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원 두 명이 의원직을 상실하고, 한 기자가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 언론사가 선거 기간 중 여러 후보자의 배너 광고를 집행했는데 이 가운데 두 후보자에게는 다른 후보자들보다 높은 금액의 금품을 받았고 우호적으로 해석되는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2018년 6월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조미향 구로구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종여 구로구 의원(국민의힘)은 지난 26일 대법원에서 200만원 벌금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들이 의원직을 상실한 이유는 ‘인터넷 언론사에 55만원을 주고 홍보성 기사를 내서’였다. 돈을 받고 기사를 써준 인터넷 언론사 A씨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구로구의회 홈페이지.
▲구로구의회 홈페이지.

28일 구로구의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두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 맞다”고 했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형 또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다.

징역형을 받은 A씨는 T언론사 발행인이자 편집인이다. 그는 취재나 기사 쓰기 등 기자 직무도 겸하고 있다. 세 사람은 모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당한 계약으로 받은 금품…의원들 실무진 잘못”

언론사 발행인인 A씨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매우 억울하다”며 자신은 홍보성 기사를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는 조미향 의원에게 홍보 동영상 제작 계약에 따라 50만원(수수료 5만원)을 받았고 박종여 의원과도 선거 기간 배너 광고 계약을 맺고 50만원(수수료 5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선거와 관련한 보도를 해서 금품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홍보 동영상 제작과 배너 광고를 해주고 받은 돈이다. 모두 계약으로 실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의원들이 선거 비용을 보전받는 과정에서 실무진들이 동영상과 배너를 제출한 것이 아니라 관련 기사를 검색해 기사를 제출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자신은 정당한 계약으로 동영상 제작·배너 광고 비용을 받았지만 의원들 쪽 실무진이 선관위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는 것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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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여 전 구의원도 A씨 주장이 맞다고 했다. 박 의원은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실무진들 실수가 맞다. 저 역시 억울하지만 실무진이 고의로 한 것은 아니다”라며 “실무진이 선관위에 선거 보전을 위한 비용 신고를 할 때 실제 계약했던 배너를 내려고 했지만 선거 이후 배너 광고가 내려가 기사를 검색해서 첨부했다. 이후 다시 배너를 제출했는데 선관위에서 비용을 보전해줬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만약 실무상 문제가 있었다면 선관위에서 비용을 보전해주기 전에 지적할 줄 알았다”며 “대법원에서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재판이 진행되는 3년 동안 억울했다”고 말했다.

“억울한 판결…선관위에 사전 문의했는데 지적 안해, 직무유기”

조미향 의원은 ‘선관위에도 잘못이 있다’는 입장은 박 의원과 같았지만, 기사를 작성한 A씨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했다. 

조 의원은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굉장히 억울한 판결”이라며 “A씨가 처음 나에게 접근할 때 ‘고향 후배’라고 하면서 접근했고 기자인 줄 몰랐다. 이후 SNS 홍보물을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고향 후배가 홍보를 도와준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해당 홍보물이 기사 형식인지도 몰랐고 홍보물인 줄 알았다. 누가 50만원 때문에 의원직을 잃고 싶겠느냐”라며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망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선관위에 해당 홍보물을 보내고 미리 사전 점검을 부탁했는데 선거법에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며 “선관위 직원은 선거법 위반을 단속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예방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선거법에 문제가 있는지 문의했는데 지적이 없어서 제출했고 이런 판결이 나왔다. 선관위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A씨는 “이번 선거법 사건의 촉발은 두의원이 선거비 보전을 받으려고 계약에 따른 ‘증빙’이 아닌 ‘기사’를 잘못 제출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박종여 의원은 이를 인정했지만 조미향 의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의원에게 고향 후배라고 접근한 적도 없고 구로구의원 합동유세 취재를 갔다가 만난 것뿐이고 동영상을 두고 정당한 계약을 했을 뿐”이라며 “조 의원을 위증 및 사기 혐의로 형사 및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보물·배너 광고 직전에 쓴 기사를 선거 관련 ‘보도’로 판단한 법원 

1심부터 대법원까지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돼 왔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가 2019년 6월 선고한 1심 판결문을 보면, 공직선거법 제97조 제2항은 “후보자 등은 선거에 관한 보도·논평이나 대담·토론과 관련해 당해 방송·신문·통신·잡지 기타 간행물을 경영·관리하거나 편집·취재·집필·보도하는 자 또는 그 보조자에게 금품·향응 기타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의사의 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와 관련 재판부는 “선거에 관한 보도와 어떠한 형태로든 관련성만 가지고 있으면, 그 보도가 반드시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조 의원 주장(기사가 아니라 홍보물로 인식)에 대해 재판부는 “A씨가 보낸 링크가 기사라는 것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로부터 링크를 전송받은 다음 (조 의원이) ‘기사 제목을 그냥 깔끔하게 ‘나의 든든한 빽은 주민이다’ 같은 식이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보냈고 이후 A씨가 ‘기사에 넣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실제 T 언론사에 ‘조미향’을 검색하면 “조미향 구로구 의원 후보 ‘나의 든든한 빽은 주민이다’”(2018년 6월11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재판부는 조 의원이 지급한 55만원이 이런 기사와 무관할 수 없다고 봤다. 

▲T 언론사에 남아있는 조미향 구의원과 관련된 기사.
▲T 언론사에 남아있는 조미향 구의원과 관련된 기사.

박종여 의원 건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배너광고 계약을 체결하고 위 계약에 따라 대금을 받은 것은 2018년 6월5일자 및 6월7일자 기사를 작성하게 된 주요한 동기”라고 판단했다. 다만 현재 T언론사에 박종여 의원 관련 기사는 검색되지 않는다. 

재판부는 A씨가 “조미향 의원, 박종여 의원을 포함해 총 26명의 후보자와 배너 광고 등 계약을 체결했고 그중 24명의 후보자에 관한 기획 기사를 작성했다. 일부는 두 의원의 경우처럼 수 건의 기사를 작성하기도 했으므로 다른 후보자들과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다른 후보자들로부터는 배너광고계약 대금으로 22만원 혹은 33만원을 받은 반면, 두 의원으로부터는 55만원이라는 다소 많은 돈을 받았고 다른 후보자들에 관한 기사와는 달리 두 의원에 관한 기사는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짧은 기간 동안 연속적으로 게시된 점을 고려하면, 받은 돈과 기사들이 관련돼 있지 않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언론매체 전파력과 신뢰성에 비춰볼 때 이들 죄질이 가볍지 않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하려는 공직선거법 입법 취지를 훼손했다고 봐 의원들에게 벌금 200만원을, A씨에게는 징역6개월(집행유예)을 선고했다. 

다만 금품 액수가 그리 크지 않고, A씨가 허위 사실을 기사화하거나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점을 참작했다. 

[기사 수정 : 5월 3일 10시 50분 A씨 반론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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