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지붕 금 생겨 비오면 새는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어떻게
“지붕 금 생겨 비오면 새는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어떻게
KBS·MBC·EBS 이사진 교체 앞두고 ‘시민참여’ 강조
“정당에서 추천한 자를 이사 결격사유로 추가하자”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절차에 ‘시민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양당체제와 함께 굳어진 정치권 개입을 막고 공영방송다운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취지다.

그간 한국의 공영방송은 정권교체와 흐름을 같이 해왔다. 최선욱 KBS공영미디어연구소 박사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21년까지 10명의 대통령이 나오는 동안 KBS 사장은 17명, 그중에서 7명은 대통령이 바뀌고 8개월 안에 교체됐다. 종종 KBS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영국의 BBC, NHK는 사정이 다르다. 영국 총리가 9번 교체되는 동안 BBC 사장교체는 0번, 일본 총리가 24번 교체되는 동안 NHK 회장 교체는 임기 종료로 인한 2번뿐이다.

현행법상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이사회가 추천한 사장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제는 양당체제 축소판으로 굳어진 관행이다. 방통위원은 여권 추천 3명과 야권 추천 2명, 이사진은 여7·야4 비율이 유지돼왔다. 집권여당이 과반, 제1야당이 나머지를 추천하는 구조가 ‘정치적 후견주의’로 이어졌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MBC 대주주·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EBS 이사회와 사장 선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배구조를 깬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 방통위도 약속한 사안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긴 지금까지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제 8월부터 MBC(방송문화진흥회), KBS, EBS 이사진이 교체되고, 12월이면 KBS 사장 임기도 끝난다. 내년 3월이면 차기 대통령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나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권이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지금을 놓쳐선 안 된다는 다급함이 전해지는 이유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EBS, KBS MBC 사옥의 로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EBS, KBS MBC 사옥의 로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영방송 구조 혁신과 공적책무 강화’를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이루는 거버넌스에 ‘시민참여’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더불어민주당 정필모·김승원·우상호·유정주·윤영찬·한준호 의원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지금까지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은 정부, 정치권의 일방적인 선임이었다”며 “학계, 시민단체, 지역민 등 다양한 단위의 국민 참여를 고려한 이사 및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법률이 여러 건 발의돼있다. 정필모 민주당 의원은 KBS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및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두는 방안,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은 KBS 이사회 구성에 KBS구성원·학계·시민단체 추천인이 2분의1이 되도록 추가하고 사장추천위원회를 두는 방안,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이사회 추천 시 관행적으로 유지돼온 여야 몫을 아예 7대6으로 법 조항에 명시하고, 사장 후보는 이사장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동준 소장은 “공영방송 3사의 이사와 사장 선임에 있어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추천위원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정필모 의원의 안이 가장 (시민참여에) 부합하는 안”이라 평가했다. 다만 “이사후보추천위를 방통위가 위촉하는 내용은 현재 방통위원의 구성 방식을 고려하면, 공정성, 균형성, 중립성 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의 안은 지역, 연령, 성별 고려와 전문성만을 명시하고 있으며, 결격사유(방송사 임직원, 미성년 등)가 명시되어 있으나 정당원 배제 등 위원의 결격사유 보강 등을 통해 독립성을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한국 특유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야당의 견제와 비판적인 시민 의견으로부터 대통령을 지키려는 정당과 강성 지지층의 활동은 공영방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공영방송 이사 구성에서 국민참여는 (정치체제 중심의) 대표성이 아닌 ‘동일성’, 즉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들과 닮은 이들을 이사로 보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동원 실장은 △공영방송 사장 선출 시 시민평가단을 구성해 일정 비율 반영 △공영방송 관련법에 ‘정당에서 추천한 자’를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공영방송 구조 혁신과 공적책무 강화 방안' 토론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장마철을 앞두고 있는데 금이 생겨서 비가 샐 수 있는 지붕”에 비유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4년을 비유하자면 일종의 ‘건기’, 비가 안 오니까 비가 새는 지붕을 놔둬도 사람들 삶에 크게 영향 주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계속 비가 안 오기를 기도할 수는 없다”며 “비가 오면 바로 우리가 왜 지붕을 고치지 않았지 맞닥뜨릴 것”이라 밝혔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필모 의원은 “다음 대선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방통위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며 “미디어위원회든 통합기구로 만들고 위원 선임 과정도 지금보다도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서 나머지 공영방송 이사 사장 추천도 정치적 독립성이 뿌리내리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축사를 통해 공영방송의 중립성·독립성 강화를 약속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장인 이원욱 의원은 “국회 차원에서 입법을 통해 공영방송의 변화와 정치적 독립성 구현의 현실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개혁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앞으로 방송 분야의 국회 상임위 위원장으로서 이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공영방송의 중립성 실현을 이루기 위한 개혁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