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 동료들과 식사할 때면 어김없이 넷플릭스 얘기를 합니다. 동기는 미국 쇼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얘기를 했고요. 선배는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를 추천해줬습니다. 저는 ‘프리즌 브레이크’, ‘왕좌의 게임’이 ‘핫’할 때도 외국 드라마에 눈길 한번 안 주고 살았는데요. 지금은 ‘워킹데드’를 시즌 10까지 챙겨봤고, 최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러시아 드라마를 봤습니다. 넷플릭스가 제 취향을 뒤흔들고 있다고 느낍니다.

“‘넷플릭스의 공습? 한국은 다르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2015년 제가 쓴 기사 제목입니다. 당시 저는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썼습니다. 물론 바로 다음 문장에 “다만 장기적으로 시장을 뒤흔들만한 변수는 남아 있다”는 ‘안전 장치’가 붙어있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누가 봐도 잘못된 예측을 담은 기사였습니다.

▲ 2015년 넷플릭스 한국 진출을 전망한 기사.
▲ 2015년 넷플릭스 한국 진출을 전망한 기사.

저는 왜 기사를 그렇게 썼을까요. 당시 상황과 취재 자료를 복기해봤습니다.

첫째, 한류의 힘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 기사는 넷플릭스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해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도 있다”고 썼습니다. ‘옥자’ ‘킹덤’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까지 오리지널 콘텐츠가 연달아 나오는 지금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대목인데요. 한국 콘텐츠가 한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사랑 받게 되면서 넷플릭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적극 투자할 것을 예측하지 못해 오판했습니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변할지 몰랐습니다. 초창기 넷플릭스는 지상파와 CJ ENM 등 국내 사업자와 협상이 결렬돼 국내 콘텐츠 수급이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OTT도 갖고 있기에 굳이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내주며 자사 OTT 경쟁력을 떨어뜨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넷플릭스가 한국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요인도 크지 않다고 봤고요. 그러나 tvN ‘미스터 션샤인’으로 대표되는 투자 방식이 활성화되며 판이 흔들렸습니다. 제작사 입장에선 사전에 대규모 제작비를 받아 스케일 큰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고, 해외 진출 메리트가 강하다는 점을 당시에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갈무리. 왼쪽부터 킹덤, 스위트홈, 인간수업.
▲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갈무리. 왼쪽부터 킹덤, 스위트홈, 인간수업.
▲ 워킹데드 포스터 갈무리.
▲ 워킹데드 포스터 갈무리.

셋째, 개인 경험을 토대로 취향이 고정 불변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 예능 신작 위주로 보잖아요.” 취재 당시 한 방송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맞는 말인데, 넷플릭스의 성공 요인에는 ‘한국 콘텐츠 수급’ 뿐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을 바꾼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의 퀄리티, 접근성과 편의성, 마케팅 방식에 따라 사람들은 새로운 콘텐츠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드에 무관심했던 저는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워킹데드 ‘시즌10’까지 섭렵한 뒤였죠.

넷째, ‘안전’하게 진단했습니다. 사업 전망을 담을 때 ‘대박 터진다’는 기사를 쓰면 위험부담이 큽니다. 잘 될 가능성보다는 잘 안 될 가능성에 방점을 찍는 게 더 안전합니다. 당시 비슷한 스탠스의 기사들도 참고했지만 ‘대박론’은 없었고요. 다른 측면에선 광고 기사도 아니고 굳이 긍정적인 면을 부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주요 OTT 모바일 앱 순 방문자수. 자료=코리안클릭.
▲ 주요 OTT 모바일 앱 순 방문자수. 자료=코리안클릭.

다섯째, 넷플릭스로부터 얻어낼 게 있거나 적대적인 취재원들의 말에 필요 이상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넷플릭스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국내에서 미디어 사업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넷플릭스를 직접적으로 취재하기 힘들기에 제휴를 논의한 기업들 중심으로 취재했는데요. 생각해보면 통신사, 콘텐츠 사업자 모두 넷플릭스와 가격 협상이 잘 안 되던  시점입니다. 기 싸움을 하는 중인데 상대방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말을 기자들에게 하지 않겠죠. 이 대목이 최대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넷플릭스 ‘승승장구한다’는 기사를 쓸 때마다 과거 제 기사가 떠오르곤 합니다. 넷플릭스의 반전 이후 사업 전망 기사를 함부로 써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기사를 곱씹으며 앞으로는 더욱 꼼꼼하고 신중하게 쓰겠습니다. 또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디어 업계를 보다 세밀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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