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세종시 도담동의 한 6차선 도로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도로 중앙에 멈춰선 빨간 대형 버스 아래로 장애인 활동가들이 서너 명 엎드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문구가 보였다. 또 다른 활동가들이 주위를 둘러싸며 경찰과 대치했고, 일대 교통이 잠시 마비됐다.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경적을 울렸다. “위험하게 뭐 하는 거냐. 이러면 누가 좋아하겠냐.” 어떤 시민은 대놓고, “장애인은 콜택시를 타면 되지 않냐”고 고함을 질렀다. 이날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는 날...’ 장애인을 위한 날이면서도,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먼저 해석되는 이 날을, 장애인들은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 부른다. 투쟁의 시작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 연휴 전날, 역귀성 해 아들을 보러 가던 지체 장애 3급 할머니가 오이도역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이 사고를 ‘오이도역 추락 참사’로 부르며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계기로 삼았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목숨을 잃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외침 속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숱하게도 잡혀갔다. 도로를 점거해서, 대중교통 운행을 방해해서.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인 이들은 벌금형을 받으면 몸으로라도 대신 갚겠다며 노역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휠체어 탄 이들을 노역장으로 이동시킬 수단이 없어 또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그런 지난한 싸움 끝에, 올해 수도권 지하철 엘리베이터 보급률은 92%를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억수로 운이 좋아야만 버스를 탈 수 있다. 시내버스의 저상 버스 보급률도 전국 20% 미만으로 처참하지만, 시내버스를 제외한 시외·고속버스, 마을버스 등은 저상 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서비스 장치 등의 열악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20일, 세종시 도로 위에 버스를 세워두고 그 밑으로 스스로 몸을 뉜 이유다. 새로운 요구가 아니었다.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 버스와 리프트가 장착된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오래된 약속을 이제라도 지켜달란 거였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이들의 20년 묵은 투쟁기를 자세히 알게 된 건 유튜브 알고리즘 덕이었다. 4월20일 즈음해서, 알고리즘이 변재원 전국장애인연합회 정책국장의 인터뷰를 추천했다. 스스로를 ‘못된 장애인’이라고 하는 그는, 지금껏 늘 착한 장애인, 다른 사람에게 무해한, 부탁하지 않는 장애인으로 살아왔단다. 그런데 앞으로는 평화로운 거리 위에서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불편한 일들을 해 나가야만 한다고 했다. 못되게 굴지 않으면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서. 

며칠 뒤, 정치권에 때아닌 장애인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다수 언론이 ‘외눈’을 뜬 채 공정하지 못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 이에 ‘외눈’의 사전적 정의까지 등장하며 과연 이 표현이 장애인 비하냐를 두고 SNS상에 뜨거운 설전이 오갔다. 정치권에서 ‘절름발이’, ‘벙어리’ 같은 표현으로 몇 차례 떠들썩했던 적이 있어서 기시감이 들었다. 그 틈에서, 변재원 정책국장이 20년 동안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기록한 기사를 공유하며 남긴 글이 아프게 눈에 띄었다. 

“수많은 이들이 당선되고, 정치인으로서 임기 동안 존경받고, 공약을 잊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장애인들은 20년째 같은 거리에서 거짓말과 투쟁하고 있습니다.” 

‘외눈’이, ‘절름발이’가, 누구 입을 통해 나왔는지, 어떤 의도였는지 이렇게까지 들끓을 일인가. 이렇게 열 띈 설전이 있기 불과 닷새 전, 안 그래도 불편한 몸을 도로 위에 뉜 장애인들이 있었다는 걸 몇 명이나 알까. 이 단어들이 정치권에서 나왔을 때는, 어떤 누구의 정치 인생이 아니라, 그런 단어들 속에 갇혀 인권 밖에 서 있는 자들을 조명하는 논의로 발전해야 한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처럼 살기 위해 예산 얼마가 필요한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이만한 열기로 논의된 적 있나. 

이런 세상인데, 갑자기 천지개벽해서 가만히 있어도 지하철 엘리베이터며, 저상 버스며, 필요한 인프라가 척척 생기는 때가 올까. 그래서 “이제는 착해져도 괜찮아요”라고 변재원 정책국장이 허허 웃을 날이 올 거라 기대해 봐도 될까. 그런 미래가 온다면 좋겠지만, 대신 나는 못된 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불편할 때마다 소리 내고,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한 더 못되게 굴어서, 이들 논의가 우리 사회 중심으로 설 수 있기를 응원한다. “더 못되게 구셔도 좋습니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이선영 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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