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태조 이성계의 환영을 보고 백성들을 도륙한다. 충녕대군(세종대왕)이 6대조인 목조를 ‘기생과 놀아난 핏줄’이라고 말한다. 최영 장군에 대해 “고려 개발라 새끼들이 부처님 읊어대면서 우리한테 소, 돼지 잡게 해놓고서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SBS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묘사 외에도 실존 인물에 대한 ‘역사 왜곡’이 논란이 됐다. 조선왕조 가문인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등 종친회는 지난 25일 입장을 내고 “내부적으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최영 장군 묘사 대목에 대해 동주(철원) 최씨 대종회는 29일 SBS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입장을 냈다. 해당 드라마가 ‘역사왜곡’을 했다며 법적 처벌을 요구한 청원 글도 있다.

▲ '조선구마사' 포스터.
▲ '조선구마사' 포스터.

사극 속 인물 묘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년 전 방영된 KBS 사극 ‘태조 왕건’의 경우 후백제 견훤이 신라 수도 서라벌에 기습하는 내용이 방영되자 경주지역 박·석·김씨 문중이 반발했다. 이들은 “신라 경애왕이 백제 견훤에게 치욕을 당하는 장면은 역사기록에도 없고 작가의 주관이 반영돼 사실을 왜곡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법적 대응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4년 영화 ‘명량’ 개봉 당시 배설 장군 후손들이 제작사와 배급사에 제기한 사자 명예훼손 형사 소송이다. 당시 경주 배씨 비대위는 고소장을 통해 배설 장군이 △ 왜군과의 내통 및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암살 시도 △ 거북선 방화 △ 휘하 장수 안위의 화살에 맞아 죽음을 맞는 장면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앞서 2011년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조선시대 문신 신숙주가 계유정난에 개입한 것처럼 묘사되고, 아들 신면이 세령 공주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처럼 묘사된 내용이 논란이 됐다. 신숙주 부자가 부정적으로 그려지자 신씨 후손 108명은 사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후손들은 “드라마의 허위 내용은 후손들이 감수해야 할 범위를 넘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 KBS '태조왕건'에서 경애왕에 대한 굴욕적 묘사를 하자 후손들이 반발했다.
▲ KBS '태조왕건'에서 경애왕에 대한 굴욕적 묘사를 하자 후손들이 반발했다.

이들 소송은 무혐의·원고 패소 판결로 막을 내렸다. 일례로 ‘공주의 남자’ 소송 당시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15부는 “드라마 속 설정은 작가에게 허용되는 범위에서 역사적 사실을 각색한 것으로 보이며 방영에 앞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허구라는 점을 고지해 시청자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사극이 창작의 영역인 데다 허구임이 인지되기에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조선구마사’의 경우 좀비가 등장하는 설정 등 판타지 세계관이 분명하기에 법적 대응을 해도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역사왜곡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사극 자체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모든 사극은 역사에 없는 내용을 더하거나 재해석하는 등 왜곡을 한다. ‘정통사극’인 KBS 사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 유년 시절부터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적대적 관계로 묘사해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 KBS ‘대조영’의 경우 거란족 출신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고구려 출신이라는 설정을 넣고 대조영과 여러 악연이 있는 것처럼 창작했다. ‘태왕사신기’ ‘주몽’ ‘기황후’ 등은 세세한 에피소드 다수가 허구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실제 인물과 연관된 작품에 대한 평가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게임에 등장하는 조상의 능력치가 낮아서 후손이 문제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인물을 좋아하거나 후손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는 일”이라며 “다만 역사가 모든 것을 기록하진 않았으니 사극은 무조건 상상을 가미한다고 봐야 한다.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은 굴욕적인 최후를 맞았는데 ‘육룡이 나르샤’ 등에서 카리스마 있게 나온다. 이 같은 내용도 엄밀하게 보면 왜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창작물 전반으로 보면 역사에 허구를 더하는 작품은 낯설지 않다. 중국 후한 시대를 다룬 역사서 삼국지 정사 기준에서 보면 소설인 삼국지연의 속 조조 등 인물에 대한 묘사 역시 창작을 통해 비하하는 요소가 많다. 일본은 일본 전국시대 인물 오다 노부나가를 ‘마왕’으로 묘사하는 게임, 애니메이션도 있다. 

다만 ‘역사왜곡’인지 아닌지를 떠나 개연성이 부족한 묘사를 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최영 장군이 고려 왕조의 기득권이었던 면모가 있기에 조선 시대에 그를 비난하는 대사 자체는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 힘들다. 반면 태종, 충녕대군에 대한 묘사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으로 볼 수 있다. 왜 이 시대를 다뤄야 했는지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지 못했다. 더구나 부실한 고증으로 인한 중국풍 소품과 세트 등으로 당대를 현실성 있게 그려내지 못했고, 논란을 부채질한 면도 있다.

▲ SBS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이인임'을 '이인겸'으로 이름을 바꿨다.
▲ SBS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이인임'을 '이인겸'으로 이름을 바꿨다.

특정 시대를 드러내면서도 실존 인물을 가상의 인물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판타지 세계관을 다룬 ‘킹덤’의 경우 조선시대라는 배경만 차용하고 인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 ‘조선구마사’와 같은 작가가 집필한 ‘철인왕후’만 해도 극중에 등장하는 풍양 조씨 후손의 반발 이후 ‘풍양 조씨’를 ‘풍안 조씨’로 바꿨고, 2013년 방영된 MBC ‘기황후’의 경우 ‘충혜왕’에 대한 왜곡 논란이 불거지자 가상의 인물인 ‘왕유’로 설정을 바꿨다.

‘조선구마사’를 제작한 신경수 PD의 전작인 SBS ‘육룡이 나르샤’는 처음부터 고려 후기 권신 이인임을 ‘이인겸’으로 바꿔 등장시켰다. 당시 제작진은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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