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박다인 어린이는 TV 애니메이션 ‘안녕! 자두야’와 ‘엉뚱발랄 콩순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비시각장애인 보호자가 꼭 함께 봐야 한다. 다인 어머니 김은미씨는 “대사 없는 장면이 쓱 지나가거나 소리만 나면 아이는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옆에서 매번 설명해줘야 한다”고 했다. TV 교육용 애니메이션에 시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음성 해설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범씨는 지난해 9월 중학교 3학년 아들 대웅이를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하게 했다. 대웅이는 난청인데, 지난해 코로나19로 휴교하면서 줌으로 하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음성을 활자로 변환하는 기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지원 못 받았고, 비슷한 앱은 틀린 내용을 변환해놓기 일쑤였다. 현장 수업에 복귀한 뒤엔 모두가 칸막이와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도저히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영상 콘텐츠가 넘쳐난다. 코로나19 시국에 교육도 시청각 미디어로 이뤄진다. 감각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미디어를 활용하고, 학습하고 있을까. 교사와 가족, 보호자들은 “어린이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배울 권리를 누릴 지원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그 피해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심각하다.

김미실 국립청각장애교육지원센터장은 “모두가 아무 준비 없이 비대면 소통과 학습을 맞았지만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는 특히 그랬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말하는 입 모양을 실제로 또는 화상으로 볼 때 전해지는 모양이 상당히 다르다. 청각장애 어린이들이 입 모양을 이해하기 어려워,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 KBS1TV 등에서 방영된 완구콘텐츠기업 영실업의 애니메이션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시즌6’
▲ KBS1TV 등에서 방영된 완구콘텐츠기업 영실업의 애니메이션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시즌6’

정재은씨는 지난해 청각장애가 있는 두 자녀가 다니는 일반고등학교에서 휴교하면서 잠시 학습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보조공학기기인 FM송수신기 없이 원격 수업에 들어가면서다. 그는 “특히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기계음은 인공와우(신경에 소리를 전달하는 이식 장치)로도 100% 들을 수 없다”며 “다음날 바로 FM송수신기 지원을 요청했다”고 했다. 감각장애 아동을 위한 보조공학기기는 선지급되지 않고, 보호자의 요구와 학교의 신청, 교육지원청 측 심사를 거쳐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정씨는 “정부가 청각장애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제공하는 맞춤형 콘텐츠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마저 감각 장애 어린이를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애인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되는 장벽을 없앤다는 뜻) 기능이 없다시피 하다. 박다인 어린이 어머니 김은미씨는 “코로나 초기 휴교령이 내려진 직후 얼마간 EBS에서 동 시간대 학년별 교육 방송을 했다. 그런데 내내 시각장애 어린이를 위한 음성 해설은 제공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배리어프리 없이 점자책으로 수업을 따라가려니 그림 하나에 설명이 2~3페이지가 붙는다. 아이가 실시간으로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두세 번 보다 말았다”고 했다.

시각장애 어린이들에겐 AI스피커가 EBS보다 가까운 학습 자료가 된다. 김씨는 “집에 시각장애인 지원 사업으로 받은 AI스피커가 있다. 아이가 시간을 묻기도 하고, 동화를 들려달라고 해 듣기도 한다”며 “어느새 다른 콘텐츠가 알고리즘으로 소개 돼,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 다인이가 ‘달걀후라이 익는 소리’ 등 ASMR을 듣고 있었다. 이제 모든 일에 AI를 부르고 만화나 EBS는 찾지 않는다”고 했다. 4학년 예진이도 TV와 핸드폰이 아닌 AI스피커에게 날씨를 묻고, 공부하다 모르는 단어를 질문한다.

▲ 지난 3월5일 이신혁 어린이가 줌 제작자에게 쓴 편지. 이신혁 어린이는 “우리 집 둘째 신율이는 청각장애입니다. 오늘도 신율이는 줌 수업 도중에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들어 엄마한테 혼이 났습니다. 자막서비스가 활용되는 것이 어떨까요? 어려우신가요?”라고 썼다
▲ 지난 3월5일 이신혁 어린이가 줌 제작자에게 쓴 편지. 이신혁 어린이는 “우리 집 둘째 신율이는 청각장애입니다. 오늘도 신율이는 줌 수업 도중에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들어 엄마한테 혼이 났습니다. 자막서비스가 활용되는 것이 어떨까요? 어려우신가요?”라고 썼다

박물관과 전시장은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현장학습 장소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예진이는 흥미를 찾기 어렵다. 어머니 김은화씨는 “최근 서대문에 있는 역사박물관에 갔더니 글과 그림을 보여주는 QR코드는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설명은 없었다.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혹여 제공하더라도 과거 만들어놓은 설명이 흘러나와, 어린이가 흥미를 가지고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원격 교육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수업 경험이 수월해진 경우도 있다. 김경림 이연상담지원센터 대표는 “자녀가 대학생인데 줌 수업이 신기하게 더 편하다는 얘길 했다. 오프라인에선 저시력으로 화면과 교수가 잘 안 보일 때가 많은데, 줌에선 모니터를 확대해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진 어머니 김은화씨도 “다중통화로 했던 영어수업이 좋았다. 지도 선생님도 시각장애인이고, 화면이 필요 없으니 SK 다중통화로 학생들과 수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더라”고 말했다.

정재은씨는 “청각장애가 있다 보면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에 시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를 자주 본다. 유튜브에는 자막 자동생성이 있기도 하다. 첫째 아이의 경우 건담 도색하는 방법을 비롯해 오만가지를 유튜브에서 접하고 배운다”고 했다.

맞춤형 콘텐츠 필요, 배리어프리부터 보장해야


감각장애 어린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려면 일단 대면 수업이 시급하다. 김미실 센터장은 “특수학교는 비대면 수업하기에 환경이 녹록지 않다. 선생님이 가까이서 행동을 수정하고 직접 소통을 하지 못하는데, 특히 장애가 있는 경우 그로 인한 한계와 어려움이 명백하다”며 “이 탓에 국립서울농학교를 비롯한 대다수 농학교들은 대면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들은 어린이들의 미디어를 이용한 학습권을 위해선 교육 설계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입모았다. 비장애인만 대상으로 만든 교육 내용과 틀에 장애인을 끼워 맞추지 말고 처음부터 장애 어린이를 교육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 학교인 구룡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시각장애 교사 김헌용씨는 “일반 교육 과정부터 ‘멀티모달리티(multi-modality·여러 가지 경로와 형태로 컴퓨터와 소통하는 환경)’를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청각장애 어린이에게는 실시간 자막과 그림을 제공하고, 시각장애 어린이에게는 배리어프리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어린이들이 같은 박자를 맞춰가도록 하고, 이런 선택지를 일반 교육 콘텐츠에서 기본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은화씨는 ‘뉴미디어 시대’가 감각장애 어린이들은 빼고 흐른다고도 했다. “요즘은 버거킹과 맥도날드에 갈 때에도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 주문 받는 창구가 없어지고 아이가 나중에 크면 혼자 주문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시각과 터치로 이뤄진다. 은행 창구도 마찬가지다. 변화가 없다면 세상은 좋아졌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안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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