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로부터 부수 보고를 받는다. 성실률(격차) 확인을 위해 표본지국 공사를 준비한다. 표본지국 선정·교체는 특정 관리자가 참관인 없이 단독 수행한다. 표본 선정과정 기록이 없어 실제 무작위 표집을 실시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표본지국은 부수 공사 7일 전 신문사에 통보한다. 신문사가 표본지국 교체를 요청하면 해준다. 본사에서 내려온 직원은 공사 전 표본지국을 방문해 유료부수 증빙자료를 직접 수정·관리한다. 

2인 1조 공사원이 표본지국을 찾아가지만 유료부수 증빙자료를 확인했는지, 어느 범위 자료까지 확인했는지 알 수 있는 증거자료는 없다. 그리고 본사 직원은 대기하며 표본지국 공사과정을 지켜본다.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검사로 드러난 ABC협회의 부수인증과정이다. 이런 과정으로 나온 조선일보 지국 성실률은 98.09%. 문체부가 지난 1월 현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한 조선일보 지국 성실률은 55.36%였다. 

문체부는 ABC협회에 “신문사 보고부수 확인, 표본지국 선정방식 개선, 공사원 배정의 투명성 제고 등 부수공사 과정 전반에 걸친 재검토 및 개선”을 권고했다. 이성준 ABC협회 회장은 22일 통화에서 “(문체부가) 지정한 기일내에 모든 부분에 대해서 성실히 자료를 제출토록 하겠다. ABC협회 독자적으로 검토할 수 없는 제도개선 등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과 협의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회가 성실히 권고 사항 이행에 나설지는 지켜봐야 한다. 

▲ABC협회.
▲ABC협회.

앞서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2021.2.3. 조사대비’란 제목의 ABC협회 내부 문건에는 “조사절차 무시, 결론 내리고 조사? 감독기관의 갑질”, “문체부는 제출 자료 무시하고 일부 언론보도와 거짓된 진정내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죄인 취조하듯 질문”, “공사원에 대한 인권침해, 협박당하는 느낌”, “겁박행위 자행”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ABC협회 한 관계자는 “내부 비대위 회의에서 1월29일 문체부 면담에 참여했던 비대위원들 면담을 바탕으로 비대위원장이 작성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 대한 내부 정서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와 관련 ABC협회 사무검사를 맡았던 문체부 미디어정책과는 “실제 조사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 예민한 반응들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ABC협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문체부 면담 과정에서 한 직원이 문체부측과 언쟁을 벌였다고 들었다”며 “오히려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왜 옵티머스 투자 건에 관심이 없고 부수에만 관심을 갖냐, 이런 대응을 정해놓고 조사를 받은 형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내부 제보자인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옵티머스 투자 건으로 해고됐다. 

이런 가운데 언론계 파장을 일으킨 신문 유료부수 조작사태는 ‘수사단계’로 넘어갔다. 여야 국회의원 29명은 지난 18일 조선일보와 ABC협회를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국가보조금법 위반, 형법상 사기죄 등 혐의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선일보가 작년에 116만 부 유료부수로 국가보조금과 정부 광고를 받았는데 유료부수가 절반밖에 안 된다면 절반은 사기로 받은 것으로, 국민 세금을 탈취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도 같은 날 이성준 ABC협회장과 직원 12명을 업무상 배임·업무방해 등 혐의로 국수본에 고소했다. 박용학 전 사무국장은 이들을 향해 “언론매체의 부수를 공정하게 조사해야 하는 임무가 있음에도 조선일보 공사결과를 조작했다. 이를 통해 조선일보가 각종 광고비와 지원금 산정에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해 협회의 공신력을 훼손했고,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들이 조선일보와 ABC협회 고발장을 제출하러 경찰청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 정철운 기자
▲지난 18일 오후 2시 국회의원들이 조선일보와 ABC협회 고발장을 제출하러 경찰청에 들어가는 모습. 사진=ⓒ 정철운 기자

향후 신문지국을 상대로 국수본 수사가 이뤄지면 조선일보의 실제 유료부수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김동조 전국신문판매연대 위원장은 “걸릴 것이 걸렸다는 분위기다. 지국장들은 국수본 조사에 응할 것이다”라고 밝힌 뒤 “신문사들이 필요없는 부수를 밀어내면서 높은 지대를 강요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 문제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체부는 사무검사 보고서에서 “증빙 여부를 불문하고 유가, 준유가, 재무, 홍보·기증·기타 등 지국별로 배부되어 유료부수로 감안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목을 모두 인정했다”고 밝혔다. 향후 국수본을 통해 드러날 지국 성실률이 문체부 결과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조작 증거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미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는 수사가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언론계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겨레는 17일자 지면에서 “한겨레도 부수를 부풀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며 사과문을 내고 “발송 부수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먼저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겨레 외에 아직까지 사과문을 낸 신문사는 없다. 언론노조는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로 신문산업은 자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고 부수 조작을 공모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며 “ABC협회와 문제가 된 몇몇 언론사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언론개혁의 중대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ABC협회 내부 진정서를 시작으로 문체부 사무검사, 국수본 고발까지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현 정부 들어 가장 유의미하고 가시적인 언론개혁 움직임이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TBS ‘해시태그’에서 “언론은 신뢰 산업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산업은 근본적으로 붕괴한다”며 “(붕괴를 막기 위해) 처벌이 확실해야 한다. ABC협회만 처벌할 게 아니라 조작 가담한 언론이 있다면, 보조금 환수부터 그 이상의 배액 배상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일보는 문체부가 종이신문 부수와 온라인신문 트래픽을 함께 조사하는 통합ABC제도 도입을 권고한 대목을 두고 “어뷰징과 조회수 경쟁에 내모는 것으로 저널리즘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심영섭 경희대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포털 환경에서 발생한 어뷰징과 조회수 경쟁 문제를 디지털ABC공사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수다. 포털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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