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를 갔다왔고 국가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사일이 우리 동네에 떨어지고 관공서에서 2km 거리에 포 사격장이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보도조차 안된다면 ‘내가 진짜 대한민국 국민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 것 같다. 그런데 수십년째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그것도 수도권에.

혹시 이런 뉴스 본 적 있는가. 양평의 민가 논바닥에 대전차 미사일 오발탄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분노한 주민들과 군수가 군부대 앞으로 몰려가 ‘수십년째 반복되는 오발사고 더이상 못참겠다’며 사격장 이전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있는가? 그 오발탄이 서울 어딘가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최근 군과 양평군과 주민대표가 오는 2030년까지 사격장 한 곳을 이전하는데 합의했다는 소식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서울 중심 저널리즘의 현주소다.

지난해 11월19일 오전이었다. 악천후 속에서 육군은 대전차 화기 사격훈련을 강행했다. ‘현궁’이라는 우리 군이 자랑하는 대전차 미사일의 성능을 때마침 한국을 방문하고 있던 중동국가 고위장성 앞에서 보여주려고 시험발사를 했다. 현궁은 다른 미사일보다 가볍고 거대한 발사시설도 필요하지 않은데다 관통거리 900mm, 즉 90cm 두께의 강철도 뚫어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대전차 미사일이다. 그런 현궁이 발사됐는데, 미사일은 표적지를 터무니 없이 빗나가 민가를 향했다. 악천후로 열감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사일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민가 주변에 떨어졌다. 다행히 빗물 고인 논바닥에 떨어져 폭발은 면했다.

하지만 그 논은 살림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문전옥답이었다. 어땠을까. 한 주민은 언론인터뷰에서 ‘집에 있는데 소리가 엄청 커서 놀라 쓰러졌다’고 말했다. 방송국 취재차량도 왔다. 그런데 열심히 취재해간 기자는 방송에서 이런 제목으로 리포트를 했다. ‘표적 빗나가 논바닥 때린 현궁… 외빈 앞 체면 구겼다’ 수십년간 오발사고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는 주민보다 다른 나라 귀빈 앞에서 망신당했다는 내용이 주안점이었다. 공영방송은 딱 40초, 단신처리했고 그나마 경인지역만 볼 수 있는 ‘경인뉴스’ 타임에 소개됐을 뿐이다.

▲ 지난해 11월19일 SBS 8뉴스 ‘표적 빗나가 논바닥 때린 ‘현궁’… 외빈 앞 체면 구겼다’ 보도 갈무리
▲ 지난해 11월19일 SBS 8뉴스 ‘표적 빗나가 논바닥 때린 ‘현궁’… 외빈 앞 체면 구겼다’ 보도 갈무리

나는 지난해 우연한 기회에 양평에 갔다가 이런 상황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육군의 대포 사격장이 양평군청과 직선으로 2km 거리에 있었다. 이번에 사고 난 용문산 사격장은 천년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산에 있다. 지난 2008년 훈련소에서 쏜 조명탄 탄피가 근처 사찰 주차장과 민가로 떨어지고 관광버스 뒷좌석 옆유리를 관통해 놀란 관광객 2명 등이 치료를 받기도 했다. 사격훈련으로 인한 진동피해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물맑은 양평에는 노후를 보내려고 이주해온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사는데 그 중 4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내기도 한 장영달 전 의원도 자신의 집 천장 모서리 한 부분이 사격훈련의 진동으로 우수수 떨어진 적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너무 기가 막혀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했더니 20사단장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사과를 하더란다. 장 전 의원은 이후 양평군민들과 함께 사격장 이전협의를 위한 민간협의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최근 그 끈질긴 협의가 소중한 열매를 맺었다. 지난 2월9일 군민대책위원회와 양평군, 7군단장이 ‘용문산사격장 갈등해소 이행 합의각서’를 체결한 것이다. 각서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사격장 이전을 추진한다는 전제 아래 연구용역 수행과 재발방지책, 훈련 피해 종합대책안이 명시됐다. 40년 숙원사업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거다. 그러나 방송3사는 침묵했고 자세한 경과와 맥락을 보도하는 것은 양평지역 독립언론이 유일하다. 이게 인구 1370만명이 사는 경기지역 방송보도의 현실이다.

지난 2월23일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은 의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경기도형 공영방송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수도권순환도로로 바꿨듯 저널리즘도 이제 변방의 북소리를 벗어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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