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천국인 미국은 공영방송보다 민영방송이 훨씬 센 나라다. 그래서 NBC나 CBS, ABC, 폭스는 알아도 공영방송인 PBS는 잘 모른다. NPR은 더 모른다. 미국 공영방송 중 TV는 PBS이고 라디오는 NPR이다. 둘 다 힘들다.

막대한 수신료 수입을 통해 안정적 재원을 확보한 영국 공영방송 BBC와는 달리 미국 공영방송들은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 생존 위기를 헤쳐왔다. 작은 정부를 표방한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상업방송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다국적 미디어그룹으로 몸집을 부풀려나갔다. 미국 공영방송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에 비유되기도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고 있다. 유튜브로 대변되는 뉴미디어가 방송시장을 완전히 흔들고 있는 요즘, 공영라디오 NPR이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타고 독자적 수익 모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팟캐스트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 무렵 NPR이 라디오로 방송하던 시사, 교양, 생활, 문화, 음악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들이 PC와 휴대폰과 아이패드를 타고 다시듣기로 되살아났다. 공영라디오가 묵묵히 만들어낸 다양하고 수준높은 콘텐츠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수익모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가 모든 미디어를 빨아들일 무렵, NPR가 갖고있던 보석같은 음악 프로그램이 빛났다. 그것은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 라고 하는 작은 음악회였다.

말 그대로 작은 책상이 즐비한 사무실 안에서 열리는 콘서트인데 밥 보일렌이라는 NPR 음악PD의 사무실 안에 가수를 불러놓고 라이브 공연을 했다. 2008년부터 시작했는데 NPR의 대표적 음악프로그램이 됐을 뿐 아니라 보이는 라디오 영상을 올리면 3만회부터 수천만회 조회수를 기록한다. NPR 뮤직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는 2021년 4월13일 현재 567만명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구독자수만이 아니다. BTS와 아델 같은 슈퍼스타들이 그 작은 공간에서 라이브를 했다. BTS 7명이 사무실 한켠에서 노래부르는 모습을 상상이나 했던가. 그런데 7명이 앉아 어깨춤을 추며 자신들의 히트곡인 ‘다이너마이트’를 부른다.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의 NPR 사무실 대신 서울의 사무실에서 라이브를 한 BTS는 14분간 세 곡을 불렀다. 진행자도 없고 늘어지는 토크도 없이 오로지 라이브 음악뿐, 현란한 조명이나 음향효과, 백댄서도 없이 오롯이 가수 본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레옹’의 주제곡을 부른 슈퍼스타 ‘스팅’은 70세가 넘는 나이로 대낮에 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라이브를 했고, 그래미상 15회 수상자 알리샤 키스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천진난만하게 음악하며 놀았다.

▲ 지난해 9월21일 Tiny Desk (Home) Concert에 출연한 BTS. 사진=Tiny Desk (Home) Concert 유튜브 갈무리
▲ 지난해 9월21일 Tiny Desk (Home) Concert에 출연한 BTS. 사진=Tiny Desk (Home) Concert 유튜브 갈무리

가장 큰 강점은 출연진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NPR 제작자들은 처음부터 출연진 유명세를 따지지 않았다. 다양성이다. 공영방송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다. 밥 보일렌 PD가 SBS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섭외 원칙은 ‘NPR뮤직의 동료들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무대에 세우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믿고 좋아하는 뮤지션이 콘서트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출연진은 다양했다. 모르는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많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귀를 열어두게 된다. 음악으로 전해지는 뮤지션 느낌과 정서가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음악만이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자신의 음악을 담은 비디오를 방송국에 보내온 수천명의 뮤지션들 중 기회를 주기도 한다는데 ‘씽씽 밴드’라는 한국의 민요 락 밴드가 출연해 ‘뱃노래’를 락버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후 그들은 퓨전 국악 뮤지션으로 더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이런 ‘작은 음악회’를 지역 라디오 방송이 해보면 어떨까. 출연진 인지도와 몸값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이 좋으면 된다. 광교신도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여주 신륵사의 고요함을 무대로, 파주 오일장의 정겨운 시장내음을 마주하는 작은 음악회와 이를 통해 활력을 얻게 될 수많은 내일의 스타들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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