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의 매체 인수 움직임이 미디어업계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건설사의 언론사 인수가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호반그룹은 ‘미디어그룹’을 꾀할 정도로 여러 매체를 인수할 계획이다.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호반그룹은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이로 인해 여러 규제가 따라붙는 가운데, 호반은 소유 언론사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운명이다.

신문법을 보면,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일반일간신문 지분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호반의 서울신문 지분(19.4%)은 무용한 지분과 다름없어 결국 서울신문우리사주조합에 매각했다. 방송법에도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지상파 방송 지분 10% 이상 보유 금지 규정이 있어 호반은 광주방송 지분 39.6%도 매각했다.

호반건설은 관련법 규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새 언론사를 인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인수 흐름이 포착된 곳은 전자신문이다. 전자신문은 일반전문신문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 지분 이상을 가져도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다. 호반은 전자신문과 우호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호반건설은 경제 관련 케이블TV 3곳을 후보군에 올려놓고 물밑에서 인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한 인터넷매체의 자회사를 인수하기로 잠정 결정했고, 이와 관련 구체적 액수까지 거론되고 있다. 적어도 3개 매체가 호반건설 소유가 되는 건데 일각에선 잡지 매체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사옥 두 동 중 한 동 전체를 인수한 매체로 채워 넣고 계열사 형태로 미디어그룹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라는 게 물밑 인수전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 설명이다.

▲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 호반건설 사옥. 사진=호반건설 홈페이지

호반건설이 서울신문과 광주방송 지분을 매각한 뒤 전방위적으로 여타 매체를 인수하는 움직임에서 미디어를 발판으로 한 막강한 영향력을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광주방송을 소유했을 때도 지역사회에서 호반은 미디어를 소유한 건설사라는 이미지에 더해 각종 규제를 피하는 데 있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적지 않다. 자본을 비판하는 데에는 머뭇거리고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쁜 보도가 쏟아지는 건 건설자본이 미디어를 장악했을 때 나타나는 ‘흔한 일’이다.

특히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되면서 지배구조 등 각종 규제에 직면한 호반이 대거 인수한 매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호반건설, 호반산업, 호반프라퍼티 등 주력 계열사에 대한 지분 구조 변화를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른 규제 투명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미디어를 방패 삼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 인수 대상인 전자신문이 편집권을 지켜낼 수 있을지 회의적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전자신문은 2014년 삼성전자 휴대전화 제품을 보도한 적 있는데, 삼성전자가 전자신문 보도에 ‘오보’를 주장하며 3억원 손배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크게 논란이 일었다. 전자신문은 삼성전자의 대응을 ‘재벌의 언론 길들이기’라고 규정하고 전사적 대응에 나섰지만 결국 ‘알립니다’ 형식으로 삼성 측 입장을 실었다. 당시 삼성전자와의 싸움은 1982년 ‘전자시보’로 출발해 전자 분야 정통 매체로 활약했던 전자신문 구성원 자존심에 매우 큰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구원모 전자신문 대표이사가 “언론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원칙”을 강조하며 호반그룹의 인수 추진 사실을 알렸지만, 구성원들이 “독자가 원하고 알아야 할 것을 쓰지 못함은 언론임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편집권 침해를 우려한 것도 막강한 자본의 힘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이번 호반그룹의 인수 대상이 된 언론사가 매체 정체성과 공적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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