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내부에서의 성폭력 사건 및 은폐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피해자 보호에 둔감한 관계기관 속성이 도마에 올랐다. 공익을 명목으로 피해자 보호라는 최우선 원칙이 흐려져선 안 된다는 당부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3일 “최근 모 국회의원을 통해 배부된 군대 내 성폭력 자료에 피해자의 상세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자료를 청구하는 측과 제출하는 측 모두 문제”라며 “성폭력 관련 국회 감사와 언론보도에서 상세한 피해자 정보가 요구되고, 확보되고, 유포되지 않도록 촉구한다”고 밝혔다.

논란의 자료는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실이 2일 기자들에게 배포한 ‘공군 부사관 성추행·사망 사건 군 보고 결과’였다. 해당 자료에는 가해자의 성추행 행위,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소와 방식 등이 상세하게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유족인 배우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도 포함됐다.

이채익 의원은 4일 사과문을 내어 “공군에서 별도의 비공개 요청은 없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4일 오전 담당 비서관이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유가족에게 직접 사죄했다면서 “재발방지를 위해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비판은 공군에도 돌아갔다. 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조차 피해자 보호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이슈가 되면 국회는 기준없이 마구잡이로 자료청구를 하고, 해당 기관이 피해자 보호 원칙 없이 무분별하게 자료를 제출한다. 해당 조직에 사건을 신고했던 현재와 과거의 피해자들이 불안을 느낀다”며 “성폭력 관련 국회 감사와 언론보도에서 상세한 피해자 정보가 요구되고, 확보되고, 유포되지 않도록 촉구한다”고 했다.

▲충남지역 5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공군 성추행 및 피해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고인을 애도하는 뜻으로 정문에 국화를 꽂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지역 50여 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공군 성추행 및 피해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고인을 애도하는 뜻으로 정문에 국화를 꽂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상담소가 국회, 군 당국을 비롯한 관계기관, 언론에 촉구한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국회는 자료청구할 때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는 정보는 요청하지 마십시오. 피해자에 대한 구체정보는 기재하지 말 것을 반드시 공지해야 합니다.
2. 자료요청을 받는 기관의 경우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는 정보, 상세한 사건 내용 등을 무분별하게 제출하지 마십시오.
3. 자료를 확보한 경우 피해자가 특정되는 정보가 있다면 최초 확인자가 반드시 해당 부분은 폐기해야 합니다.
4. 자료를 제공받거나 입수한 언론의 경우 피해자가 조직 내외부에서 특정될 수 있는 형태로 보도되지 않도록 반드시 검수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의원의 즉각적인 사과가 이뤄졌고, 이를 기사화한 언론은 없었다. 일련의 성폭력 사건과 2차가해에 대한 비판들이 문제적 보도를 지양하는 분위기로 이뤄진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군대 내 성폭력이라는 본질에 앞서 피해자에게 관심이 집중될 여지가 곳곳에 남아있다. 일부 언론매체에서 피해자의 성씨와 직위를 붙인 사건명을 사용한 이래 구글·네이버·다음 등 포털에선 ‘공군 성폭력’ 관련 키워드에 피해자의 얼굴, 사진, 신상, SNS를 찾는 연관검색어가 붙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가 부실한 사진에 외모평가가 따라붙는 경우도 있다. 과도하고 자극적인 보도가 등장하는 순간 폭증할 수 있는 왜곡된 시선들이다.

성폭력상담소의 지적처럼 “피해자가 특정되면 피해자의 과거 사진, 사진과 무관한 과거 이력, 피해자와 관련한 무관한 일화 등이 무분별하게 인터넷 게시판, 댓글, 언론, 유튜브, ‘가짜뉴스’로” 이어질 우려가 있고, “이를 일일이 바로 잡고 삭제하는 일에 어떤 정부 대책도 전무”한 상황이다. 향후 이어질 국회 차원의 실태 파악, 국방부의 합동수사단 및 관련 부대 감사 등 과정에서 ‘공익’을 내세운 불필요한 서사 보도는 배척되어야 한다.

이미 수많은 성폭력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들이 존재한다. 언론은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라도 그 공개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 자기 책임하에 보도(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하고, 성폭력 범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 소재로 다루는 것을 지양(성폭력 사건 보도수첩)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라고 해서 피해자나 가족의 사생활이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하며,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 감정만을 조성해 처벌 일변도의 단기적 대책에 함몰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성범죄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사항을 적극 보도(미디어를 위한 젠더 균형 가이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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