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런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자기들이 먼저 써놓고는 기사를 가지고 와서 우리가 이렇게 예쁘게 아름답게 기사를 써줬으니 광고비를 내놔라 이런다, 어이가 없는데 우리도 안 줄 도리가 없다”

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산 26조원에 대한 상속세 납부와 기부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한 언론 반응은 뜨거웠다. ‘이건희의 마지막 선물’부터, “‘이 회장 고마워요’ 한마디는 해야”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칭찬 일색 기사를 쏟아냈다. 상속세를 제외하면 실제 기부액은 재산의 15% 내외 수준임에도, ‘60% 사회환원’이라는 뻥튀기 수치를 사용한 언론사도 있었다.

한 기업의 선한 행동을 언론이 띄워주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이가 있겠다. 이런 선한 영향력은 오히려 널리 퍼뜨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문제는 그 행동에 ‘저의’가 있을 때다. 이 글 앞부분에 언급한 인용은 쏟아지는 ‘이건희 상속세’ 보도가 쏟아지자 삼성 고위임원이 꺼낸 말이라고 한다. 칭찬의 대상이 된 이들도 언론의 저의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언론이 ‘삼성 띄워주기’ 기사를 쏟아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삼성은 언론의 가장 큰 고객이다. 말로는 독자를 향하고 있다고 하지만, 언론사를 지탱하는 건 기업이 주는 광고비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B2B 사업모델이다. 그런데 고객에게 잘 보일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그 기회를 잘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업 흠결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보다야 잘한 일을 가지고 칭찬해주는 것이 언론사 입장에서도 맘 편한 비즈니스일 테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연합뉴스
▲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띄어주기 기사가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까지 지워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술품이 활용됐단 의혹이 일찍이 있었음에도, 언론은 이런 배경에 주목하지 않았다. 단지 이번에 삼성 일가가 내놓는 ‘이건희 컬렉션’에 어떤 작품이 있는지, 해당 작품 가치는 얼마나 되는지를 보도하는 데 골몰할 뿐이었다. 사건 명암을 고루 보도해야 할 언론이, 형평성을 저버린 것이다.

판단은 시민의 몫이다. 언론은 시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공과를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룰 수 없다면, 차라리 그 이유를 떳떳하게 밝히는 게 낫지 않을까. 먹고사느라 그렇다고. 광고비를 받아 회사를 지탱해야 하는 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기업 고객에게 받는 광고비는 얼마라고. 하지만 뒤에서는 돈을 받으며 앞에서는 객관적인 척 호도된 사실을 내놓는 그 모습이, 시민들은 실망스러운 거다. 이런 상태로 시민들은 언론이 내놓는 어떤 정보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저널리즘 교과서라 불리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저)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최우선적 충성 대상은 시민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충성 대상이 꼭 바뀐 것만 같다. 시민이 아니라 삼성으로. 하지만 그 과도한 충성을 삼성조차 바라지 않는다는 현실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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