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는 반동성애 단체·인사를 ‘가짜뉴스 유통 채널’이라고 지칭한 언론 보도는 법적 문제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민사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발단은 2018년 한겨레의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연속 보도다. 한겨레는 에스더기도운동을 중심으로 한 반동성애 단체와 인사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유포자들을 ‘가짜뉴스 전파자’ ‘가짜뉴스 생산 유통세력’이라고 지칭했다. 뉴스앤조이는 한겨레 기사를 인용하며 반동성애 단체와 인사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후속 보도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짜 뉴스 유포지’, ‘가짜 뉴스 유통 채널’이라는 표현을 썼다. 

기사에 지목된 단체와 인사들은 2019년 한겨레, 뉴스앤조이 등 언론에 법적 대응을 시작했고 지난 23일 2심 결과가 나왔다.

가장 눈여겨 봐야 할 판결은 기독교 단체인 GMW연합이 뉴스앤조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등 청구 소송 2심(서울고법 민사13부, 재판장 강민구)이다. GMW연합은 뉴스앤조이 보도로 명예가 중대하게 침해됐다며 뉴스앤조이와 기자를 상대로 위자료 지급과 기사 속 해당 문구 삭제를 청구한 바 있다. 

▲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 사진=미디어오늘

재판의 쟁점은 ‘가짜뉴스 유포지’ 등 표현이 법적 문제가 있는가였다  2심 재판부는 “감시·비판·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볼 수 없다”며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반동성애 진영측 표현의) 전파 범위나 영향력에 비춰보면 ‘가짜뉴스 유통채널·유포지’로 표현한 것은 대중들이 허위정보가 포함돼 있을 수 있는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일방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사회 구성원 사이에 해당 정보의 진위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건전한 토론을 활성화시켜 이에 기초한 다양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반면 지난해 뉴스앤조이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 재판장 김병철)는 상반된 판결을 통해 뉴스앤조이에 해당 대목을 삭제하고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미디어로서의 신뢰를 저하시킬 의도가 담긴 공격적 표현”으로 규정하며 반동성애 단체의 손을 들었다. 1심 재판부는 ‘가짜뉴스 유통채널·유포지’ 등 표현에 대해 “‘사회의 올바른 여론 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바가 없고, 원고를 허위사실 유포자로 낙인찍어 여론형성 내지 공개 토론의 장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공격적 표현’이라고 본 반면 2심 재판부는 ‘허위정보가 포함돼 있을 수 있는 내용에 대해 다양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표현이라고 본 것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앞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 기고글을 통해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민정 교수는 원고측의 혐오표현이 인권을 침해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된 점을 지적한 뒤 “가짜뉴스 유포자·채널이라는 표현 자체만을 별개의 판단 대상으로 놓고 해당 표현을 불법표현이라 판시한 뉴스앤조이 판결은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판결이라 사료된다” “혐오 표현에 대한 대항 표현을 봉쇄하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강도현 뉴스앤조이 대표는 2심 판결에 대해 “사안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관점이 달랐던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며 “2심 판결이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잘 고려해 내준 것 같다”고 밝혔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은 26일 논평을 통해 “성소수자나 차별금지법 관련 계속해서 왜곡되고 허위의 정보를 퍼뜨리는 것을 지적한 것이 감시·비판·견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라 본 것”이라며 “1심 판결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혐오에 기반한 가짜뉴스의 해악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13부는 23일 한겨레가 ‘가짜뉴스 전파자’ ‘가짜뉴스 생산 유통세력’ 등 표현을 쓴 데 대해 반동성애 단체측 인사들이 제기한 소송 4건의 2심 판결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겨레 보도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있는 쟁점에 관한 건전한 여론 형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공공의 이해에 관한 내용으로 한다”며 “원고의 강연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일반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사회 구성원 사이에 해당 정보의 진위에 관한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건전한 토론을 활성화시켜 이에 기초한 다양한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판결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기획 기사 중 '개신교 가짜뉴스 3단 연결망' 분석 그래픽
▲ 한겨레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기획 기사 중 '개신교 가짜뉴스 3단 연결망' 분석 그래픽

앞서 한겨레 재판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처음으로 ‘가짜뉴스’의 개념을 규정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겨레 소송 1심 재판부는 “핵심적인 요소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 즉 정보에 포함된 사실이 실재하는가’ 그리고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어떠한 의도가 있는가’이다”라며 “유튜브 동영상에서 원고가 허위조작 정보를 전달하고 있고 같은 취지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올라오며 허위조작 정보가 전파되는 것을 두고, ‘원고가 가짜뉴스를 전파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주요 내용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들은 보도의 취지와 정당성,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면서도 ‘가짜뉴스 유통채널’ 등 표현이 ‘수사적인 과장’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언급했다. 이는 언론이 앞으로 관련 사안을 다룰 때 법적 정당성과 별개로 최선의 표현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뉴스앤조이는 지난해 GMW연합 소송 외의 4건에 대해선 해당 표현을 삭제하는 조정 합의를 한 바 있다. 법적 쟁점은 같기에 뉴스앤조이 최종 판결에도 정당성을 인정 받으면 기존에 조정 합의한 기사에 다시 해당 표현을 쓰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강도현 뉴스앤조이 대표는 “가짜뉴스라는 표현 자체를 언론이 사용하는 게 옳은지,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내부적으로 토론하고 있다”며 “언어 사용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고 했다.

한겨레의 연속 보도가 이뤄진 시점인 2018년 11월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 진민정 위원(저널리즘학연구소 이사)은 “가짜뉴스 자체보다 가짜뉴스 담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한다”며 “정치적 수사로 이용되는 가짜뉴스 개념을 언론이 그대로 사용하면 내 의견과 다른 모든 정보에 가짜뉴스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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