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5일은 어린이날이다. 365일 중 364일이 어른들의 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채 있다.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라는 배제당한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어린이를 정중하게 대하려는 어른 4명을 만났다. 김소영 작가, 김영하 작가의 추천으로 더욱 주목받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썼다.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미디어교육학 박사), 어린이와 미디어의 접점을 풍성하게 할 연구자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매달 경향신문에 어린이를 주제로 글을 쓴다.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 학교 현장에 있는 미디어리터러시 전문가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6일, 이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 편집자주

대담 2부에서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김지은)는 문해력을 ‘타인의 마음으로 팩트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어휘력을 늘리고 기술적으로 글을 잘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글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화려한 언변으로 타인을 공격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는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 팩트체크가 강조되는 현실에 대해 대화를 이어갔다.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김아미) : 팩트체크 교육이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온 건 가짜뉴스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면서 연결됐지만 사실 팩트체크 교육은 저널리즘의 일부다. 기자들이 갖춰야 할 능력이지 정보소비자가 갖춰야 할 기본 능력이 아니다. 팩트체크라는 전문적인 과정을 체험해보는 것은 좋지만 그게 리터러시 교육이라는 식은 아니다. 뉴스라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관점이고 현실을 재현한 해석일 수 있다는 것이 리터러시 교육이다. 미디어리터러시의 부분일 순 있다. 팩트가 가지는 언어의 힘이 있다. ‘이거 팩트니까 다들 조용히 해, 이거 팩트체크한 기사야’ 이런 분위기가 생기며 다양한 이야기를 막아버리는 도구로 쓰이지 않나 하는 우려도 있다. 

▲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김아미 시청자미디어재단 정책연구팀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박유신 석관초 교사(박유신) : 기술적으로 체크하는 것이 미디어리터러시의 지분을 많이 가진 것처럼 됐고 비중이 커지는 분위기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본질을 희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지은 : 팩트체크는 전문영역이다. 우리가 모든 정보의 접근권이 없고, 접근권을 가진 전문가가 언론인이다. 모두가 팩트를 체크하겠다고 나선 건 체크된 정보에 대한 불신이 강해서 아닌가.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나 지성적 과정을 신뢰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관련 있다. 다 믿을 수 없으니까 내가 본 것만 믿겠다는 거다. 현장에 간 사람이 최고다. 누가 얼마나 정확하게 봤는지, 이런 사회분위기에 어린이·청소년들은 영향을 받고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분위기가 첫 경험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팩트체크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자란다. ‘팩트체크를 하면 나의 제한된 발언권도 동등하게 취급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사실에 매달리는 경향이 어린이들의 미디어 소비과정, 댓글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김소영 작가(김소영) : 반지성주의다. 

김지은 : 반지성주의를 가르친 거다. 팩트체크에 몰두하면서. 

김아미 : ‘팩트체크의 역설’이다. 팩트체크를 강조하다보니 언론 등 사회기관에 대한 공적 신뢰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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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문법은 어린이들과 멀어져있다. 언론이 어린이를 독자로 인식하고, 어린이를 공동체의 발언자로 존중하려면 이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들어봤다.

▲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인 김소영 작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인 김소영 작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김소영 : 상상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한겨레 ESC면이 여러면 있는데 한면 정도는 어린이를 위한 기사로 내준다든지, 경향신문 토요판에 한면 정도는 고정적으로 예전 어린이신문 보듯이 구성하면 어떨까. 온라인상에서도 그 뉴스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건 어린이도 볼 수 있고, 신문을 구독하는 혹은 그 신문을 신뢰하는 어른들이 보기에도 ‘요즘 어린이들이 이런 걸 보고 어린이들의 언어가 이렇구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된다. 

김소영 작가는 저서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어린이날 하루는 모든 TV 채널에서 하루 종일 어린이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 좋겠다”며 “만화영화만 내보내라는 게 아니라 기존 프로그램도 어린이 시청자를 고려해 그날 방송분을 만들면 된다”(243쪽)고 제안했다. 신문지면이란 공적 영역에 어린이의 몫을 주자는 제안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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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미디어경청' 홈페이지
▲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미디어경청' 홈페이지

 

박유신 : 경기도교육청에서 하는 ‘미디어경청’이 좋았다. 다양한 형식의 뉴스라든가 학생들이 지원받아서 뉴스를 만들고 공유했다. 그런 모델은 있는데 ‘미디어경청’이란 플랫폼이 아니라 더 많은 학생이 보는 곳이면 좋겠다. 

김아미 : 미디어경청은 응모해서 기자가 되면 글을 보내고 교열 정도 감수하고 올리는데 주제도 다채롭고 표현방식도 다양해 어린이들이 뭘 생각하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다.

김지은 : 수신자 측면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정책공약 설명집을 내는 후보들의 사례가 있다. 어린이들에게 투표권이 아직 없어도 배부되는 거다. 사회적으로 조금 무겁거나 선정적인 뉴스에 어린이들 눈을 가릴 게 아니라 그런 뉴스를 리라이팅(재작성)하는 부서가 있으면 좋겠다. 리라이팅을 시도하다보면 접근권이 넓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박유신 :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문제다. 지면을 할애한다고 하더라도 성인들 감수성이 오염돼있다. 어린이들과 볼 수 있는 걸 관심 가지며 넷플릭스 키즈를 보고 있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보자마자 1분도 안 돼서 이거 이상한데 싶어 어디서 만든 건가 봤더니 한국 거였다. 시작하자마자 외모 얘기를 하더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돼 있다. 정말 어린이들을 위한 미디어환경을 만들 생각이 있으면 어른들부터 스스로 깨끗하게 빨아서 널고, 스스로 재교육받자. 해외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콘텐츠를 만드는지 봐야 한다. 넷플릭스 키즈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내용이 재밌고, 인종·성·장애 (차별여부나 구성비율) 등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고려했다. 시민사회가 옳다고 가리키는 지점에 어긋나지 않는다. 한국 일부 제작자들이 그런 가치기준을 어기면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재미일 뿐이고 아이들은 그런 거 상관없이 재밌어한다. 그런 기준이 없다면 영원히 유해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미디어라는 숲을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어른 하나하나가 숲에 있는 나무들이다. 나무가 시들어 있다. 

김지은 : 우리는 이미 많이 오염됐더라도 정제된 환경에서 키우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고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들이니까 쉽게 얘기하고 애들은 아직 자세히 모른다며 (어른들이 스스로) 발산하지 못한 욕망도 (어린이에게) 투사도 하며 쉽게 보는 건 아닌가. 어린이 문화 자체를 우습게 생각하는 아닌가. 언론에서도 그럴지 모른다. 어린이지면이 있다면 유능한 기자가 가는 게 아니라 ‘어린이 지면에 가서 쉬다 오세요’ 이러면 지면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박유신 : 헤이지니·박나래 사건에서 보면 박나래가 성희롱을 했다고 하는데 난 헤이지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헤이지니는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인데 왜 성인콘텐츠에 출연했냐. 미디어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인이다. 어린이들은 헤이지니 알고리즘을 따라 그 콘텐츠에 들어간다. 

최근 웹예능 ‘헤이나래’에서 19금 개그로 유명한 박나래씨와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 헤이지니가 함께 출연했는데 박씨가 인형을 가지고 성희롱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씨에 대한 비판을 넘어 경찰 수사까지 거론되고 있다. 

박유신 : 어른들이 어린이 문화를 훔쳐다 자기들 놀이터로 삼고 있다. 그게 문제의 본질이다. 박나래에 대해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헤이지니라는 어린이 유튜버를 성인콘텐츠에 심어놓고 어른들이 즐기고 어린이들도 보면서 조회수를 올려주는 게 문제다. (김지은 : 조회수를 올려주는 것도 노동이다.) 성인들은 어린이 것을 뺏어가면 안 된다. 한 예로 어린이라는 용어를 전유해 ‘~린이’

김지은 : 부동산 투자 처음하면 ‘부린이’. 이걸 귀엽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더라. 악의로 썼다는 게 아니라 왜 어린이다움이라는 요소를 성인이 자기를 표현하는데 가져가느냐다. 성인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언어가 있는데 귀여움까지 가져가는가. 문화적 권력욕이다. 어린이날도 가져가고 싶어할 거 같다. 364일이 어른의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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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 어린이관을 재정비해야 한다. 소수자 시각과도 연결된다. 어린이를 어떻게 미디어에서 보여주는가는 단지 현재 어린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노키즈존’이 ‘그냥 그런데도 있다’ 정도로 허용되기 시작하면 다음엔 뭐가 올지 모른다. 누군가를 배제하기 시작하면 장애인이 배제될 수도 있고 외국인, 노인도 배제될 수 있다. 어린이문제가 그런 문제를 막는 최전선이 될 수도 있다. 

김아미 : BBC 영리포터 관련 자료를 보면 보도윤리가 상당히 치밀하다. 어린이들이 뉴스를 만들면 저널리스트들이 도와주는데, 어린이와 취재할 때는 뭘 지킬 것이며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약속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장을 만들 때 공이 많이 들어간다. 공을 들이고 나면 그 자체가 사회 소수자·약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비단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나이들면 노인이 된다.

김지은 : 가장 큰 수혜자는 어른이다. 윤가은 감독의 촬영수칙은 미디어현장에서 어린이와 협업하는 어른의 자세를 보여준다. 한번 만들면 어린이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 ‘저 영화는 어린이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데 만들 때 잘 지켰을까’를 생각할 수 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영화를 그려 주목을 받는 윤가은 감독은 제작진과 촬영수칙을 공유한다. 지난 2019년 영화 ‘우리집’ 시사회에서 공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 배우를 프로 배우로 존중하기, 촬영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배려하기, 어린이 배우 앞에서 욕하지 않고 말과 행동에 모범 보이기, 외모가 아닌 행동에 대해 칭찬하기, 머리 정리 등 신체 접촉을 할 때 미리 알리기, 정해진 시간 내에 촬영 마치기, 건강 문제를 인지하면 보호자 등과 공유하기, 어떤 경우에도 혼자 두지 않기 등이다. 

▲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 모임공간에서 어린이와 미디어를 주제로 미디어오늘이 진행하는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박유신 : 다들 어린이를 통해 어떻게 돈을 벌까에 관심을 두고 있다. 어린이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 산업혁명시대 아이들이 노동하며 희생당했듯 아동노동은 원래 금지돼있던 게 아니라 사회가 보호하려고 금지시켰다. UN디지털권리협약은 디지털환경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공표한 거다. 최근 어린이 책을 고르러 대형서점에 갔는데 충격적인 광경을 봤다. 유튜브 중에 어린이들이 안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콘텐츠, 욕을 많이 하고 수준이 떨어지지만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영상인데 출판사가 그 판권을 사서 책으로 냈다. 유튜버가 출판사와 연결해 책이라는 문자미디어의 힘을 얻게 됐다. 

김소영 : 공식화하는 거다. 

박유신 : 미디어 자체는 교육적이거나 비교육적이지 않다. 비교육적인 유튜브를 어린이를 위한 좋은 미디어처럼 변장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대형서점에 큰 부스로 들어갔다. 더 좋은 아동문학이 있는 걸 알겠지만 장사가 되는 걸 아는 거다. 단지 어린이를 공장에 보내지 않았다는 것으로 만족할 게 아니다. 요즘 클릭으로 이윤을 얻는데 어린이에게 클릭을 유도를 하지 않나. 근본적으로 디지털에서 경제적 행위가 무엇인가 성찰할 때다. 상업적 문화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못보게 하는 건 제한적인 조치다. 어린이를 돈벌이로 보지 말고, 어린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비용을 투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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