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작가(30)는 10년 전 “2인분의 삶을 담당하는 가장”이 됐다. 그가 스무 살일 때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 일을 나가지 못했고 알코올성 치매 초기에 진입했다. ‘아빠의 아빠’가 된 그는 누군가에게는 ‘효자’였으며, 병원에선 ‘보호자’로 불렸다. 공공 지원이 필요할 땐 ‘대리자’ 또는 ‘부양의무자’였다. 낯설고 멀기만 했던 ‘돌봄’은 눈앞 현실이 됐다. 20세 남성 청년이 참고할 만한 자료나 서적은 부실했고, 주변 조력은 마땅치 않았다. 2019년 11월 출간한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청년 보호자 조기현의 지난 9년간의 기록이다. 

조 작가를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좀체 사그라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국면, 요양병원에 입원한 그의 아버지 안부가 걱정됐다. 조 작가는 “코로나19 초기에는 그래도 거리를 두고 아버지를 볼 수 있었는데, 사실상 격리 봉쇄되는 상황에선 전화로만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며 “코로나19는 정말 큰 변화였다. 출간 후 많은 분과 돌봄 경험을 나누고 싶었는데 대면 자체가 불가능했다. 코로나가 많은 걸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가 나온 지 1년여 지났다. 한 인터뷰에서 “수급자 기준에 탈락할 정도로 책이 많이 팔리면 좋겠다”고 했다. 책 많이 팔렸나? 

“많이 안 팔렸다.(웃음) 3쇄를 찍긴 했지만…. 활동가나 사회복지 유관기관 종사자들이 조금 봐주신 것 같은데, 실제 가족 돌봄 당사자들을 만나러 가면 한 번도 제 책에 대해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어서.(웃음) 언론과 TV 인터뷰에 나갔던 이유도 그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출연했던 것인데, 직접 사서 읽은 경우는 없던 것 같다.”

- 그래도 책을 내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 자체가 주는 변화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부정 당하는 느낌은 많이 해소됐다. 이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을 수 있다, 단지 당사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계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썼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 등으로 독자나 대중의 비난을 들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쓰고 나니 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느낌이다. 책을 쓰기 전에는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효자니까’, ‘효자여서’로만 귀결되는 것에 큰 답답함을 느꼈다. 출간을 통해 벽이 무너지고 소통이 비로소 가능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 사회적 관계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 현재 아버지는 병원에 계신 건가?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

“요양 병원에 계신다. 인지 능력을 제외하면 건강은 좋은 상태다. 초로기치매를 겪고 있는 당사자 다수가 그렇듯 신체 능력은 좋지만 인지 상태가 따라주지 않아 사고가 나곤 한다. 스스로 목욕을 하려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 AZ(아스트라제네카) 2차 접종까지 맞았다. 전염병 위험도 많이 줄었다.”

- 독자들과 소통은 적었지만 다수 언론은 조 작가 이야기에 주목했다. 

“‘20대’ ‘남성’ ‘청년’이 돌봄 문제를 당사자로서 이야기하는 것에 주목했던 것 같다. 그 자체로 낯선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돌봄에 관한 서적이 많이 늘었지만 내가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2017년~2018년 즈음에는 사실 일본 책밖에 없었다. 반면 내 책이 나올 무렵 전후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2019), ‘작별 일기’(2019),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2020) 등 질병과 돌봄에 관한 여러 책들이 주목받았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도 주목도를 높인 것 같다.”

▲ 작가 조기현(왼쪽)과 그의 아버지.
▲ 작가 조기현(왼쪽)과 그의 아버지.

- 2011년 아버지가 처음 쓰러지신 후 ‘아빠의 아빠’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부정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현실 부정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내가 직면한 상황을 교육받은 적 없었고, 참조할 것도 없었다. 나 역시 치매가 시작되면 삶이 끝나는 것, 이렇게만 생각했다. 치매가 시작되기 전에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다시 사회에 참여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치매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 사회참여는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지금은 초로기 치매 당사자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 초로기 치매여도 일반적으로 ‘치매 걸린 사람이 노동을 할 수 있어?’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가능한 일인가?
“어느 질병이나 마찬가지다. 일할 수 없는 상태, 일할 수 있는 상태, 이렇게 딱 잘라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한 사람에게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사회와 연결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치매라고 하면, 이제껏 ‘일할 수 없는 상태’로 판명을 내버려 왔던 것이다. 노동 자격이 자본과 기업에 의해서만 부여받는 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노동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일자리를 통해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핵심은 치매 당사자나 아픈 사람의 24시간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있다. 그들의 24시간 중에는 돌봄도 있을 것이고, 노동도 가능한 것이다. 섬세하게 봐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당사자 역량이나 능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돌봄으로만 채워진다면 논의가 협소할 수밖에 없다.”

- 영화감독 ‘켄 로치’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가난과 질병을 국가에 증명하는 과정이 생생하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카프카 단편 ‘법 앞에서’를 보며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 진입 과정을 다룬 우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액티브X’의 번거로운 과정에 화를 내곤 하는데 기초생활수급 과정은 ‘일상화한 액티브X’다. 카프카 단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한 남자가 법의 문을 통과하려 하자 문지기는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남자가 몇십 년 기다리다가 죽을 때가 되니까 그제야 문지기가 ‘이제 통과 가능합니다’라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내가 주민센터 앞에서 계속 느꼈던 감정이다. ‘가난을 증명하라.’ ‘해체된 가족관계를 증명하라.’ ‘근로능력이 없음을 증명하라.’ 한 사람의 근로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회에 원인이 있음에도 계속 한 사람 신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모순이 벌어진다. 그 경우 검사비로 몇십만 원씩 쓰면서 몇 년간 병명을 찾으러 다닌다. MRI 하면 뭐가 나올까 싶어 70~80만 원 주고 검사를 받지만 아무것도 안 나오고…. 근로 능력이 있음을 긍정·지원하는 식으로 삶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능력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만큼 진입장벽은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의료영역에서 간병인 영역은 완전 외주화한 상태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지 않고 있다. 사회 원인을 개인에서 찾듯, 의료체계 문제를 의료수급자에게 전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치매 국가책임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다. 과거와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궁금하다. 

“치매 국가책임제 시범 사업 중에 아버지가 요양 병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제도 전후의 변화를 체감하진 못했다. 치매 관련 검사 비용이 낮아졌다는 통보를 받긴 했다. 돌봄자 부담이 크게 줄거나 당사자의 위축된 삶이 확장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치매 스펙트럼을 넓혀 지원 방안을 마련하거나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을 기획하는 모습은 보인다. 아쉽게도 여전히 치매 당사자 노동권 같은 논의는 부재하다. 치매 당사자를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전제하지 않아서 아닐까? 노동권까지 고민하는 국가 책임제로 나아가길 바란다.”

조 작가는 “치매라는 질병 자체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태도로 치매와 당사자를 마주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이야기가 더 풍부해져야 한다”며 “우리는 아픈 몸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은 적이 없다. 낙인이 찍힌다는 사실 때문에 끝끝내 아픈 몸을 부정하다가 체념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일상에서 서로가 참조하고 협력할 지점을 살피고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책 말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시민과 시민의 관계’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었다. 아버지가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약자인 것은 맞지만, 아픈 몸을 갖게 되면서 관계와 일상이 축소됐고 사회적으론 완전히 소외됐다. 그런 사회적 약자를 사회와 다시 연결하고자 했다. 여전히 코로나로 병원에 고립돼 있지만, 집에 있을 때보다 그곳에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자기 활동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인지가 불안정한 사람들의 커뮤니티. 아버지도 커뮤니티 일원으로서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가끔 주변 분들과 다투기도 하는데, 그 정도의 갈등과 스트레스는 아버지가 인지 능력을 부여잡는 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대화기구 공동위원장도 맡았다. 이 활동은 계속하는가?

“현재 기구가 사라진 상태다. 지난해 출범식을 하고 나서 다음날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전 연령대 시민 300명이 모여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2년 동안 논의해보자는 취지였다. 조직이 출범했지만 대면이 불가능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 유력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신복지체제’, ‘기본소득’, ‘기초자산’ 등은 좋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만 불평등 어젠다를 말하는 건 문제다. 시민들이 불평등 해법을 직접 고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 차원에서 범사회적대화기구는 현실 가능한 어떤 것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였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기구가 필요한 시기다. 시도도 못 했으니 실패라고 보기 어렵지만 많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 각종 제도 문턱에서 여러 차례 좌절하면서도 진보정당에 가입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등 ‘공적 해결’을 출구로 찾았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비트코인을 참 많이 하더라. 친구들이나 나나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같다. 차이가 있다면 해법이다. 친구들 해법은 비트코인, 나는 사회참여였다.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가 대박 나지 않으면 미래의 나는 지금처럼 계속 살 것이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내가 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는 지금처럼 살 수밖에 없다.’ 친구들은 나한테 ‘국가에 뭘 그리 요구하느냐’고 말한다.(웃음) 방향만 다를 뿐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동력은 같다.”

-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돌봄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책을 쓴 이유였다. 

“현재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있기 때문에 하고픈 작업을 욕심껏,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있다. 지금은 ‘2인분의 삶’이 아닌 ‘1인분의 삶’을 하고 있다. 계속 고민이다. 아버지 퇴원 계획을 세워야 하고, 퇴원 이후에도 무언가 하고 싶지만, 현 제도 안에서 균형을 잡긴 어려울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생각 많은 둘째언니’ 콘텐츠로 보여줬듯, 아버지를 돌보는 것 자체를 콘텐츠로 제작하지 않는 한 ‘하고 싶은 일’과 ‘돌봄’을 병행하긴 쉽지 않다.”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조기현 작가가 지난 5월20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참여사회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한나

- 돌봄의 공공성과 사회화를 강화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돌봄을 개인 능력 혹은 가족 책임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해 가장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돌봄을 여러 사회 이슈와 연결하면서 왜 필요한 것인지, 왜 우리 사회가 고민을 앞당겨야 하는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돌봄이야말로 탈脱탄소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그린뉴딜에 다름 아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 생태주의 차원, 기후 위기와 돌봄 위기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던져 보고 싶다. 그런 콘텐츠와 이야기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청년 담론에도 비판적이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에 대한 관심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최근 청년 담론은 청년에게 ‘가면 역할’만 바란다”고 지적했다. 

“저숙련 일자리만 전전하는 청년의 경우 실업 상태가 거의 없다. 공장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바로 다음날 나오라는 통보를 받는다. 우리 사회가 말하는 ‘청년 목소리’라는 것은 보통 수도권, 대졸자, 남성 중심이었다. 고졸인 나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다니는 청년’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호명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은 있었다. 청년 눈높이에서 주거와 고용 정책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는 환영하지만, 지금보다 청년들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사회 접촉면이 더 커져야 한다. ‘20대 남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20대 남자들이 우리 사회 혹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 같다는 공포와 우려만 표명하기보다 그들에게 어떠한 사회나 민주주의가 있었는지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청년세대에게 ‘우리 사회’라는 울타리 실체를 느껴볼 기회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 돌봄이 필요해질 나이가 됐을 때를 상상해본 적 있나?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자기 욕망에 솔직했던 사람이 돌봄을 잘 받을 것 같다. 억눌린 게 많고 타인 욕망을 따라가기 바빴던 사람은 그 억눌림만 주로 표출하지 않을까? 지금 나 자신으로서 잘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낀다. 내가 지금 잘 살면, 미래에 나를 돌볼 사람과도 협력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내 미래의 돌봄을 상상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떻게 하면 잘 의존하면서 살 수 있는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람을 ‘의존적인 인간’으로 상정하고, 또 한 사람을 ‘돌봄과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생산이 우위이고 재생산은 그다음이라는 사고에 갇히면 안 된다. 재생산이 있기에 생산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가치의 위계가 바뀌어야 한다. 건설, 석유 등 생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태와 환경 등의 재생산이 우리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조기현의 돌봄 그리고 노동의 기록들

2020

다큐멘터리 ‘1포 10kg 100개의 생애’

2019

영상 ‘불투명한 막–클로즈업, 간병, 신체’

영상 ‘투명한 막–어안 렌즈, 일출, 부재’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2018

다큐멘터리 ‘건설의 벽’

연극 ‘취업의 카프카’ 


※ 인터뷰는 본지 김도연 기자가 참여연대의 월간 매거진 ‘참여사회’ 인터뷰어로 참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참여사회 2021년 6월호(통권 286호)에 실렸습니다. 인터뷰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인용 시 ‘참여사회’ 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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