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관련 보도 중 역사에 길이 남을 내용이 나왔다. 지난 13일 남양유업이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린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기사화한 내용이다. 코로나19에 오염된 세포에 불가리스를 투여했더니 무려 77.8% 저감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내용인데 사실이라면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될 만한 뉴스였다.

관련 뉴스 댓글엔 노벨상 수상감이라느니, ‘[속보] 불가리스 먹고 선풍기 틀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멸’과 같은 조롱 글이 달렸다. 하지만 시장은 요동을 쳤다. 연구 내용에 대한 검증 없이 남양유업 측 홍보 자료를 그대로 전한 뉴스 탓이다.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내용이었지만 언론이 ‘권위’를 부여하자 여론은 검증된 내용으로 받아들였다. 기존 주가가 28%까지 올랐고, 편의점에선 불가리스가 매진됐다.

질병청이 “인체 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원리를 검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예방·치료 효과가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나서야 남양유업은 “세포 단계 실험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일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보도가 전달됐다”며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시장을 교란할 의도가 있었느냐는 수사 기관에서 밝혀질 일인데 확실한 것은 남양유업이 사실상 특정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코로나19를 끼워 넣었다는 것이고, 언론은 홍보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언론은 남양유업이 코로나 마케팅을 벌였다고 핏대를 세웠지만 부정확한 내용을 검증 없이 ‘논란’거리로 확대 재생산해 클릭을 유도한 언론도 공범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남양유업 심포지엄 내용을 언론이 바로잡는 모습을 보였다면 모두 최악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남양유업이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자 실제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4월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 연합뉴스
▲ 남양유업이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자 실제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4월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 연합뉴스

남양유업은 여론의 역풍으로 수억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되는 사태를 맞았는데 언론의 후속 책임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관련 보도 첫 시작은 뉴시스다. 이후 뉴시스는 남양유업 사과를 속보를 전했는데 정작 독자에게 보도 경위나 사과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이번 문제는 그동안 기업 홍보 자료를 그대로 기사화했던 문제 등이 겹친 한국 언론 신뢰도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언론계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2일 ‘조두순이 마트에 떴다’라는 언론 보도 역시 낯부끄럽기 매한가지다. 조두순을 목격했다는 내용의 게시글과 사진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추정된다’라는 말에 숨긴 했지만 언론은 관련 글을 인용해 사진 속 인물을 조두순으로 확정했다. 법무부와 경찰은 지난 석 달 동안뿐 아니라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이 찍힌 당일 조두순이 외출한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의 커뮤니티 인용 보도는 오보로 드러난 것이다. ‘조두순 낙인’이 찍힌 사진 속 인물이 피해를 호소하기까지 했다.

커뮤니티 글에 머물렀으면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을 일을 언론이 조두순이라고 기정사실화했고, 결국 ‘가짜뉴스’로 판명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최초 보도를 했던 서울신문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은 보도로 피해를 입으신 분과 독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 말씀 드립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매체는 자사 보도를 부인하면서까지 ‘해프닝으로 끝났다’라며 후속 보도를 내놓기 바빴다.

교차 확인을 하지 않고 반론을 받지 않아서, 즉 발로 뛰는 취재 원칙을 지키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많이 읽히려고 포털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였으니라는 이딴 소리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사과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책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