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62)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말 조선일보에서 정년 퇴임했다. 1988년 수습기자로 조선일보에 입사한 이래 32년 10개월간 근무했다.

퇴임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17일 인터넷 매체 ‘최보식의 언론’을 창간했다. 이제는 ‘최보식의 언론’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그는 매주 월요일 조선일보 지면에 ‘최보식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다. 3주마다 ‘최보식 칼럼’도 썼다. “33년 기자로 살면서 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출감하나 싶었는데”라고 입을 뗀 그는 “JP(김종필)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는데 ‘언론도 허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창간한다고 하니까 스쳐간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분들이 지지 후원해주더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다운 언론’에 대한 갈구가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모듬전과 막걸리로 허기로 달래며 질문을 던졌다.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퇴임한 소회가 있다면?

“돌이켜보면 가장 즐거운 기자 시절은 초년병 경찰기자 때였다. 모든 걸 쏟아 부어 취재할 때였으니까. 비슷한 세월 기자를 했던 친구들끼리 만나면 경찰기자 시절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 세상을 알게 되면 기자직은 일상생활이고 밥벌이가 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글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비어 있는 지면을 메워야 했고, 3주 단위로 비어 있는 칼럼을 써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 퇴임한 이유가 따로 있었나?

“정년 통보 받고 회사에선 재계약을 하자고 했다. 이전부터 글 감옥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정년 뒤에는 남은 삶을 좋아하는 산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마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도 있고 퇴직금도 생각보다 크게 적었다. 경제적 현실에 부닥치니 33년 기자 생활이 갑자기 한심해졌다. 나는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아파트 한 채 빼놓고는, 부동산 거래를 해본 적 없다. 주식도 해보지 않았다. 기자 일을 하는 것도 힘에 부쳐 다른 데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가 퇴직을 앞두고 현실적인 문제를 보게 됐다. JP(김종필)는 ‘정치가 허업’이라고 했다. 난 ‘언론도 허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언론매체를 창간한다고 하니, 그냥 스쳐간 인연이라 생각했던 많은 분들이 나를 지지하고 후원해줬다. 내가 예상했던 차원을 넘어섰다. 한편으로 기자로서는 잘못 산 게 아니구나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내가 이렇게 받아도 되나 하는 무거운 심정이 됐다. 마음의 빚이 컸다.”

- 방상훈 사장이 따로 전한 말은 없었나?

“내가 계속 글을 써주길 바랐다.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영원히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인터뷰 섭외는 본인이 했나? 사진도 본인이 찍는 경우가 있던데?

“혼자 인터뷰 인물을 선정해왔다. 어떨 때는 번거로워서 사진 기자도 안 불렀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코너를 십 수 년 했다. 그전에도 다른 타이틀로 인터뷰 기사를 써왔다. 젊은 날 나는 내성적이었다. 보다시피 언변도 좋지 않다. 남들 앞에서 나서서 말하는 걸 잘 못한다. 기자 직업을 택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기자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 어떻게 해서 인터뷰 전문기자로 이름을 얻게 됐나?

“인터뷰 전문기자는 무슨…. 사회부 사건기자를 잘해서 3년 반 정도 한 뒤 ‘문화부로 보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가서 해보니 내 취향은 아니었다. 당시 월간조선 청탁을 받아 글을 썼는데, 조갑제 선배가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월간조선에 자원했다. 월간조선 근무 경험이 내가 기자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월간조선 심층인터뷰는 300~500매씩 쓰고 그랬으니까.”

- 본인만의 인터뷰 스킬이 있나?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잘 물어보고, 남의 답변을 잘 듣고, 그리고는 잘 정리해 쓰는 것이다. 인터뷰는 ‘조찡’(언론계 은어로 남을 칭찬하거나 선전하는 기사를 뜻함) 구조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유리한 구도인데, 인터뷰이가 받고 싶지 않는 질문을 던져 인터뷰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칼럼이나 인터뷰 기사나 나는 늘 아슬아슬하게 썼다”고 말했다.

“기자로서는 몹시 예민한 사안이지만 피하지 않고 다뤄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반면 조직 입장에서는 ‘그런 걸 건드려 괜한 논란만 일으킨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기자라면 자신이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걸 써야 한다. 그런 경우에 글이 받아들여지려면 조직의 입장도 감안해야 한다. 나는 그만큼 글을 아슬아슬하게 써왔다. 기사를 너무 안전하게 쓰면 재미가 없다. 안전하면 쓰나마나한 글이 된다. 그렇다고 선을 넘어버리면 위험한 글이 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글을 아슬아슬하게 쓰려면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신문사 경영진의 이해관계도 있지만 나는 기자로서 그렇게 써왔다.”

- 글이 게재 안 된 적도 있지 않나?

“기본적으로 사실 관계가 틀리거나 글 수준이 미달이면, 그 원고는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다만 우리의 수준에서는 사실관계가 아닌, 판단의 영역이 된다. 신문사의 판단과 기자의 판단이 대립할 때가 있다. 여러 면에서 조선일보는 좋은 회사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을 대부분 수용했다. 포용력이 큰 조직이다. 특히 방상훈 사장은 그 점에서 글을 이해하는 분이었다.”

- 5·18 관련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등의 인터뷰가 게재되지 않은 적 있었는데?

“현대사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 관계를 따지는 거다. 일방적으로 몰아 ‘전두환은 나쁜 놈’이라고 외치는 건 쉬운 거다. 전두환에 대한 처벌은 이미 수차례 이뤄졌다. 치매 증상이 있는 구십 노인을 상대해 더 두드려 팰 것이 있나? 그는 벌써 무대 바깥으로 퇴장된 사람이다. 언론이 군중심리를 부추기고 따라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우파나 좌파 이념 문제가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현재 힘세고 나쁜 놈을 상대하고 맞서야지, 약자를 뭇매 주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 2010년 MB 비판 칼럼을 썼다가 잠적한 뒤 복귀했다. 2014년 세월호 당시에는 박근혜의 폐쇄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고, 이중 한 대목을 인용해 남녀 관계 쪽으로 글을 쓴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는 재판을 받았다. 진보 정권과는 말할 것 없고 보수 정권과도 불화관계였는데?

“언론은 기본적으로 권력과 불화 관계다. 언론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언론인은 의식적으로도 힘센 놈과는 불화 관계를 설정하는 게 맞다. 내가 우파 가치를 갖고 있지만, 기자로서 모토는 ‘억강부약’(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준다는 사자성어)이다. 최소 모양새라도 언론은 정권 비판적 입장에 서야 한다. 안 그러면 그건 ‘어용언론’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 소위 진보언론매체는 권력과 같이 갔다. 이는 좌파와 진보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언론이라면 자기 이념 성향과 비슷한 정권이 들어서도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 안 그러면 언론이 아닌 정권 기관지가 된다. 그건 신문이 죽는 길이다.”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최보식 전 조선일보 선임기자를 19일 오후 서울 아현시장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조선일보에서 퇴임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최보식 기자는 진보언론에 쓴소리를 많이 했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무디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한겨레 칼럼니스트 등과 관훈클럽 대담을 했다. 노무현 정권부터 진영을 나누고 편을 갈랐다. 우리는 ‘언론이 이러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서로 입장과 이념은 다르지만 ‘언론은 이래야 한다’는 가치를 공유했다. 그게 없으면 정당 기관지나 협회지가 돼야지. 1988년 창간한 한겨레 1기가 나와 동기다. 초창기 기자들과는 언론의 지향과 역할을 공유했다. 지금 후배들에게 물어보면 성향이 다른 타사 기자들과는 말도 잘 안 섞는다고 한다.”

- 조선일보를 보면, 합리적 비판이라기보다, 비판 그 자체가 목적인 보도들이 있다.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 상황이 이를 초래한 면이 더 크다고 본다.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한다는 부분에 서로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현 정권은 그 도를 너무 넘어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또 문재인 정권 인사들의 위선과 파렴치는 우리가 공유해왔던 상식과 교양을 무너뜨렸다.”

- 신문을 포함한 미디어 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최보식의 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나?

“내가 시작한 매체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정말 예상 밖이다. 물론 앞으로 어려움이 더 많을 것이다. 현재로는 많은 사람들과 독자들이 최보식이 한다고 하니까 발 벗고 도와주고 있다. 기자 글은 하루살이 글이다. 하루 지나면 상황이 바뀌고 또 바뀐다. 최선을 다해도 하루 지나면 상황이 바뀐다. 그게 신문기자 숙명이다. 그렇게 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기자들마저 없으면 신문은 지금보다 더 형편없이 쇠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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