고 싶다”, “국민들께서 소통이 부족했다고 느끼신다면 소통을 늘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등 소통 의지를 밝힌 것도 외부 지적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만이 국민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장방문을 많이 한 것을 강조한 대목은 아쉽다. 언론과의 접촉면을 넓히라는 요구가 억울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불과 3년 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 방법으로 언론과 소통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언론과의 접촉을 더 늘려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소통이 많으면 오해를 풀 수 있고, 협치가 가능하며 정책 실행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제된 논리 전달에 무게를 두는 문 대통령이 비우호적 언론과 접촉면을 갖는 것 자체로 공세에 휘둘릴 수 있다고 우려할 수 있지만 국정 책임자라면 논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언론이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책임 있게 답변하는 모습이 바로 현 국정 책임자에게 거는 기대다.

문 대통령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도 발견된다. 지난해 11월30일 당시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부동산 대란과 관련한 대책 논의를 묻는 과정에서 “대통령을 가장 최근 만난 것이 언제냐”는 질문을 받고 “몇 달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대통령은 충분히 듣고 소통하고 있다. 대통령이 정부 부처 간 회의를 오지 않아도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했지만 한창 부동산 문제로 시끄러운 국면에서 대통령과 장관의 대면 접촉이 없었음이 도드라졌다.

▲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2021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현장, 온라인 동시참석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청와대
▲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2021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이 현장, 온라인 동시참석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청와대

위험 수위에 달한 대통령 지지자들의 언론 비난도 대통령 소통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새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나선 한 기자가 손가락 욕설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근거 없는 비상식적 주장이다. 기자가 펼친 손가락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대통령 기자회견과 하등 상관없는 내용이다.

2019년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현실 경제 어려움을 강조하며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쭈겠다”고 질문한 기자가 정치 공세성 질문을 했다는 비판은 논쟁의 대상이기라도 했지만 ‘손가락 욕설’ 주장은 비평의 가치조차 없다.

저널리즘에 통용되는 ‘어떤 질문도 할 수 있다’는 말은 외부 압력이나 압박 속에서도 기자는 ‘해야 할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근거 없이 몰아가는 언론의 정치 공세 프레임은 분명 문제지만 ‘손가락 욕설’과 같은 시빗거리는 언론 혐오를 조장하는 또 다른 정치 공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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