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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특집] ④ 쉽게 쓰는 것,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어린이날 특집] ④ 쉽게 쓰는 것,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인터뷰]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잘못된 방식의 정보 주고 ‘이해 못 한다’ 질타하면 안돼”

세상이 나만 알아보기 어려운 말로 가득하면 위축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군가 ‘너는 이런 건 이해 못 할 거야’라며 골라낸 이야기만 전해준다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을까. 장애가 없는 성인, 그중에서도 복잡한 글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맞춰진 사회에서 발달장애인, 어린이들이 종종 겪는 문제다.

“시각장애인에게 활자(종이 등에 찍어낸 글자) 책을 주고 왜 못 읽냐고 하지 않잖아요. 청각장애인에게 왜 말 못 하냐 하지 않고 수어나 글자로 소통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요. 발달장애인도 원래 글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방식의) 정보를 줬던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의 말이다. 2017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까지 소통의 어려움이 없는 삶”을 목표로 어려운 정보를 ‘쉽게’ 만들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사업으로 출발했지만 학습장애 어린이, 외국인, 어르신, 나아가 모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쉬운 정보’를 추구한다.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백정연 '소소한소통' 대표

백 대표에게 ‘쉬운 정보’가 뭔지 묻자 “읽었을 때 이해하기 쉬운 정보”라는 다소 뻔한 답이 돌아왔다. “내용도 형식도 쉬워야 합니다. 어휘, 문법·구조가 쉽고, 문장 길이가 너무 길지 않아야 하고요. 추상적 상징이 가득하지 않은 직관적인 이미지들이 필요합니다. 서체도 중요해요. ‘고딕체’ 가독성이 가장 좋고, 교과서나 공공기관 자료에서 자주 보는 ‘명조체’도 적절합니다. 폰트, 줄 길이, 행간, 제본 두께도 전부 영향을 미치죠.”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표현하기 어렵다. 성인이 비장애 어린이·청소년보다 정보 습득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심사나 선호하는 문화는 또래집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가 알아야 할, 성인이 알아야 할 문화와 용어가 달라요. 지원을 받으면 일상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분들에겐 나이대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죠.”

학습장애를 겪는 어린이들에게도 쉬운 정보는 중요하다. 특수교육 대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학습장애를 겪는 어린이들이 있다. 백 대표는 어린이들 수준에 맞는 개별 교육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콘텐츠가 다 쉬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읽기가 어렵거나, 쓰기가 어렵거나, 말하기가 어렵거나, 다 다르거든요. 학년 수준에서 제공되는 내용을 따라가기 위한 ‘선행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쉬운 표현의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주체가 필요한 정보를 적절한 수준으로 제공받을 권리는 쉽게 외면돼왔다. 구성원들 사이 소통의 장벽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집단에서는 배제되고 소외되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정보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모두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접하는 경험이 필요한 이유다.

▲'2021 쉬운말 공모전'에 참여한 어린이들 의견. 공모전은 김제시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김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전라북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 전라북도보조기기센터 등이 공동주관했다.
▲'2021 쉬운말 공모전'에 참여한 어린이들 의견. 공모전은 김제시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김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전라북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 전라북도보조기기센터 등이 공동주관했다.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조차 어린이들에겐 어려운 말투성이다. “저는 ‘행정실’이 어려워요. 1학년이나 글씨나 말을 배워가는 친구나 동생들이 어려울 거기 때문이에요. ‘선생님들이 일하는 곳’으로 바꿔 쓰고 싶어요” “‘보건실’이 어려워요. 1학년 때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보건실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치료실’로 바꿔 쓰고 싶어요” 올해 장애인의날을 앞두고 김제시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전라북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이 주관한 ‘쉬운말 공모전’에 제출된 비장애인 어린이들의 생각이다.

“‘가로등’이 ‘가로로 누워 있는 등’이라고 생각한 어린이도 있었어요. ‘교무실’, ‘행정실’도 아이들에겐 어려운 표현이었고요. 학교 안에 있는 ‘사인물’(안내·표지판 등)부터 어린이 눈높이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 어떤 정보가 쉬워져야 하는지 묻는다면, 일상에서 접하는 상품과 서비스도 바뀌어야 하죠. 은행 가고, 쇼핑하고, 약품 정보를 보는 모든 것들이 정보니까요.”

정보격차를 줄이는 건 단지 ‘앎’의 차이를 좁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백 대표는 “삶의 주체성,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보고도 몰라서 누군가에게 계속 물어보는 것과, 어느 정도 이해한 상황에서 혼자 결정하는 건 다른 차원이예요. 정보가 많아지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경험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면에서 정보격차는 경험의 제한으로 이어지고, 경험해보지 않은 건 계속 어렵게 여겨질 수밖에 없죠.”

▲백정연 대표가 최근 발간된 '쉬운 표현, 만드는 건 왜 안 쉽죠?' 일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백정연 대표가 '쉬운 표현, 만드는 건 왜 안 쉽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간접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할 언론도 어려운 표현을 남발한다. “제목에 한자어가 들어간 경우가 많고 주어가 빠지기도 하잖아요. 기사 내용 자체도 어려운 표현이 많고요.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습니다. 어려운 표현을 다 바꾸지는 말아야 한다고 봐요.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무리하게 바꾸지 않고, 그 뜻을 쉽게 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글이 길면 안 될 거 같아요.”

지난달 소소한소통이 펴낸 쉬운정보 안내서 “쉬운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에도 언론 등이 정보를 전달할 때 참고할 사안들이 정리돼있다. 읽는 대상을 먼저 고려하고, 적확성보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쉬운 단어를 쓰고, 신조어 등은 사용하되 설명을 반드시 붙여줄 것. 문장을 바로 앞처럼 ‘~것’으로 끝내면 이해하기 불편할 수 있다는 조언도 있다. 

“가이드북에 지난 4년을 갈아 넣었어요. 제목처럼 쉬운 정보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한편으론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맞나 고민도 되는데, 올해 영국·뉴질랜드에서 이런 일을 오래 한 비영리단체들과 접촉하고 있어요. 먼저 쌓은 경험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는데, 이 일이 성사되면 우리나라에서 저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과 잘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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