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와 장관 후보자 가운데 박준영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고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국회 인준과 청문절차를 통과했다. 야당이 거센 반대와 여당 내 우려에도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인사 검증이 실패하는 건 아니다’라던 문 대통령이 후보자 한 명을 낙마시킨 배경이 주목된다. 부적격 지목인사 3명 가운데 1명만 받아들인 점도 의문을 낳는다.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은 ‘야당의 반대로 한 명은 낙마시켰으니 통과해도 된다’는 인식이야말로 인사를 희화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오전 문 대통령이 이날 아침 김부겸 국무총리 임명안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 검증실패 아니라더니, 왜 박준영 자진사퇴했나

이번 인사는 야당이 부적격으로 지목해 청문보고서 동의없이 통과한 31번째 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만큼 문 대통령은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반대에도 인사권을 대부분 행사해왔다. 특히 불과 나흘전인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야당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저는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언론의 검증, 국회의 인사청문회의 검증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국회의 논의까지 다 지켜보고 종합해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준영 후보자가 13일 오후 자진사퇴했다. 이번에도 모두 밀어붙일 기세였는데, 한 명의 낙마자가 나온 이유는 뭘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여민관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여민관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3일 오후 박 후보자 자진사퇴 직후 가진 춘추관 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는 처음부터, 저랑 나눈 대화를 통해서는 ‘국회의 논의 과정을 존중하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했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전달해온 여론에 의해 제가 드린 말씀은 ‘대체적으로 들어 보니 1명 정도의 사퇴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씀드렸다”며 “그러나 당신께서는(문 대통령이) ‘이것을 전제로, 결론을 내려놓고 임하지는 마라, 여야 얘기를 충분히 들어서 판단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대통령 마음속에는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겠다, 여론과 국회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는 것이 있었다”며 “그때는 강행 입장이었다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초선 의원들이 ‘1명 이상은 낙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등 더불어민주당 내부기류를 접하고 한 말 물러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두고 이 고위관계자는 “여당에 떠밀렸느냐는 추측을 많이 하는, 지난 주말쯤 대체로 여당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께 보고했고, 대통령도 여론이 그렇다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왜 임혜숙 박준영 중 한 명만 낙마했나

그러나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총리후보자와 장관후보자 3명 등 모두 부적격이라고 규정하고 전원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의 경우 외유, 위장전입, 남편 논문문제 등 도덕성 미달이라는 비판이 많았고, 국민의힘도 1순위로 부적격 인사로 판단했다. 그런데 임 장관은 놔두고 박준영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흠결 관련 국회 등의 논의를) 본인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와 관련돼서 청와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그런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임혜숙 후보자가 더 안 좋은 것 아니냐 그런 반응이 많다’는 질의에 “박 후보자와 관련된 의혹이 더 심각했기 때문에 박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거냐고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국민 여론이나 국회, 여당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론”이라고 답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청와대 앞 의원총회에서 “임혜숙 후보자의 과방위 인사청문 검증 결과 ‘공직자로서, 공직에 대한 존엄성’을 추호도 갖고 있지 않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도 못한다”며 “자기 이익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사가 어떻게 장관이 되겠느냐. 후보자 중에서 제1의 종합비리세트로서 장관의 자격이 없다고 밝혔으나 소귀에 경읽기”라고 비판했다.

같은당의 전주혜 원내대변인도 같은 자리에서 “박준영 후보자 사퇴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국민기만이었고, 동네 구멍가게 흥정하듯 한 명은 사퇴시켰으니 나머지는 통과시켜달라는 이 정권과 여당의 가벼운 인식을 여실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김부겸은 왜 국민의힘 반대 당론이 됐나

다만 국민의힘이 장관후보자 외에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를 왜 부적격으로 삼았는지 의문이다. 당내에 하태경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화끈하게 통과시켜드리자”고했다. 심지어 총리인사청문특위의 위원이기도 한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청문회 중에 ‘제 자신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김부겸 후보자의 답변에 “후보자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저도 좋아하고, 그래서 안타깝다”며 “후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저와 생각이 다르지 않아 안타깝다. 오히려 우리 당에 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김부겸 총리도 부적격 입장을 내놓았다. 조수진 의원은 14일 청와대 앞 의원총회에서 김 총리를 두고 “오랫동안 정치했다”면서도 “조국 사태에서 당내의 말과 대외의 말이 다르다, 박원순 전 시장 피해자에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날 의총에서 조 의원의 간략한 언급 외에 김부겸 총리의 흠결을 언급하거나 비판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는 부적격이라고 결정한 다른 장관 후보자에 명분을 더하기 위해 무리하게 김부겸 총리까지 끼워넣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정의당 일제히 반발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자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 야당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연 비상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의 인사횡포 국민에 대한 폭력입니다’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걸고 “국민무시 협치파괴 문정권을 규탄한다” “자격없는 장관후보 대통령은 철회하라” “오만독선 인사참사 대통령은 사과하라” “대통령의 불통인사 국민은 분노한다”고 구호를 외쳤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1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있다. 사진=국민의힘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아무리 민심의 회초리를 맞아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며 “오만과 독선의 DNA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부적격 장관 후보자의 독단적 임명 강행은 청와대 각본과 감독하에서 민주당이 그 배우로 등장해서 실천에 옮긴 참사이자 인사 폭거”라며 “민주당은 배우 역할을 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다만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지금 즉시 제1야당과 만남 임해달라”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자 함이 절대 아니라 국민들이 왜 이런 인사를 반대하는지, 국민들도 얼마나 고통에 빠져있는지 가감없이 전달하고자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도 반발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14일 낮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민심패싱, 국회패싱’ 오기인사”라며 “한 명을 빼냐, 두 명을 빼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문제는 적격이냐 부적격이냐다”라고 비판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에서 한 명은 빼야 한다고 한 것이나, 한 명 뺏으니 통과시켜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 인사를 희화화하고, 시민들을 기만하는 처사”라며 “부적격 장관 임명 강행에 대해 시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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