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사람의 머릿속에는 두 시스템이 존재한다. 시스템1은 거의 힘들이지 않고 작동하는 직관이다. 화내며 찡그리고 있는 여성의 사진을 본다면, 그 여성이 곧 거친 목소리로 불친절한 말을 내뱉을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직관은 개나 고양이도 지니고 있다. 반면 시스템2는 이성적이고 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생각이다. 17×24와 같은 곱셈식을 계산할 때, 혹은 두 물건 가치를 꼼꼼히 따져 구매할 때 시스템2를 사용하게 된다. 시스템1이 생각을 ‘빠르게 감는’ 방법이라면 시스템2는 생각을 ‘느리게 감는’ 방법이다.

전통적으로 저널리스트는 시스템2를 훈련한 집단이었다. 시스템2의 가장 큰 특징은 노력해야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인지적 게으름뱅이’인 인간의 속성을 뛰어넘기 위해 저널리스트 집단은 시스템2를 체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저널리즘 기본서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도 등장하는 ‘저널리스트들은 진실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대원칙이나 여러 자료나 정보원이 전한 사실을 교차 검증하는 ‘크로스체크’와 같은 팩트체킹 방법 등이다. 기자 이름을 기사에 달아놓는 바이라인도 한 예다. 내가 찾은 진실에 이름까지 달아야 하니 빠르게 생각을 감기는커녕 틀린 사실이 없나 이중 삼중으로 검토하고 취재해야만 했다.

오늘날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건 시스템1이다.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뉴스가 일상화되면서 저널리스트에겐 더는 충분히 숙고해 기사를 쓸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기사가 쏟아지는 데 반해 독자들은 인지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다. 이러한 독자들의 제한적인 관심을 두고 언론사들은 ‘주목 경쟁’(attention struggle)을 시작했다. 선정적 제목을 고민했고, [속보]나 [단독] 말머리를 붙여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전략을 세웠다.

이 경쟁을 채찍질한 건 양대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실시간 검색어였다. 저널리스트들은 생물처럼 변하는 실시간 검색어를 따라잡으려 제목만 살짝 바꾼 복제 기사, 다른 언론사 기사를 복사해 붙여넣기한 베껴쓰기 기사를 쏟아냈다. 이 경쟁에 뛰어든 언론사들은 시스템1의 ‘달인’이었다.

▲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현재의 네이버 모바일 실시간 검색어 화면
▲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현재의 네이버 모바일 실시간 검색어 화면

빨리 감기, 그러니까 시스템1을 통해 생산된 정보는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얕은 정보 그 이상을 주지 못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정보가 독자의 ‘시스템1적인 사고’를 부추기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의 각종 페이스북 저격글을 퍼다 나르는 뉴스는, 각 진영에 대한 독자의 편견만 강화할 뿐이다. 구체적 정책이나 정치 철학을 전하지는 않기 때문에 해당 뉴스는 독자에게 ‘인상’과 ‘감정’만을 남긴다. 숙의 민주주의에 근간을 둔 우리 사회에서는 썩 좋은 현상은 아니다.

저서 ‘신호와 소음’으로 유명한 네이트 실버는 그래서 “만일 어떤 뉴스가 본능을 자극해서 시스템1이 즉각 작동한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스템2로 그 뉴스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며 “속도를 낮추고 의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뉴스는 시스템1을 자극하는 무기가 되기도, 시스템2를 가능케 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오는 25일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2005년 도입된 후 16년 만이다. 언론의 ‘빨리 감기’를 부추겼던 실시간 검색어가 없어진다고 해서 언론이 곧장 ‘느리게 감기’로 뉴스를 생산할 것 같진 않다. 이미 언론은 시스템1을 체화한 상태이니 말이다.

실시간 검색어가 없어도 네이트판, SNS,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들의 관심을 쫓아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언론의 ‘느리게 감기’는 요원한 것일까. 하지만 미디어 전문 매체 미디어고토사에 따르면, 이번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폐지에 대해 언론계 종사자의 78%는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그래도 많은 언론계 종사자들이 어뷰징 뉴스로 범벅된 지금의 상황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실시간 검색어 종말이 언론의 체질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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