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작가가 최초 아이템을 골랐고 원고도 자율로 썼다. 업무 재량권이 있다.”
판정서 “그 정도 재량은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보조원이 아니고서야 일반 근로자에게도 통상 부여된다.”

M “작가에게 근무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지시한 적 없다.”
판 “뉴스 생방송 특성상 근무시간은 사실상 정해졌다. 제작진과 유기적 협업 때문에 출근할 수밖에 없던 걸로 보인다.”

M “원고 작성에 구체적 지시를 하지 않았다.”
판 “기사 요약은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작가는 수년 간 일했고 방송 원고도 정형화돼있다. 별도 구체적 지시가 불필요해 보인다.”

지난달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법적으로 처음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서가 공개되자 방송작가들이 “역사적 판정문”이라고 환영했다. 이들은 특히 판단 쟁점마다 노동자성을 상세히 입증한 해설에 주목해 “방송업계 특수성을 굉장히 잘 이해했다”고 평가했다.

중노위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종속성’ 판단 기준 8가지를 상세한 해설과 함께 일일이 열거했다. 대법원은 계약 형식을 떠나 당사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한 ‘종속 관계’에서 회사에 노동을 제공했는지 보라고 판시하며 종속성 지표를 크게 8개로 나눴다.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행사하는지 △업무 내용을 정하는지 △근무 장소와 시간을 지정하는지 등과 △근로제공이 계속적이고 전속적인지 △당사자가 독립 사업을 영위하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제공의 대가인지 등이다.

▲지난달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미디어오늘
▲지난달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 사진=미디어오늘

 

중노위는 먼저 작가들이 총괄 PD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작가들이 뉴스에 나갈 아이템을 먼저 선별한 건 맞지만, 담당 PD가 이를 기초로 아이템을 확정하고 방송 순서도 정했으며 방송사 보도 기조나 아이템 정치적 성격에 따라 보도 내용을 정했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이 대목에서 ‘작가는 넓은 업무 재량권을 가지며 창작 업무를 한다’는 MBC 주장을 기각했다. 작가의 재량권은 통상 일반 노동자들이 가지는 업무 재량권과 다를 바 없고 이같은 재량권 없이 일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또 작가들이 뉴스 프로그램 원고를 쓴 점에 비춰 “고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업무로 보이지 않고, 작가들이 동일 업무를 수년 간 담당한 점과 방송에 적합한 원고가 정형화됐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이들이 담당 및 총괄 PD, 편집자, 스튜디오 담당자 등과 실시간으로 소통했다며 작가 업무를 “생방송 코너 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른 근로자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수행할 필요성이 크다. 작가 업무만 따로 떼어 독립 사업자에게 위탁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쟁점마다 조목조목 해설·반박 풀어쓴 중노위

중노위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했다고 판단하며 적극적 해석 태도도 보였다. 노동위가 통상 노사 입장이 반대되는 대목에서 회사 설명에 더 귀 기울였다면 이번 중노위는 업무 지시자로서 회사의 우월한 지위를 숙고했다. 가령 이 사건 작가는 뉴스데스크 업무를 추가로 맡은 2개월 동안 사실상 휴일 없이 일했다고 밝혔다. 중노위는 이에 “자발적으로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고 사용자가 방송사 사정에 따라 추가로 업무 지시했다고 보는 게 정황상 더 타당하다”고 봤다.

MBC 측은 업무 위임 계약서(프리랜서 계약서)에 ‘기타 상기 업무와 관련한 필요 업무’가 업무 내용으로 정해졌다고 강조했다. 중노위는 “위임 업무 범위가 명확치 않다. 이런 추상적인 규정은 근로계약에 따라 사용자에게 폭넓게 인정되는 업무지시권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근무 시간 및 장소도 “생방송 뉴스 특성에 비춰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MBC는 작가의 근무 장소·시간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중노위는 “모집 공고에 ‘새벽 근무 가능자’가 적혀 있었고 실제 작가들이 일정한 시간에 일을 했으며, 근무지가 방송사로 정해진 건 담당 PD 등과 유기적으로 협업할 필요가 있어서”라고 봤다.

서울지노위는 작가들이 만 9년 간 근속한 사실을 중요하게 고려치 않았다. 근로 제공의 계속성(근속 수준)과 전속성(한 사업장 전속 여부)은 대법 판례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 기준이다. 중노위는 “9년 간 계속 근로를 제공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되는 이상 계속성이 부인될 여지는 없다”며 “MBC가 겸직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하나, 작가들의 새벽 근무를 감안하면 사실상 겸직은 어려워 보이고, 실제로 이들이 MBC 작가 외 다른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 신청인 2명 중 1명인 방송작가 ㄱ씨 근무 당시 모습.
▲이번 사건 신청인 2명 중 1명인 방송작가 ㄱ씨 근무 당시 모습.

‘작가들이 독립 사업을 영위하는지’ 여부에 있어 중노위는 “좌석, 컴퓨터 등 필요한 비품을 MBC로부터 받았다. 자기 업무를 제3자에게 위임할 수 없었다. 작가들은 근로 제공을 통해 어떤 이윤 창출도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손실 위험도 스스로 지지 않았다”며 독립 사업자로 보기 힘들다고 봤다.

작가들이 회당 지급받은 보수에 대해서 중노위는 “명시적인 기본급·고정급은 없었지만 맡은 코너의 방송 횟수는 매달 거의 동일했고 고정적인 보수를 지급받았다고 볼 수 있다”며 “작가 업무의 대가로 받은 것이므로 근로 제공 대가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MBC는 작가들이 프리랜서로서 회당 보수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중노위는 취업규칙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도 형식보다 실질을 따졌다. 작가들이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각종 인사규정을 적용받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작가들의 업무 과정을 보면 ‘취업규칙 적용을 받았다고 해석할 사정이 없지 않다’는 판단이다. 중노위는 “MBC가 해당 작가에게 경위서를 받은 점, 업무에 필요한 특정 교육을 받도록 한 점, 계약을 해지하면서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토록 한 점”을 예로 들었다. 또 취업규칙 적용 문제는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 신청인 작가가 퇴사 전 후임자에게 준 코너 업무 인수인계서. 작가의 구체적인 업무가 적혀 있다.
▲이 사건 신청인 작가가 퇴사 전 후임자에게 준 코너 업무 인수인계서. 작가의 구체적인 업무가 적혀 있다.

 

전문가 “잘 쓴 판정문, 행정소송 가도 문제 없을 것”

이번 사건에서 작가들을 대리한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중노위 판정문은 기존 대법원의 방송업종 노동자성 인정 판결들과 같이 ‘방송업 특수성’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 채택했다”며 “사용자(방송사)가 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내세워 온 ‘재량’, ‘창작’이라는 도식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신청인 작가들 주장을 100% 인용하면서 명확히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잘 쓰여진 판정문이다. 행정소송에 가더라도 (결과가) 유지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MBC가 소송을 제기하기에 고민이 많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MBC라는 특정 사업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방송계에 만연한 부당한 차별과 비상식을 바로 잡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언론노조는 작가지부 조합원들의 포기하지 않는 뚝심이 만들어낸 투쟁의 성과를 이어받아 차별 해소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을 중단 없이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20일 성명을 내 “두 작가(사건 당사자) 외에도 MBC 내 수많은 프리랜서 작가, MBC 외 전국의 방송사에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작가들이 존재한다”며 “고용노동부가 신속하고 과감한 특별근로감독 집행에 나서, 이같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의 근로자성을 세세히 따져달라”고 촉구했다.

방송작가지부는 이어 “MBC는 판정문을 송달받은 오늘부터 구제 명령을 이행할 의무가 생긴다. 구제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1억 6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며 “판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두 작가를 복귀시키는 것만이 MBC 박성제 사장이 해고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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