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사나 보도에 대한 항의가 있습니다. 욕설이 섞인 전화를 받는 건 일상다반사입니다. 다짜고짜 어떤 보도인지는 말하지 않고 “미디어오늘 ○○○기자 바꿔”라고 하기도 합니다. 독자의 의견과 문제 제기를 수용하는 것은 숙명 같은 일입니다. 성심성의껏 응대하고 피드백을 줍니다. 이번 주 미디어오늘 편집국은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매우 색다른 항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꺾으면 미디어오늘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이 보입니다. 빌딩 앞 이면도로에서 한 무리가 집회 시위를 했습니다. 영등포경찰서에서 나온 정보관에 따르면 미디어오늘 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충북 제천에서 올라온 시위대라고 합니다.

이들 중 한 명은 저승사자로 분장해 갓을 썼고, 또 다른 한 명은 비장하게 삭발을 했습니다. 사무실 주변에 “가짜뉴스 보도한 인터넷 언론사 제천시민께 즉각 사죄하고 폐간하라”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들은 왕생극락이란 한자가 쓰인 관을 들고 당산동 일대에서 행진까지 했습니다. 이날 오후 내내 장송곡이 사무실 주변에 울려 퍼졌습니다. 주변 상인이 ‘장사가 안 된다’며 시위대와 싸우기까지 했습니다. 상인들은 미디어오늘에 전화를 걸어 ‘피해가 막심하다, 어떻게 좀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 11일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 집회 시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 11일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 집회 시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졸지에 미디어오늘이 가짜뉴스를 보도한 사이비 언론이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손가영 기자는 올해 지역의 사이비 언론과 기자 문제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협박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제천 지역 조폭 출신 기자 문제에 대한 보도는 반향이 컸습니다. 이어 제천 지역 농촌마을에서 ‘한 기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관련기사 : ‘기자 완장’ 하나로 농촌 마을 뒤집어 놓은 기자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944)]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 일대에서 시위를 벌인 이들은 해당 보도에 등장하는 ‘한 기자’와 마을 주민입니다. 미디어오늘의 ‘허위 보도’로 인해 마을 이미지가 망가졌다는 것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한 기자’는 집회 시위를 진두지휘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한 기자’가 농촌마을에 나타난 이후 벌어진 피해에 주목했습니다. 해당 기자는 정당한 취재 행위라거나 마을을 바로잡은 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 주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미디어오늘은 농촌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피해자 목소리는 왜 사라졌는지 의문을 가졌고 이를 보도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19년 언론 매체 수는 6031개(한 사업체가 여러 매체 운영하는 경우 포함)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인터넷신문 매체가 4282개입니다. 2014년 인터넷신문 매체는 2743개였습니다.

재단은 “2019년 기준 언론산업 사업체 수는 전년보다 3.1% 줄어, 계속 증가세를 이어오던 수치가 감소세로 방향이 바뀌었다. 인터넷신문과 주간신문 사업체 수 감소가 전체 사업체 수 감소를 이끌었다”며 “반면, 한 개 사업체가 여러 매체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산업 매체 수는 여전히 증가세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매체 창간과 운영이 쉬운 인터넷신문이 이러한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언론산업 사업체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1987개, 부산 88개, 대구 103개, 인천 114개, 광주 112개, 대전 98개, 울산 26개, 세종 22개, 경기도 766개, 강원도 76개, 충청북도 66개, 충청남도 129개, 전라북도 105개 전라남도 157개, 경상북도 270개, 경상남도 161개, 제주도 42개입니다.

정리하면 여전히 서울과 경기도(2753개)에 집중돼 있지만 지역 언론 매체(1569개)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언론 산업 전체에서 인터넷신문 매체 비중을 봤을 때 지역에서 절대 다수 인터넷 매체가 터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일간지 및 방송 등 지역판 포함)

반면, 인터넷매체 신문 매출액은 다른 여타 매체와 비교해 상당히 떨어집니다. 2019년 일간신문 매출액은 3조8억5200만원이고, 인터넷매체 신문은 5623억900만원입니다.

지역 인터넷매체의 열악함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피 터지는 경쟁으로 인해 어떻게든 수익을 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자신 뜻대로 사업 발주를 하지 않으면 비판 기사를 쓰고, 비판 기사를 쓴 다음 광고를 받고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정당화하는 건 아닙니다. 지역에서 풀뿌리 언론을 지향하고 이웃의 일처럼 보도해 독자로부터 후원을 받고 좋은 보도를 다시 내놓는 매체도 많습니다. 지역에서 ‘나쁜 언론’을 공론화하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 순간 단합한 ‘나쁜 언론’ 때문에 살아남기 어렵고 해코지를 당합니다. 광고를 나눠 먹으려고 한다는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비리 공무원에 대한 정당한 취재인데 왜 그러느냐는 ‘나쁜 언론’의 항변도 어떻게 보면 그럴 듯합니다. ‘나쁜 언론’의 행태가 지역에서 흔한 일로 취급되는 이유입니다.

언론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독자위원회 지적에도 미디어오늘이 이런 일을 고발하는 까닭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알력다툼으로 그치는 지역의 나쁜 언론을 비판하는 일이 조금이나마 언론 생태계를 정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 11일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 집회 시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 11일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 집회 시위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돌아가서 집회 시위 얘기를 하자면, 영등포경찰서 정보관은 “이분들이 아마 계속해서 집회 시위를 할 것 같은데 얘기를 한번 해보시죠”라고 말했습니다. 당산역 주변의 주민 피해 때문이라도 ‘중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한 기자’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디어오늘 보도로 인한 피해나 사실과 다른 부분, 반론할 내용이 있다면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말이 돌아왔습니다.

“해당 보도의 배후가 누구냐.” “누구로부터 광고를 받고 저런 기사를 올리냐.”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장송곡이 미디어오늘 사무실 주변에 계속 울려 퍼질 것 같습니다. 종종 미디어오늘 편집국에서 일어난 일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