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등장하는 기사의 특징 중 하나는 ‘열공’이 키워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구축한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3월9일부터 6월9일까지 3개월간 ‘윤석열’과 ‘열공’이 동시에 등장하는 기사는 49건이었다. 이 가운데 기사 제목에 ‘열공’이 등장하는 경우는 16건이었다. 같은 기간 ‘이재명’과 ‘열공’, ‘이낙연’과 ‘열공’이 동시에 등장한 기사는 0건이었다. 빅카인즈에 포함되지 않은 매체를 더하면 ‘윤석열’ ‘열공’으로 포털에서 검색되는 기사는 훨씬 많다. 

빅카인즈가 잡아내지 못한 첫 번째 ‘열공’ 기사는 TV조선으로 보인다. TV조선은 지난 3월20일 ‘[단독] 윤석열, 몰려드는 보고자료에 집콕·열공…화두는 사회통합’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열공’이 제목에 들어간 첫 사례다. 이후 조선일보가 4월10일 ‘윤석열, 자택서 경제·안보 열공중’이란 기사에서 “윤 전 총장은 자택에서 대선 출마에 대비한 국정 학습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열공’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윤석열, 형광펜으로 밑줄 치며 읽더라”…‘대권 열공’, 등판만 남았다 (헤럴드경제 4/13) △대권 등판 몸푸는 尹…청년·노동문제 ‘열공’ (파이낸셜뉴스 4/14) △책 읽고 전문가 만나고…윤석열 국가균형발전정책 ‘열공’ (충청투데이 4/26)과 같은 기사를 보면 윤 전 총장은 형광펜을 들고 청년·노동·균형발전까지 두루 학습 중인 셈이다. 

그리고 ‘열공’ 분야는 다양해진다. △[단독]윤석열은 열공중…“北순항 미사일에 핵 실을 수 있나” (중앙일보 4/28) △윤석열, 반려견 산책도 끊고…경제·외교 과외 ‘열공’ (한국경제 5/2)과 같은 기사를 통해 윤 전 총장은 반려견 산책이란 소중한 일상도 포기한 채 국방·경제·외교로 학습 분야를 넓혀나간다. △윤석열 ‘文정부 실패정책’만 콕집어 열공 (문화일보 5/11)처럼 윤 전 총장을 현 정부를 극복할 대안으로 묘사하는 제목도 눈에 띄었다. 

▲ 6월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 6월9일 서울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윤석열'과 '열공'이 함께 들어간 기사들 가운데 일부. ⓒ안혜나 기자
▲'윤석열'과 '열공'이 함께 들어간 기사들 가운데 일부. 디자인=안혜나 기자

그리고 지난 19일 윤 전 총장이 서울대 반도체연구소를 찾자 ‘열공’ 기사가 쏟아졌다. △윤석열, 이번엔 ‘반도체’ 열공… 서울대연구소서 “이게 웨이퍼?” (서울경제 5월19일) △‘열공’ 윤석열, 이번엔 반도체…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 견학 (아주경제 5/19) △윤석열 “이게 웨이퍼인가”… 이번엔 반도체 열공 행보 (매일경제 5월19일) △‘물밑 대선 수업’ 윤석열, 서울대 반도체연구소 찾아 ‘열공’ (한겨레 5월19일) △윤석열, 반도체 열공 (조선일보 5월20일) △‘물밑 대선수업’ 윤석열, 열공 행보… 이번엔 반도체연구소 찾았다 (디지털타임스 5월20일) 등이다. 마치 모든 행보를 ‘열공’으로 만들어줄 태세다. 

왜 이렇게 ‘열공’ 기사가 많을까. 한겨레는 5월20일자 기사(윤석열은 ‘열공 중’… 반도체·외교·노동 등 취약 과목 ‘속성 과외’)에서 “윤 전 총장이 연일 ‘열공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복지·노동 및 외교 안보, 반도체 등 전문가들을 1대1로 만나 해당 분야의 핵심 이슈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는 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방식이다. 본인이 검찰 이외 경력이 없다는 이미지를 완화하면서 전문가를 만나는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행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그는 언론을 통해 ‘부족한 분야를 채우는 노력파 또는 성실함’ 같은 이미지를 확보했다. 

‘열공’은 언론이 전언 형식의 미담 기사를 통해 빚어낸 윤석열 전 총장의 이미지 중 하나다. 앞서 일부 언론은 지난 1월 윤 전 총장이 순댓국을 먹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도하며 ‘소탈함’을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윤 전 총장이 자택 근처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모습을 단독 보도하며 결과적으로 ‘서민적’ 이미지를 띄웠다. 이처럼 언론이 한 대선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에 나서는 모습을 두고 “언론이 킹메이커로 나서겠다는 오래된 악습 중 하나”(김준일 뉴스톱 대표)라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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