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방법원은 5월13일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에서 이 PD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13년간 프리랜서로 고용돼 정규직보다 더 많이 일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았던 이 PD가 청주방송 노동자로 인정된다는 판결입니다. 재판부는 청주방송이 이 PD가 비정규직 임금 인상을 요구한 것을 이유로 프로그램 하차 후 해고한 결정이 위법하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청주방송에게 이 PD 해고기간 임금 6300만 원과 소송비용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승소 판결은 언론계에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식 비정규직 고용관행이 명백한 위법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계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방송 뉴스 침묵, 신문 지면은 한겨레만 보도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7개 방송 저녁종합뉴스 보도를 확인한 결과, 5월 13일 고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승소 내용을 다룬 방송 저녁종합뉴스는 없습니다. 이튿날인 5월 14일 신문 지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겨레 <법원 “고 이재학 피디는 청주방송 노동자”>(5월14일 오윤주 기자)가 8개 신문 중 유일하게 보도했을 뿐 대부분 다루지 않았습니다.

▲ 고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판결 신문(5월14일)·방송(5월13일)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고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판결 신문(5월14일)·방송(5월13일)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5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이재학”이 들어간 보도를 확인한 결과 한겨레, 경향신문, KBS청주가 보도한 기사 4건이 전부입니다. 더 많은 매체를 분석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이재학”과 “판결”이 들어간 보도를 검색한 결과 17개 언론사 보도 20건이 확인됐습니다.

▲ 빅카인즈, 네이버 기준 ‘고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판결’ 보도 현황(5월13~14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빅카인즈, 네이버 기준 ‘고 이재학 PD 근로자지위확인소송 2심 판결’ 보도 현황(5월13~14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이런 결과는 언론계가 여전히 내부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 이재학PD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미디어전문지를 제외하면 언론계 내부에 존재하는 노동문제가 법원 판결로 공식화됐음에도 관심을 갖는 언론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특히 이 PD와 같은 프리랜서를 다수 고용하고 있는 방송사들이 관련 보도를 거의 내지 않은 점은 언론 스스로 성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합니다.

▲ 2020년 7월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 2020년 7월 청주방송 4층 소회의실에 조성된 고 이재학 PD 추모공간.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계엔 ‘제2의 이재학 PD’가 아직도 많다

고 이재학 PD가 겪은 고용 및 노동차별 문제는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방송계 전반에서 관행으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오늘 <전국에서 신음 중인 ‘제2의 이재학’ 방송계 위장 프리랜서>(2020년 11월10일)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실에 공개한 ‘지난 10년 주요 방송사 법원 소송현황’과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에 공개한 ‘2010~2020년 지노위에 접수된 주요 방송사 사건’ 문서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두 문건을 합쳐 확인된 21건 사례를 보면 이 PD와 같은 연출 업무부터 아나운서, 작가, 진행자, 사무직 등 방송사 전반에서 프리랜서, 파견직 노동자를 상습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방송사는 KBS, MBC, JTBC, TBS는 물론이고, TJB대전방송, 대구MBC, KBC광주방송 등 서울을 비롯해 지역방송까지 다양했습니다.

‘무늬만 프리랜서’인 비정규직 문제인 방송사를 벗어나 언론계 문제로 확산됐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 다수 언론은 지난 수년 전부터 뉴미디어 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KBS ‘크랩’, CBS ‘씨리얼’ 등이 대표적인데요. 미디어오늘 <뉴미디어 노동자 ‘안녕하신가요’>(2020년 11월25일)는 언론사 뉴미디어 산업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크랩은 “3명 이상의 관리자급과 10명이 넘는 크리에이터‧디자이너 등 제작 인원”이 있지만 “팀장과 기자가 관리자급으로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3개월 단위 프리랜서와 인턴, 1년 단위 파견 비정규직”입니다. 씨리얼 역시 “4명의 크리에이터 가운데 정규직 PD는 1명”이었고 3명은 연봉제 계약직입니다. 업무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상시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규직 채용이 마땅한 상황이 다수였습니다.

‘이재학 PD’ 목소리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2018년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 대한민국 언론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비롯해 노동문제를 적극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방면에서 노동문제에 접근하는 언론보도가 본격화된 변화는 분명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성역 없는 보도가 이뤄져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고 이재학 PD가 세상에 알린 비정규직 문제는 언론계에 만연합니다. 언론계가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더욱 적극 보도하고 개선을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만약 이재학 PD와 같은 고용 및 노동차별 문제가 언론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벌어졌다면 언론의 관심이 지금처럼 적었을까요? 언론계가 자신의 문제부터 성찰하고 개선해야 언론이 보도하는 노동보도의 진정성도 독자와 시청자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다음은 이재학 PD가 생전 직장갑질 119에 보낸 이메일 일부입니다.

“14년의 세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언젠가 고생한 거 알아주겠지란 생각으로 달려온 시간이 너무 억울하네요. 저에게는 힘을 주지 못하셔도 제 다음 생에 후배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설움을 못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5월1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5월 1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5월 13~14일 빅카인즈, 네이버에서 “이재학” 등 키워드 검색, 조건 설정 후 나온 결과 중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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