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경동건설 하청업체 노동자 정순규씨의 산재 추락사 사건과 관련해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이사에게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정씨는 2019년 10월 부산 남구의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비계(철근 시설물) 위에서 떨어져 숨졌다. KBS 시사직격 보도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사고 현장 사진을 보고서 최소 8가지 안전규정 위반을 발견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원하청 이사와 안전관리자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정씨가 숨진 현장의 안전규정 위반은 △미끄러짐 방지 장치 △안전고리 연결구 △경고판 미설치 등 3가지만 명시됐다. 

검찰은 12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형사4단독 서근찬 부장판사가 진행한 결심공판에서 경동건설 신축현장 안전 미비로 정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김아무개 경동건설 현장소장과 권아무개 JM건설 이사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인 백아무개씨에겐 금고 1년을, 원하청 법인엔 각각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운동본부와 고 정순규씨 유족들은 12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정씨의 산재 사망과 관련한 경동건설과 하청 JM건설 결심공판을 앞두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정순규씨 유족 제공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운동본부와 고 정순규씨 유족들은 12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정씨의 산재 사망과 관련한 경동건설과 하청 JM건설 결심공판을 앞두고 선전전을 진행했다. 사진=정순규씨 유족 제공

검찰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사다리를 안전한 통로로서 비계 안쪽에 설치토록 하거나 이미 설치된 사다리를 이용함에 있어 추락 위험성을 배제하고, 관리자들을 통해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관리·감독했다면 피해자가 이 사건 사다리를 비계 바깥쪽으로 이용하는 등 추락한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 가장이었던 피해자가 사망하게 됐음에도 피고인들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 피고인을 엄벌에 처할 필요 있다고 생각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날 피고인인 경동건설과 JM건설 측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안전관리가 미비했더라도 정씨 사망에는 본인 책임이 크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피고인 변호인은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안전한 통로인 계단식 통로가 설치돼 있었다. 안전한 통로에 갈 것인지, 위험하지만 보다 빠르게 사다리를 이용할 것인지는 망인의 선택”이라며 “위험한 길은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은 근로자도 유의해야 하며, 망인이 어떤 경우인지 알 순 없지만 사다리를 잡은 그 부분을 놓치는 바람에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변호인은 “망인 사망에 있어 피고인들의 책임 요소가 그렇게 많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힌 뒤 “유족급여와 피고인 회사가 가입한 근로자재해공제증권을 통해 관련 사건에서 피해가 있다고 한다면 그 피해액은 전부 다 전보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정순규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정순규씨의 생전 모습. 유족 제공

이날 정씨의 아들 정석채씨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목격자와 CCTV가 없는데 왜 (추락 지점이) 사다리란 전제로만 이야기하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며 “김아무개 이사는 저희 유족들을 완전히 파렴지한 사람들로 몰고 갔다. 저들이 사죄하는 것은 하나도 진심이 없다. 제발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원인이라도 알고 싶다. 제발 엄벌에 처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재판에서 경동건설 측이 정순규씨 서명을 위·날조한 문서를 증거로 제출한 사실이 밝혀져 검찰의 별도 기소 여부도 주목 대상이다. 검찰은 이날 구형에서 이와 관련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측 변호인단은 지난해 정씨가 현장 안전 관리 책임을 지는 감독자였다며 고인의 이름과 친필서명이 적힌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경동건설 측 문서로, 정씨가 현장 안전관리자로 본인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유족이 정보공개 청구로 문서를 입수해 필적감정을 맡긴 결과 정씨의 친필과 다르다는 판단이 나왔다. JM건설 측 피고인 권아무개 이사는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 ‘정씨가 부탁해 대신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경동건설 측이 지난해 재판부에 제출했던 ‘관리감독자 지정서’상 정순규씨 필체와 정씨 여권에 쓰인 실제 필체를 비교한 필적감정 결과. 정씨 유족 제공
▲경동건설 측이 지난해 재판부에 제출했던 ‘관리감독자 지정서’상 정순규씨 필체와 정씨 여권에 쓰인 실제 필체를 비교한 필적감정 결과. 정씨 유족 제공

고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는 이날 재판이 끝나고 “참담 그 자체였다”며 “결국 우리 유족이 불의에 맞서 싸우려면 아버지 사건이 공론화돼야 되어야만 함을 느꼈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진상규명이라도 되도록 국민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의 사건이 좀처럼 공론화되지 않는 데에 “죽음에도 차별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는 “어떤 죽음은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언론과 네티즌이 수사대가 되는데 아버지의 죽음은 1년 6개월이 지나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죽음조차 이렇게 격차가 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구형을 보도한 매체는 13일 현재 전국에서 부산MBC 단 1곳이다. 선고는 오는 6월1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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