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시장경제에선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아’다. 노키아는 1998년 세계 1위 휴대전화 회사였으나 스마트폰 혁명으로 몰락했다. GDP의 4%를 차지하던 노키아의 추락으로, 핀란드는 수년 전 경제 전체가 출렁이는 위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키아가 망한 덕분에 핀란드 경제는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노키아가 1만5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퇴직‧연구개발 인력들을 중심으로 300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이 탄생했다. 앵그리버드 게임으로 전 세계적인 히트 기업이 된 로비오도 이때 탄생했다. ‘노키아의 죽음’ 덕에 핀란드는 벤처‧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

냉혹하지만, 시장의 논리란 그런 것이다. 시장에서 선택되지 못한 곳이 퇴출당하고, 자연히 인력과 자원이 시장의 선택을 받는 분야와 기업에 이동하며 사회경제적인 성장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시장에서 자연스레 퇴출당해야할 기업이 (모종의 이유로) 꾸역꾸역 살아남아 시장의 파이를 가져가고 있다면? 그럼 그 시장 전체가 죽어버릴 수 있다. 살아남은 모든 곳을 살릴 정도로 시장이 무한히 커지지도 않을 것이고, 성장력 있는 곳에 인력과 자원이 이동하는 자연스러운 흐름도 만들어지지 않아 그 시장이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곳’이 돼버릴 수 있다.

▲ 노키아
▲ 노키아

어디선가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곳’이 된 시장. 바로 언론의 얘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사는 매출의 약 67%를 광고에, 14%를 지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광고시장에서, 광고주들은 신문사에 흘러 들어가는 광고 수입을 ‘고정비용’이라 칭한다. 본디 광고시장은 광고효과가 있으면 광고비를 집행하고, 광고효과가 없으면 광고비를 집행하지 않는 단순한 논리를 따른다. 그 논리를 따르지 않는 비용이 바로 고정비용이다. 펜의 권력을 활용한 협박과 영업에 ‘광고효과’를 묻고 따지지도 않고 지출하는 비용 말이다. 언론사의 영업만 아니면 누구도 읽지 않는 신문지면에 광고를 할 필요도 없으니, 사실상 신문사의 광고시장이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지대수입도 마찬가지다. 자전거와 상품권까지 얹어가며 만들어진 지대수입이 이용자의 정확한 수요를 반영한 값이라 볼 순 없다. 더군다나 신문 구독률은 10년 이상 하락추세다.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시장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언론사가 의존하고 있는 광고시장과 구독 시장 그 어디에도 언론사를 위한 자리는 없다.

시장은 죽은 지 오랜데, 언론사는 늘어만 간다. <2020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신문사업체 수는 4246개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2019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한 번도 줄지 않았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고정비용’에 기생하는 인터넷신문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홈페이지 개설비 15만원에 관리비 5만5000원만 내면 인터넷신문을 차려준다는 대행업체까지 생겼다. 문제는 취재 활동을 하지 않는 이런 언론사와 묶여 고품질 기사를 내놓는 곳까지 도매금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행태가 지속할수록 다 같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 신문. 사진=gettyimagesbank

언론사의 ‘죽음’이 필요하다. 언론사 조직 자체가 불필요하게 크다면 구조조정을 통해 슬림화해야 하고, 또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언론사도 있어야 한다. 그 잘나가는 뉴욕타임스조차 2008년 이후 여섯 번 이상 정리해고를 진행했다. 한때 위대한 ‘고양이 사이트’로 불리며 세계 최대 규모 트래픽을 자랑했던 버즈피드도 망했다. 그렇게 기존 인력이 새로운 인력으로 대체되고, 경쟁력이 없는 곳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인력이 이동하며 그 시장이 ‘살만한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언론계와 함께하는 내 입장에서도 ‘죽어야 한다’는 말은 무척이나 뼈아픈 말이다. 하지만 몸을 깎는 처절한 혁신 없이, 모두가 망하는 길을 택한 언론의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롭긴 매한가지다. 죽어야 사는 역설, 그걸 우리 언론이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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