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평택항 하역장에서 300kg 무게의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가 추락했다. 모 하청업체에 소속돼 아르바이트를 하던 22살 故 이선호씨가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 이선호 씨에게 안전 장구를 착용하라는 관리자는커녕,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119에 구호 요청을 할 만한 동료조차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 1명만이 이 씨를 깔아뭉갠 컨테이너 날개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꼭 한 달 만인 23일, 부산신항 물류센터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숨진 김 씨는 원래 이 센터 소속이 아니었지만, 단 하루 파견을 나왔다가 퇴근하는 길에 42t 지게차에 깔려 변을 당했다. 지게차를 운전한 또 다른 노동자 정 모 씨는 컨테이너를 실으려고 후진하던 중이었다. 매일같이 하던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신호수가 없어 숨진 노동자가 지게차 뒤로 지나가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동안 일을 하다 숨진 항만 노동자는 33명, 부상자는 1193명이라고 한다. 항만에서만 1년에 3명가량 목숨을 잃는 건데, 특히 선호씨가 숨진 평택항에서는 2년 전에도 20대, 30대 청년이 5개월 간격으로 연이어 사망했다. 이들은 모두 도급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항만 노동자들 대부분은 이선호씨처럼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일을 시작한다. 항만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3년의 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인력 도급 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고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은 모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5월13일 고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은 모습. ⓒ청와대

이선호 씨와 부산신항 김 씨의 죽음은 우리가 봐 온 여러 죽음들과 닮아있다. 매번 똑같은 지적이 있었다. 불합리하고 불안정한 고용 구조를 뿌리로, 미흡한 안전 교육·부실한 현장 관리·허술한 규제가 줄기를 뻗어 얽기 설기 엉켜있다. 일터는 어느덧 거대한 ‘위험의 실타래’가 되어 버리고, 그 속으로 들어간 노동자들이 온전할 리 없다. 지난해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집계된 것만 882명이다.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을 배제하고, 경영자 책임을 대폭 축소한 채로 통과된 이 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곧 있을 중대재해법 시행령 확정을 두고, 경영계는 또다시 ‘경영자 의무 및 이행 사항’의 범위를 축소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미 반쪽짜리로 통과된 법이 아예 누더기가 될까 우려스럽다. 

5월28일은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 군의 5주기였다. 구의역 9-4번 스크린 앞으로 숱한 약속과 함께 수많은 정치인과 언론이 다녀갔다. 그런데도 태안화력 김용균이, 평택항 이선호가 다시 희생됐다. 누군가 이들의 죽음을 두고 그저 불운 끝의 사고일 뿐이라고 한다면 틀렸다. 불운이 아니라, 불순한 구조 속에서 아까운 생이 저물기를 반복했다. 

여러 차례 비슷한 죽음을 마주하며 우리는 원인과 해법을 비교적 분명하게 파악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건, 무능력이나 정체(停滯)가 아니라 악(惡)이다. 살인을 방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군, 김용균, 이선호, 그리고 그다음 이름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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