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완화 등 부동산 규제 기조 선회를 시작했다. 4·7 재보궐 선거 패배 원인을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실패로 보고 대응에 나선 것이다. 동아·조선·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 신문들은 환영하거나 ‘근본적인 정책 변경’을 재촉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서울신문 등은 뚜렷한 대원칙 없는 정책 변화는 오히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고 우려했다.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인 1주택 가구 종부세 부과 기준을 ‘12억원 초과’로 상향하고 1주택 가구의 공제 항목과 한도를 늘리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재산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당이 19일 출범한 부동산특별위원회는 종부세와 재산세 부과 대상 조정, LTV·DTI 완화를 논의할 계획이다.

▲21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21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20일 “종부세는 초고가주택을 보유한 부자들에 대한 부유세 개념으로 도입됐는데, 집값이 상승하면서 과세 범위가 너무 확대됐다”며 “6월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세 상황을 보면서 면밀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광재 의원도 “종부세 부과 기준 대폭 상향”을 주장했다.

여야는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종부세 완화를 집중 요구했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시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다시 살펴보고 제자리 잡게 해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대책”이라며 보유세 인하를 촉구했다. 홍 직무대행은 “투기 억제와 공급 확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정책 기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어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21일 동아일보 5면
▲21일 동아일보 5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투기 방지를 위해 종부세율·공시가격 인상 등 보유세를 강화해온 데서 정책 방향을 급선회한 것이다. 한국일보는 “그간 야당의 줄기찬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았지만 보궐선거를 계기로 여당에 이어 정부 기류도 바뀌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10월 이낙연 대표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종부세에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보유세 강화를 강조하던 기존 태도와는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여당은 예상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제 완화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난 수도권 유권자들의 세금 불만을 잠재우지 않으면 내년 대선은 물론이고 이어지는 지방선거까지 고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이런 움직임에 ‘세금 기준 완화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최종 결정은 다음 달 새 여당 지도부와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한 뒤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여러 언론이 여당의 ‘오락가락’ ‘슬금슬금’ 규제완화라며 비판했다. 한겨레는 “미세 조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뚜렷한 원칙 없이 세제와 금융을 아우른 정책 변화를 가져올 경우 파장이 우려된다”고 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 인터뷰로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과세 형평성 제고와 주거 안정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라며 “민주당이 정책을 뒤집는다면 마땅한 이유나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1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21일 한겨레 1면 머리기사

한겨레는 “일부 전문가는 지금은 집값을 하향안정화 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며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정부여당의 정책은 지금의 집값 수준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 같다’”는 비판을 전했다. 또 최근 공시가격 논란은 사실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세금이나 각종 부담금은 과표나 부과 기준 등으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데 마치 ‘공시가격 = 과세 기준’인 것으로 오인되고 있다는 얘기다.

경향신문도 “그동안 정부가 강조해온 정책 기조를 너무 쉽게 뒤집는다”며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전 국민 중 종부세 내는 사람이 지금도 2%가 안 되는데 대상을 축소하는 건 안 맞는다’면서 ‘집값 상승이 과한 게 문제인데 해결책으로 세금을 내리는 건 진단을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부동산 민심을 잡으려다 조세정책까지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며 “재정을 통한 정부 복지의 중요성이 커지고 그러려면 고액자산가에 대한 과세가 불가피한데 여론에 따라 고액주택 과세를 줄이면 나중에 다시 늘리기는 힘들다”는 정준호 강원대 교수 말을 전했다.

▲21일 경향신문 4면
▲21일 경향신문 4면

서울신문은 사설을 내 “그것(부동산 정책을 손보는 것)이 기존 부동산 정책의 골간을 무분별하게 흔드는 것이어선 안 된다. 자칫 시장에 ‘역시 버티면 정부가 두손 들게 된다’는 잘못된 신모를 주면서 가까스로 진정되고 있는 집값 상승세가 다시 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은 국민이 아파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세심하게 진단한 뒤 종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부자 감세’ 기대만 키우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고가주택에 적용할 종부세 기준점을 오는 6월 시행도 해보기 전에 흔드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 보완으로 “차제에 세금을 주택 매도·상속 시에 내는 ‘과세이연제’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고 했다.

▲21일 서울신문 사설
▲21일 서울신문 사설
▲21일 경향신문 사설
▲21일 경향신문 사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설을 내 환영했다. 중앙일보는 “여권발 보유세 경감 논의, 속도감 있게 결론내야” 제목의 사설에서 “적절한 판단이라고 본다”며 “4·7 재·보궐선거의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은 “관건은 속도감 있는 결론”이라며 “이와 함께 공시가격 산정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이 근본적 규제 완화를 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인 가운데 조율되지 않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홍 직무대행 발언에 “부동산 정책을 보완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언제 어느 수준까지 완화할지 당정 간 조율이 안 됐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조선은 “우군인 시민 단체가 “개혁 후퇴”라며 반발하는 것도 변수”라고 했다.

▲21일 조선일보 5면
▲21일 조선일보 5면

가상화폐 불법행위 단속, “차라리 암호화폐 정보제공이 더 효과”

정부가 10개 부처 합동으로 6월까지 가상화폐(암호화폐)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한다고 밝혔다. 너도나도 투기성 투자에 나서며 과열 양상이 나타나고, 자금세탁과 사기 등 불법행위가 난무하자 정부가 특별 단속에 나선 것이다. 신문들은 이것이 ‘뒷북’ 처방이라며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마땅한 주무 부처도 꼽기 어려운 데다 규제책이 마련되지 않고, 가상화폐가 금융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 시세조종을 비롯한 불공정 거래가 있어도 단속이 어려운 한계 등 때문이다.

국무조정실과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10개 부처는 오는 6월까지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과 불법 다단계, 투자 사기 등 불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특별 단속을 벌이겠다고 20일 밝혔다. 정부 발표 뒤 암호화폐 가격은 비트코인이 8200만원을 넘나들다 일주일여 만에 6000만원대로 내려앉는 등 떨어졌다.

▲21일 한국일보 2면
▲21일 한국일보 2면

신문들은 정부 움직임이 뒤늦었다고 했다. 단속이 시장 과열을 해소하는 데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내놨다. 한국일보는 “2018년 1월에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까지 목표로 하는 가상화폐 거래금지 특별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투자자들의 반발로 정부가 한발 물러선 뒤, 지금까지 이렇다 할 규제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외형상 가상화폐 주무부처는 국무조정실이지만, 4, 5년 전 ‘임시방편’으로 정해진 격이라 애매하다고도 했다. 한국일보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도 가상화폐 거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경우 민원을 넣을 만한 부처가 없다”고 했다.

한겨레는 “정부 단속은 ‘거래 과정에서 불법행위와 불투명성을 막는다’는 기존 방침에 따른 것이지, 합법적인 거래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급팽창하고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격 급변동이 낳을 후유증을 예방하는 조처와도 거리가 멀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부는 2018년 2월 암호화폐 단속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거래 투명성 확보와 불법행위 차단을 정책 방향으로 잡았다. 거래 차익에 대해선 내년부터 과세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그러나 암호화폐를 화폐는 물론이고 금융자산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의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허위 공시와 비슷한 불공정 거래가 있어도 단속·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겨레는 “정부 정책의 불가피한 한계”라며 “암호화폐 거래자들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익이 자신의 몫이듯, 손실도 누가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했다.

▲21일 한겨레 사설
▲21일 한겨레 사설
▲21일 서울신문 8면
▲21일 서울신문 8면

서울신문은 “업계와 학계 반응은 싸늘하다”며 “차라리 수백 개에 암호화폐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투자자에게 알리는 것이 피해 예방에 효과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서 이미 가상자산으로 인정한 만큼 투자자를 보호할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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