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광고 집행을 대행하고 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합리적인 정부 광고 집행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ABC협회와 별개로 신문 부수 공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신문 부수인증제도 전문가로 2019년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언론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5월호에서 “최선은 ABC제도가 빠른 시일 내 자율적으로 정상화되는 것”이라면서도 지금 같은 ‘구제 불능’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정부 광고 관련 지표라도 정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광고는 2020년 기준 1조893억원 수준으로 국내 광고시장 총광고비 11조9951억원 대비 9.1% 비중이다. 

그의 제안은 상업광고 지표와 정부 광고 지표 ‘분리’다. 지금까지는 정부 광고 집행에도 매체사와 광고업계가 공동 운영하는 ABC협회의 발행부수·유료부수 공사 자료가 사용됐다. 하지만 ABC협회 자료가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려졌다면 세금으로 집행하는 정부 광고 지표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지금으로선 “정부 광고 집행을 대행하는 언론재단에 단가측정 지표를 검증할 의무도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심 교수의 의견이다. 

정부는 ABC협회를 개편하기 어렵다. 국제ABC연맹은 비정부 민간단체로 정부의 행정·재정적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도 문화체육관광부에 관리·감독 기능이 있지만 사무검사를 통한 권고 말고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심 교수는 “문체부가 ABC협회에 투명한 신문부수 공사를 강제할 수단도 마땅히 없다.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ABC협회는 현행처럼 민간자율로 놔두고, 정부 광고 집행을 위한 지표로 신문 ‘유통부수’ 인증을 언론재단이 새로 담당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유통부수는 ‘돈 내고 보는 부수’와 ‘돈 안 내고 보는 부수’를 합산한 부수다. 다만 유료든 무료든 유통부수로 인정받으려면 구독자 명단은 신문사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광고 집행목적은 일반 상업광고와 조금 다르다. 정부 광고는 정보 도달률인 ‘신문 유통부수’가 중요하다”며 행정정보와 공익광고의 도달률 개념으로 정부 광고와 공공기관 등의 후원금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진흥재단.

심 교수 제안에 의하면 정부 광고를 원하는 신문사는 유통부수를 언론재단에 제출하고, 언론재단은 신문유통원 산하 공동배달센터 중 표본을 선정해 신문사의 유통부수를 인증한다. 심 교수는 “유통부수의 경우 유료구독자 명단과 신문대금 입금 현황을 비교하고 신문지국이 본사에 납부한 지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며 “신문사가 일부 민감한 경영자료까지 공개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정부 광고를 포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조사를 위한 예산은 (언론재단이 받는) 정부 광고 수수료에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신문사들은 ABC협회 운영을 위해 연간 약 18억 원의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다. 언론재단의 지난해 정부 광고 수수료 수입은 900억 원 수준이다. 향후 언론재단이 부수 공사에 나서기 위해선 ‘신문 및 잡지의 유통부수 인증을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위탁한다’와 같은 내용의 정부광고법 개정이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조례 개정 등도 필요하다. 

하지만 언론 ‘진흥’이 목적인 언론재단 입장에선 부수인증 과정에서 신문사와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이 같은 변화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론재단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ABC제도 개선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현재 심 교수 의견을 비롯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 같은 변화가 실제 이뤄진다면 재단이 내놓는 지표는 민간기업의 광고집행 지표로도 이용될 가능성이 높고, ABC협회는 회원사들의 자연 탈퇴로 소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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