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권센터는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취지의 저서에 대해 “취재윤리를 어긴 책이자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가해의 집약체”라고 성명을 내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25일 ‘기자의 책무는 취재윤리와 인권보호에 있다’란 제목의 성명을 냈다. 단체는 “손 기자는 책 출간 전부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기자’가 ‘취재’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로 이루어진 책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비극의 탄생’은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어긴 책이자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피해의 집약체”라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이 책이 합리화를 위해 사실을 부정한다고 밝히고 이를 ‘취재행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언론인권센터는 “기자가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진실을 취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이는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과 명백히 다르다. 일반 사회 여론과 동떨어지고, 검증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없으며 취재 행위로는 더더욱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과 서울시 전·현직 직원과 지인 참고인조사, 서울시·경찰·검찰·청와대 자료 검토한 직권조사 결과 지난 1월 “박 전 시장이 성희롱에 해당하는 성적 언동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단체는 “하지만 손 기자는 대화의 빈도와 목적, 내용이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며 “본인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검열하려는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지난 17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언론인권센터는 책의 가장 큰 문제로 “끊임없이 기자가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을 꼽았다. 기자가 사회적 영향력과 권위에 기대 편견에 기반한 질문과 주장을 펼 때 해악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언론인권센터는 “기자가 취재 보도한 내용은 생산자가 ‘기자’라는 이유로 신뢰성, 객관성을 담보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자의 취재는 일반인이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며 “손 ‘기자’는 자신의 관찰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어 시대에 뒤떨어지는 개인 의견을 취재기로 둔갑시킨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손 기자가 취재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증언을 책에 쓴 점도 지적했다. 단체는 “손 기자는 (책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소명’을 위해 최종 동의를 구하지 않고 증언을 책에 옮겼다고 밝혔다”며 “취재원이 기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했다 하더라도, 후에 보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취재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 3조에도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는 항목이 있다”고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처럼 언론의 역할도 그에 맞춰 변화, 발전해야 한다”며 “센터는 ‘비극의 탄생’이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언론인권적 관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판단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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