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부추겨 중계하는 일부 언론의 ‘혐오 장사’가 도를 넘고 있다. 이른바 ‘GS25 남혐 논란’처럼 무분별한 낙인 찍기 여론에 편승하는 양상이다. ‘GS25 남혐 논란’은 GS리테일의 편의점 브랜드 GS25의 캠핑 이벤트 포스터에 남성을 ‘혐오’하는 상징이 사용됐다는 의혹이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무언가를 집어 드는 형태의 손 모양이 여성 커뮤니티 ‘메갈리아’ 문양과 유사하며, 이는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의미라는 주장이었다.

포스터 하단에 사용된 초승달과 별 무늬는 한 대학교의 여성주의 학회 마크와 비슷하고, 포스터에 사용된 영어 단어의 마지막 스펠링을 역순으로 조합하면 ‘megal’이 된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지난 1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의혹은 기사화 등을 통해 파괴력 있는 이슈가 되었다.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이 손 모양을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의 ‘인증’과 동급으로 취급했다. 줄여서 ‘일베’로 불리는 이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특정 인물을 조롱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유포하거나, 손가락으로 ‘ㅇㅂ’ 모양을 만들어 찍은 인증샷 또는 이 표식을 몰래 심은 각종 로고·문양을 유포했다. 일부 이용자들은 연인 몰래 ‘여친 인증’ 게시물을 올리거나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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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집어 드는 행위는 너무나 일상적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의도적으로 이 문양을 유포하고 인증하는 오락성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거나,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두려움에 내모는 배제 효과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여성학계에서는 이런 행위가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비롯해 ‘페미니즘’을 무력화하기 위한 ‘백래시’(backlash)라 규정했다.

그러나 이 ‘메갈 색출’은 언론 보도와 함께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GS25를 넘어 패션 브랜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일부 연예인,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포스터까지 ‘색출’ 대상이 됐다. 불매 운동을 우려한 기업들은 줄줄이 사과했다. 심지어 경찰도 홍보물을 둘러싼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당 자료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존재하지 않는 가해자를 찾기 위한 광기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사례가 연이어 등장했다.

언론은 무얼 했을까. 처음 GS25 포스터 논란이 제기되고 포스터가 일부 수정됐던 지난 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 보도는 UPI뉴스, 제민일보 정도였다. 그러나 포스터가 수정되고 GS25가 사과문을 낸 2일에는 오히려 논란이 증폭됐다. 일부 온라인 매체, 경제지, 통신사들은 ‘남혐논란’을 제목에 붙여 ‘커뮤니티 받아쓰기’를 일삼았다. 이를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SNS에 공유하자 그 역시 ‘뉴스’가 됐다.

다음날인 3일엔 국민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류’ 매체들이 가세했다. 경제 매체와 통신사들은 ‘GS25, 남성 혐오 논란에 주가 하락’과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GS25 후속 조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제목의 보도들은 자체적인 취재와 진단이라기보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불만을 확대·재생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조윤성 GS리테일 사장마저 사과한 4일엔 ‘성 대결’ ‘젠더 갈등’ 등 이른바 ‘VS(편가르기) 저널리즘’이 본격화했다. △손모양 갖고도 시비거는 性 대결…기업·경찰도 손들어(조선일보) △GS25 남성 혐오 논란에 이준석 “정신 나간 것” VS 진중권 “소추들의 히스테리”(세계일보) 등이 일례다. 그러나 이 현상이 성별갈등이라는 근거는 문제를 제기한 커뮤니티가 ‘남초’였고, 여성주의 커뮤니티로 한때 활성화됐던 ‘메갈리아’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남혐’이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사태를 분석적으로 접근한 언론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번 현상을 ‘백래시’라는 관점으로 분석하거나, 경찰의 섣부른 사과가 미친 영향을 분석한 보도는 경향신문, 한겨레 정도였다. 이후로는 국민일보, 한국일보 등의 분석 기사가 일부 이어지고 있다.

▲'빅카인즈'로 분석한 2021년 5월1일~5월17일 '남혐' 키워드 보도 연관어
▲'빅카인즈'로 분석한 2021년 5월1일~5월17일 '남혐' 관련 보도 연관어

최근의 ‘남혐 논란’은 지난 4·7재보궐선거 이후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유권자의 약 80%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고 드러난 일을 계기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이 무엇인가’ 분석하는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2020년 16건에 그쳤던 ‘남혐’ 관련 보도는 올해 5월18일 현재까지 193건에 달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불만 여론을 쟁점화해 응징하는 ‘승리의 역사’가 반복된 점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GS25에 불만을 가진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일본제품 불매’ 운동 때 등장했던 ‘노 재팬’(No Japan) 포스터를 패러디해, ‘노 지에스’(No GS) 포스터를 만들었다. 역사 왜곡 논란 끝에 제작 중단된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경우도 문제의식을 가진 시청자들이 협찬사 등을 불매운동 경고로 압박해 무릎 꿇게 한 사례다. 사안의 의미나 경중은 다르지만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언론을 활용해 실력행사를 하는 방식이 보편화한 셈이다.

이런 과열 양상에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의 검증조차 없는 커뮤니티 받아쓰기, 포털이라는 가판대에서 잘 팔리기 위한 ‘키워드 중심 어뷰징’ 기사가 그나마 의미를 분석한 기사들을 압도한다. 더욱이 이를 활용하는 정치권의 속성과 맞물려 이런 보도의 영향력이 당분간 지속될 우려도 남는다.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제도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관련 보도에 제재를 가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김수진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은 “젠더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들이 흐름을 타고 있다”며 “단순한 가십성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해 적절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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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고려대 언론학 박사는 “일련의 보도가 대중의 관심을 부정적 방향으로 증폭시켜 페미니즘 백래시를 부추기는 선동의 결과를 만들어버렸다”며 “일반인들의 평범한 제스처에 갈등적 의미를 부여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위축시킨 보도행태는 오늘날 언론이 윤리적으로 심각하게 추락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비판했다. ‘커뮤니티발’ 보도에 대해선 “진실여부와 책임을 불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책임회피 방식”이라 꼬집었다.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은 “언론이 상업적 키워드로서 ‘여성과 남성의 대결’이 ‘잘 팔린다’는 학습이 된 것 같다. 이 행태가 정상적인가를 논의해야 하는데 중계식 보도만 이어진다면 공론장이 쓸 데 없는 내용으로 뒤덮이게 된다”고 봤다. 이어 “사인의 인권이 중요한 것처럼 기업도 억울한 피해를 보도록 해선 안 되는데 이를 구경하고 방조하고 부추기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논란에 가담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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