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부수 조작 사태로 존폐 기로에 놓인 부수인증기관 ABC협회가 정작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내부 폭로를 가리켜 “부끄러운 문화”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감독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요한 권고 사안에 대부분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거나 아예 무시하는 답변까지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지난 3월16일 ABC협회 사무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표본지국 선정 가이드라인 설정 및 표본지국 선정 과정에서 제3자 참관, 선정 과정 기록·공개 △문체부 공동조사단 참여 및 현장 실사 등 추가 조사 추진 협조 △표본지국 실사 통보 시점 조정(1~3일 전) 및 각종 증빙 확보 의무화 △신문사 직원의 개입 가능성 차단 △신문협회, 광고주협회, 제3자가 동등한 비율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사회 구조 개선 △종이신문 부수와 온라인신문 트래픽을 함께 조사하는 통합ABC제도 도입 등을 권고했다. 

문체부는 권고사항을 2개월 안에 이행하고, 2개월 이상 소요될 경우 추진 일정 등 계획이 포함된 집행계획을 보내 6월30일까지 조치 완료하라고 밝혔다. 그리고 ABC협회는 지난 17일 문체부에 ‘ABC협회 사무검사 권고사항에 대한 현황 및 조치 보고서’를 제출했다. 

미디어오늘이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해당 보고서를 입수·확인한 결과 77페이지 보고서 가운데 문체부 사무검사 권고사항에 따른 부수 공사 보완조치 내용은 3페이지 분량에 그쳤으며, 뜬금없이 광고주협회 ‘회비 납부실적’을 비판하는가 하면, ‘ABC협회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으로 전임 회장 시절 내부 폭로사건 등을 소개하는데 40페이지를 채우기도 했다. “공사원 15명이 365일 온 힘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ABC협회는 자신들을 가리켜 “부수 조작 폭로, 감사기관 진정, 정치권 진정 등 부수 공사와 관련해 자체 폭로와 진정 사태가 그치지 않던 조직”이라고 설명하면서 내부 폭로를 가리켜 “부끄러운 문화”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날 내부자 폭로는 연중 행사였다”며 “잘못된 관행은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BC협회는 보고서에서 △2008년 조선일보 부수 조작사건 △2013년 국회 부수 조작 폭로사건 △2014년 중앙일보 제휴 부수 불인정 사건 등을 길게 언급하며 대부분의 내부 폭로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11월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이 중심이 돼 문체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시작된 이번 조작 논란 역시 과거처럼 반복되는 내부 문제로, ‘순수하지 않다’는 식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유가율’과 문체부 현장조사와 큰 차이를 보인 ‘성실률’ 지표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반성 대신 내부 폭로자를 흔드는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 앞서 ABC협회는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협회 운영금 6억 원 중 3억 원을 회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박용학 전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ABC협회.
▲ABC협회.

ABC협회는 이번 보고서에서 “부수 공사는 국민 혈세인 정부 광고의 기초자료”라고 강조하면서 “ABC부수공사는 제3자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으며 “신문구독자 파악은 ABC협회 조사가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교수들의 공통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ABC협회는 오히려 ‘ABC협회 회비납부 실태’를 공개하며 광고주협회가 회비를 거의 내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 뒤 “(광고주협회는) 오랜 세월 외국의 예를 핑계로 하며 부수 공사 사용자 부담원칙을 주장했다”며 되려 “언론을 적대시하는 농단 행위 중단과 엄중 문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신문사 표본지국 선정의 경우 “담당자 표본지국 선정 시 참관인 입회”하도록 바꾸겠다고 했지만 본질적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지국 공사 방식 변경에 대해선 “회원사의 협의 과정이 필수”라고 밝힌 뒤 “신문협회·광고주협회·ABC협회가 참여하는 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디지털ABC도입의 경우도 “2020년 문체부 등록 인터넷 신문은 9584곳이지만 현재 협회 인터넷매체 가입 회원은 7곳”이라며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 선행”을 우선 요구했다. 

가장 중요한 권고라 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서는 “제3자의 참여가 옳은지 여부는 ABC협회 사무국에서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회장 등 임원선임과 관련해선 “2021년 상반기 중 총회에서 12대 회장을 선출할 것”이라 밝혔는데 “향후 회장은 신문협회 추천”으로 이뤄진다며 “2018년 양 협회 합의사항”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광고주협회 측은 당시 합의사항을 2021년 임원선임까지 적용하는 것은 왜곡에 가깝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ABC협회는 문체부가 협조를 요청한 공동조사단 구성 및 운영과 관련, ‘지국 조사 1주일 전 통보원칙’을 제안하며 “충분한 자료확보를 위해서는 열악한 지국 현장과 전년도 누락자료 보완 등 준비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1주일 전 신문사에 표본지국을 통보하는 관행에 문제가 있으니 1~3일 전으로 통보 시점을 바꾸라고 권고한 문체부 입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으로, 신문사 입장을 여전히 대변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성준 ABC협회장. ⓒ연합뉴스
▲이성준 ABC협회장. ⓒ연합뉴스

김의겸 의원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ABC협회의 주인은 언론매체사이며, 협회는 머슴일 뿐입니다”(2014년 11월), “아직도 회원사 여러분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직원들이 있다면 주저 마시고 호되게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2015년 1월)과 같은 이성준 현 ABC협회장의 이사회 회의록 발언 등을 언급하며 “머슴이라는 표현은 신문사를 위해 부수조작은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자인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기관의 부수공사를 기준으로 막대한 정부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했다. 

김의겸 의원은 “내부고발을 일컬어 ‘3대 폭로’, ‘부끄러운 문화’라고 하는 인식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자정 능력을 상실한 ABC협회의 부수공사 결과를 정부광고 집행 근거 규정에서 배제하는 정부광고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는 ABC협회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ABC 부수공사 결과에 대한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이 경우 ABC협회는 대규모 회원사 탈퇴 이후 예산 부족으로 폐업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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