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언론노동조합·미디어오늘이 공동주관한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온 하승수 변호사는 “약품의 효과를 두 배 과장해서 소비자에게 팔고 이익을 얻어왔다면 모든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 일간지의 실제 부수가 조작된 정황이 나타났다. 조사 결과 신문시장 왜곡 가능성이 커 언론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에 언론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게 하 변호사 지적이다. 실제 중앙 일간지 기자가 이날 토론회를 취재했지만 다음날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타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언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26일까지 ABC협회 부수공사 조작 의혹을 다룬 보도는 15건에 그쳤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황희 문체부 장관이 수사 의뢰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을 전달하는 수준이다. 주요 중앙 일간지 보도만 보면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보도 우선순위를 따진 편집권의 결과라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공익적 가치가 아닌 사적 이익 보호를 위한 진실 은폐에 가깝기 때문에 문제다. ABC협회 유료부수 숫자는 신문의 영향력을 상징했다. 하지만 돈을 내고 신문 보는 사람은 주위를 둘러봐도 손에 꼽을 정도다. 급속한 신문시장 쇠퇴에 따른 필연이지만 신문은 ABC협회 유료부수라는 ‘오랜된 신화’를 믿으라고 강요했다. 이번 문체부 현장조사 결과는 ABC협회 부수공사의 유효기간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2002년과 2003년 한차례씩 조선일보 부수를 부풀려서 ABC협회가 발표했다는 내부 폭로가 지난 2008년 나왔을 때와 비교해도 이번 문제는 심상치 않다. 당시 폭로는 ABC협회가 조선일보 지국만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여 조선일보의 신고부수보다 유료부수가 적은 것을 알았음에도 수치를 조작해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조선일보 지국 9곳과 한겨레 3곳, 동아일보 2곳에서 보고부수(유료)와 실사부수를 직접 현장 조사해 두 부수 성실율이 50% 미만이라는 것을 밝혀내면서 신문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사실상 ABC협회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실제 ABC협회 설립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정치권에서 나왔다.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현장조사 결과에 더해 회계 조사에서도 문제가 불거지면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심각한 범죄 혐의가 될 수 있다. 유료부수는 정부 광고단가에 영향을 주고, 정부 보조금 차등 지원의 근거로도 쓰인다. 불공정거래행위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여러 이득을 얻었다면 그 이득 성격에 따라 각각 법률 위반을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 다른 한편으로 신문의 ‘갑질’ 영업 실태도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다. 턴키 계약을 통해 통째로 신문을 넘겨 기업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신문 보기를 강요받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들린다.

▲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긴급토론회가 2월25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최하고 미디어오늘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주관했다. 사진=미디어오늘
▲ ‘ABC협회 부수조작 의혹’ 긴급토론회가 2월25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공동주최하고 미디어오늘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주관했다. 사진=미디어오늘

ABC협회는 미디어오늘 기사에 부수공사의 기본 절차를 모르고 보도한 내용이라며 언론중재위원회에 1억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문체부가 확장일지·배포일지·수금내역 등 자료를 조사했고, 유료부수와 실제부수의 현격한 차이(성실율)를 확인했는데도 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신문사의 부수조사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협회 관리감독권한을 가진 문체부가 ABC협회의 부수조작 의혹을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다. ABC협회는 내부 폭로자인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에 대한 해고를 놓고 미디어오늘이 ‘보복성 징계’로 몰아가고 있다며 옵티머스 투자 부실에 대한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메신저 공격이다. 부수조작 정황이 드러난 ‘압도적 사실’에는 눈을 감고 문제를 제기한 메신저를 도려내어 향후 추가 보도를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시 묻는다. “도대체 2021년 구독자들이 돈을 내고 보는 신문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이 사안은 이 물음에 진실한 답변이 나올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