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에 글을 써줄 필자를 섭외할 때의 일이다. 한 일간지에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정교한 스토리텔링 기사를 써내 해당 기사의 제작기를 지면에 실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을 좀더 자세히 소개하는 글이 나왔으면 해서, 기사 제작에 참여했던 데이터 저널리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섭외는 실패로 끝났다. 보통 필자들은 ‘너무 바빠서’, ‘써야 할 글들이 많아서’ 등을 이유로 거절하곤 하는데, 그의 거절 사유는 좀 달랐다. “저보단 이 기사를 직접 쓴 기자에게 원고 의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본인의 이름으로 이 기사가 소개되는 건 부담스럽다는 말을 덧붙였다. 기사의 주인공은 ‘기자’이지, ‘데이터 분석가’는 아니라는 뜻으로 읽혔다.

언론사의 주인공은 기자다. 언론사는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기자가 그에 마땅한 대우를 받는 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주요 보직에 기자를 앉히고, 심지어 기자 분야가 아닌 곳까지 결정 권한을 부여한다.

나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언론사 개발자는 “언론사에 들어와서 가장 놀란 것은 취재기자가 디자인과 사진을 컨펌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 내 펜의 권력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기자의 전공 분야가 아닌 개발, 디자인, 사진, 마케팅까지 기자가 결정한다고 했다.

이러한 조직문화는 언론사 혁신과 변화를 명백히 저해한다. 아무리 좋은 데이터 저널리스트, 개발자, 뉴미디어 전문가를 영입해 데려와도 소용이 없게 만든다. 그들의 제안은 전통적인 ‘펜의 권력’으로 번번이 좌절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니 그들이 속한 팀은 ‘혁신’이란 명분으로 근근이 생명줄만 유지하는 곳으로 전락하고야 만다. 투자받은 게 없어 성과를 당장 보여주기도 어렵다. 마땅한 성과 지표도 없다. 협찬·광고 매출 혹은 조회수와 같은 전통적 결과물만 성과로 생각하는 게 언론사다.

데이터 저널리즘이나 개발자, 뉴미디어 전문가가 보여줄 성과물들은 이와는 결이 다른데, 언론사는 ‘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냐’고 이들을 달달 볶는다. 뽑아놓고 키워줄 생각도 없으면서 말이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그래서 혁신을 일궈나갈 좋은 인재들이 언론사를 떠난다.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모 일간지의 ‘신문사 PD’가 회사를 떠난다는 글을 보고 나서였다. 뉴미디어라 불리는 영상 콘텐츠를 신문사에서 만들며 “새로운 저널리즘, 디지털 환경에서의 새로운 문법,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곳이라 자부하며 일했”다는 그였다.

하지만 신문사 PD는 조직 내에서 가장 대우받지 못하는 직군이다. 인턴, 계약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정규직’이라는 파격적 대우를 받은 그조차도 “1년차 기자보다 못한 처우를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걸 감당하기 어려워” 회사를 떠난다고 했다. 그가 회사를 떠나며 남긴 한마디가 뼈아프다. “분명 빠른 변화가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벽은 너무나 공고했습니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독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법도 달라졌고,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독자가 생각하는 ‘언론’의 정의도 바뀌었다. 이렇게 환경이 달라진 만큼 언론사가 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신문사 PD, 데이터 분석가,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콘텐츠를 만들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했다.

언론인이란 범주 안에 기자와 PD만을 넣는 게 시대착오적인 환경이 됐다. 언론을 만드는 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함께 대응하는 모든 이들이다. 언론사가 고집하는 ‘기자 순혈주의’가 더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기자가 ‘다’ 하는 걸까. 왜 기자가 잘 모르는 분야에 가서 모든 걸 결정하고, 당연히 더 대우받는 걸까. 변화와 혁신을 생각하기에도 바쁜 이들에게, 조직 내 생존을 고민하게 하는 언론사의 현실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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