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다 같은 어린이지만, 똑같은 어린이로 대접받지 못한다. 장애어린이는 스스로 장애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사회에 한발씩 디뎌가며 배워간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그게 차별의 이유라는 것도 알아간다. 사회의 첫발인 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정체를 몰랐던 어린이가 장애와 벽을 배우는 곳이다. 의학적으로 장애의 유형이 다양해 특정 장애인 혹은 장애계의 특정 인사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걸 전제한다. 중요한 건 ‘어린이’와 ‘장애’라는 이중의 소수자로서 이들은 사회에서 배제돼있다. -편집자주

“나는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장애를 갖지 않은 어린이들과 지금보다 더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자주 만나서 놀아야 하는데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은 말이 잘 안 통하니까, 휠체어를 타고 학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없으니까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없대. 같이 놀 기회가 없고 쉽게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내가 쓴 동화를 읽으면서라도 장애어린이들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러다가 진짜로 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조금 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어.” 

공진하 특수교사가 2004년 그의 첫 동화책 ‘왔다갔다 우산아저씨’에 쓴 글이다. 

장애어린이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고 싶지만 코로나 등으로 직접 취재가 어려운 가운데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7일 공진하 특수교사를 만났다. 그는 국내에선 성공한 특수학교로 불리는 한국우진학교에서 일하고 있고, 동화작가다. 우진학교는 지체장애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흔히 중도·중복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소개된다. 지체장애와 다른 장애를 함께 가진 학생들이 다닌다는 뜻이다. 

공 교사는 인터뷰에서 “1990년대 중반 당시 동화 속 어린이들은 장애가 없고, 가끔 장애가 있으면 헬렌켈러처럼 장애를 다 훌륭하게(?) 극복한 어린이만 나와 읽어주기 불편했다”며 “우리 애들(장애어린이)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무도 안 쓰면 나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동화를 쓰게 된 이유를 말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공 교사와 어린이 그리고 장애어린이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공 교사와 일문일답이다. 

-코로나가 1년하고도 몇 달이 지났다. 우진학교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난해에는 원격수업도 했다. 많이 힘들었다. 올해는 전면등교를 하지만 코로나가 무서우니 여전히 오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감염위험 때문에 출석인정결석 제도가 있다. 좋은 상급학교에 가는 친구들이야 ‘결석은 절대 안돼’ 하겠지만 우리학교 같은 경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 공진하 한국우진학교 교사가 지난달 27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공진하 한국우진학교 교사가 지난달 27일 서울 당산동 미디어오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그럼 올해는 온라인수업은 따로 하지 않나?
“그렇다. 학습꾸러미라고 해서 집에서 하면 좋을 것들을 챙겨서 보낸다. ‘1주일간 이런 공부했다’고 담임선생님이 간단하게 남기면 가정학습을 하는데, 많이 아쉽다.”

-전원 등교는 학교가 자체적으로 결정하나?
“교육부에서 지침이 왔다. 일단 가능한 이유는 특수학교는 한 반에 5~6명이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지 않으니 가능하다. 특수학교는 혼란이 올해 줄어든 반면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은 특수교사 업무가 늘었다. 예전에는 일반학급에서도 공부를 하고 특수학급에서도 공부를 해 왔다갔다했는데, (일반학생이 온라인수업을 하더라도) 특수학급 학생은 매일 오니까 힘들 거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한 반에 5~6명이 넘나?
“원래 특수교사 1명당 학생수 4명이 기준이다. 그런데 4명의 학년이 달라서 문제다. 4명이 넘는 학교도 많은걸로 안다. 학년이 다 다르니 각각 시간표를 짜야 한다. 예전에는 일반학급 갔다가 특수학급에서는 국어·수학만 공부하는 식이었는데 통합교육과정이 사라진 셈이라 혼란스러워한다고 하더라.”

-특수학교의 경우는 전원이 등교해 지난해에 비하면 좀 나아졌겠다.
“장애어린이만의 문제를 넘어서 사실 일반학교도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어떻게 온라인 수업을 잘할까를 고민하는데 그 이전에 일단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 한반에 10~15명이면 통합교육, 차별과 편견없는 학교 등을 함께 노력할 수 있다. 학생이 많아져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코로나로 어린이들의 ‘놀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일단 친구들 못 만나는 게 제일 크다. 어린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서관, 박물관도 자주 못 간다. 보호자가 노력해서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우진학교도 마찬가지겠다. 
“현장학습을 못가고 있다. 특별실도 이용을 못해 두 반이 협력 수업하는 것도 못한다. 교실에서 우리반 어린이들하고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느라 다 떨어져서 불편하게 수업한다. 밥먹는 연습도 중요한 교육과정 중 하나인데 (코로나라) 밥먹을 때 같이 있기 위험하지 않나. 이런 배움이 없어지고 교육과정만 열심히 따라가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때가 많다.”

▲ 한국우진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
▲ 한국우진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

 

-코로나 상황에서 특수학교는 일반학교의 특수학급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래서 전학문의가 많아졌다. 난 특수학교에만 오래 있었기 때문에 특수학급에 대한 기대가 많다. 남들은 특수학교를 보낼 때 아주 전문적으로 잘해줄 거라 기대를 하지만 막상 우리들은 ‘나 그렇게 전문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을 한다. 국어를 27년 가르친 것과 좀 다른 문제 같다. 똑같은 아이들을 27년 가르치는 게 아니라서 학생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부터 다 달라지니까 우리끼린 ‘해마다 초보교사 같다’는 얘길 한다.”

-학부모들이 문의를 많이 한다는 건가?
“그렇다. 문의 계기로 코로나 얘기를 많이 했다. 그전에는 아이가 학교만 다녀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원격수업을 하는 걸 부모가 옆에서 지켜보니 ‘정말 우리 아이는 교실에서 수업은 못 따라가고 앉아만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처음 쓴 동화 ‘왔다갔다 우산아저씨’의 한 단편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를 보면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학부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특수교사로서 선생님의 고민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장애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갖춰지면 편안할 거라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러면 졸업 후에 어떡할 건지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 (장애)학생 만을 위한 곳에서 편안하게 사는 게 행복한 것인가. 그런데 특수학교에 오게 된 이유는 특수학급이 일반학생들과 통합을 위해 만든 학급인데 그 기능을 잘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설과 사람에 많이 투자해 학생 수를 줄여 (장애-비장애) 통합을 어떻게 할지 지원하는데 물리적으로만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거기서 (장애)학생들이 섬처럼 느낀다. 올해 입학한 학생 중에 내가 보기엔 ‘왜 우리학교 왔을까’ 싶은 학생도 있다. 조심스럽게 여쭤봤더니 (일반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걸 봤다’고 하더라. 그러면 특수학교에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특수학교는 딱 맞춰서 가르쳐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난해 원격수업하면서 ‘선생님 수업이 재미없어요. 애가 안 봐요. 선생님이 인사하면 그때만 아는 척하고 바로 고개 돌리고 가요.’ 그러더라. 뭐 우리도 학부모들한테 바로 얘기는 안 하지만 속으로는 ‘사실 원래 공부시간에도 그래요. 안 봐요. 제가 인사할 때만 아는 척하고 딴짓해요’라고 하죠. 어린이들이 앉아있는 거 옆에 친구에게 관심 가지는 것 등도 배우는 건데 원격수업에서는 그게 없으니 ‘우리 애는 교육과정을 못 따라가. 그래서 공부 못하는 아이로 취급당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학습 말고도 가르쳐주는 게 많다. 성취도 평가처럼 등급을 매길 수 없어 그런가 싶다.”

-섬이란 표현이 선생님 예전 글에도 자주 나온다. 언제 많이 느끼나?
“섬이라는 표현은 류승연 작가라고 발달장애인 어린이의 어머니인 분이 썼는데 인상 깊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를 위한 치료, 아이를 위한 병원, 특수학교 이런 고민만 계속하고 일상이 무너진다. 나도 한편으로는 그걸 학부모에게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다른 생활이 있다. 동화작가들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데 그게 아니면 이 세계에 갇혀 교류가 없게 된다. 첫 직장이 경기도 시설에 있는 학교였다. 광주 읍내에서 버스타고 20분 논길을 가야 있는 학교였는데 시설이니까 어린이들은 등학교가 없다. 등하교는 2층 생활관에서 1층에 있는 교실로 오는 게 전부였다. 난 출퇴근을 하지만 가끔 남아서 할 일을 하다가 옥상에서 별을 보면 갇힌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도 섬 같았던 것 같다.
“그래서 2000년에 기를 쓰고 서울로 갈 거라고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다녔다. ‘나도 지하철타고 출퇴근하고 신도림역에서 갈아타고 다닐 거’라고 했다. 그렇게 서울에 왔다. 우진학교 위치가 되게 좋다. 횡단보도 건너면 초등학교, 은행, 빵집, 전철역 다 있다. 처음에 와서 너무 좋았다. 애들하고 은행도 갈 수 있고 쇼핑몰도 근방이고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장애인 콜택시타고 병원·학교·집이 대부분인 학생이 너무 많았다.”

우진학교는 서울 마포구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인근 아파트촌에 위치해있다. 

“우리학교는 유치원부터 전공과까지 나이터울이 17년 차이 나는 학생들이 한 곳에 있다. 장애가 없는 학생이었으면 이런 교육기관이 가능할까? 물론 자격을 가진 선생님들이 가르치지만 생활연령도 고려가 안됐고, 우리가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갈 때 설레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나 중학생 된다’ ‘고등학생 된다’ 하면서 마음을 먹기도 하는데 그런 기회를 주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문과는 고등학생인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2년정도 더 교육기회를 주는 거다. 직업기술, 자립생활 기능 등을 가르치는 학령기 이후 교육과정으로 특수학교에는 대부분 있다.”

국립 진주교대에서 과거 입학관리팀장이 당시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던 A씨에게 중증 시각장애가 있는 한 지원자의 점수를 낮추라고 강요한 사실이 공론화됐다. 해당 팀장은 시각장애 1급인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줘 학교에 들어오는 걸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장애인이 네 아이 선생이라고 생각해봐라’ 등의 표현도 쓴 사실이 드러났다. 불공정 이슈에 유독 민감한 시기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잠잠하게 흘러갔다. 

▲ 지난달 15일 진주교대 장애인 차별 입시점수 조작 주장 관련 MBC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달 15일 진주교대 장애인 차별 입시점수 조작 주장 관련 MBC 보도화면 갈무리

 

-진주교대에서 심각한 차별이 벌어졌다. 
“1994년에 대학에 갔는데 우리과에 들어온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키가 작아서, 얼굴에 흉터가 커서’ 등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교대 입학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특수교육과에 온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땐 그런 이유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높다. 윤리적 기준이 높은 건 이해하지만 그게 ‘정상성’이라면 오히려 해롭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더욱 하게 됐다. ‘우리과왔던 동기 선후배들이 우리과에 오지 않고 초등교사가 됐다면 지금 학교와는 훨씬 달랐을 거다, 정말 학교들은 좋은 기회를 놓쳤다. 이런 우수한 인재들을’ 이런 마음이 들었다. (진주교대에서 차별을 지시한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특수학교에서도 장애가 있는 선생님이 담임이 됐는데 그 반 어머니들이 항의를 한 일이 있었다.”

-특수학교에서도 그랬나?
“우리 애는 장애가 있으니 ‘정상성’에 더 가까운 분이 가르쳐야 한다는 기준이다. 물론 해프닝으로 끝났고 그 일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하게 됐지만 그 말을 들었던 선생님도 많이 놀랐고 우리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도 한편으로는 동료교사들에게 ‘훨씬 더 노력해야 돼, 완벽 해야돼’라고 하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완벽하게 할수 없지 않나. 물론 각자 완벽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가 정상성의 기준을 가지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교사들에게 요구해야 하는건 다양함이다. 더 많은 다양함이 학교 안에 있어야 한다.”

-진주교대에서 논란이 된 게 ‘장애인이 네 아이의 선생이라고 생각해봐라’ 등의 발언이다.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거다. 길게, 더 넓게 생각하면 내 아이가 잘 살아가려면 더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함,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내 아이가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진학교를 졸업하면 그 다음에는 보통 어디가나? 
“갈 곳이 없다. 정말 갈 곳이 없다.” 

-시설로 가기도 하나?
“시설로 가는 학생도 있고. 졸업하면 어떻게 어렵게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도 하고. 집에서 활동지원사와 하루 일과를 보내기도 한다. 졸업한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는 우리사회 모두가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취업하는 경우도 있고? 
“취업하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 중엔 동료상담도 많이한다. 수급비 받아서 월세내고 혼자사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부모가 없는 경우에 가능하다.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나처럼 혼자 살수 있다’고 얘기해주기도 한다. 아니면 장애인편의시설이 잘돼있는지 확인하는 복지사업 일자리에 가기도 한다. 정말 최저생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다. 만나보면 자신감있다. 오히려 보호자가 있으면 그걸 못한다. 보호자가 그걸 못 놓기도 하고 나라에서도 부모가 있는데 왜 지원하냐는 식이다. 그러니까 문제해결이 빨리 안 된다.”

-교대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있는데, 현장에서 특수교사에 대한 차별이 있나?
“특수학교는 그렇진 않다. 일단 특수교사가 호봉이 하나 높다. 물론 일반학교에선 성과급 차이가 있겠지만 다수와 소수의 차이도 있고, 직업적으로 차별을 받진 않는다. 사회적으로 ‘너네 애쓴다’ 그런 분위기가 있다. 최근엔 학대 등의 문제로 뉴스가 나오면서 그게 많이 깨졌지만. 그동안 우리가 너무 치켜세웠으니 이런 말을 들어도 할말 없다. 예를 들어 장애학생과 특수교사가 있으면 ‘훌륭한 특수교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면 주변에서 ‘엄마야?’ 옛날에는 이런 거 물어봐요. ‘아뇨 저 교사인데요’ 그러면 ‘좋은일하네’라고 한다. 만약 ‘저 엄마에요’하면 좋은 일 한다고 안 한다. 그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편견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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