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부회장이 자기 SNS로 거하게 일베 인증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음식 사진마다 연일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내용을 썼다. 여러 네티즌이 세월호 유족 조롱처럼 보일 수 있다며 문제를 지적했지만 관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sorry and thank you’, ‘○○○○. ○○○.’ 같은 문구로 노골적으로 빈정대더니. 끝끝내 자기 반려견 추모글까지 그 조롱을 끌고 왔다. 네티즌이 뭐라건, 오너 리스크가 어쨌건, 언론에서 어떻게 떠들건 간에 내 할 말은 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구태여 지면으로 그 자의식의 비대함을 논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의 SNS 댓글란을 뒤지다 보니 특이한 행태가 보였다. 그의 행위가 ‘세월호 조롱’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동조하거나, 심지어 결사 옹호하는 모습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재용의 뇌물죄 형량이 낮다고 비토하면 ‘나라 망한다’, ‘삼성 외국에 뺏긴다’라는 댓글을 다는 이들. LG 청소노동자들이 대량해고 될 위기 때 ‘정당한 계약해지’, ‘불법 점거’라며 반론하는 이들. 이제껏 그런 댓글 다는 이들을 마냥 기업에서 푼 알바라고 뭉뚱그려 생각했다. 도덕이 먼저여야 할 문제에 돈 문제를 끼워 넣는 이들이 정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지극히 이성적이었고, 자신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럼 대체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악한 강자의 심리에 빙의하기

이런 심리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사이트가 바로 일베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센 존재가 약한 존재를 후려칠 때 환호한다. 표창원 전 의원 역시 일베를 분석하며 ‘스스로가 꿈꾸는 ‘강자’와 동일시. 하지만 공격욕과 폭력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악한 강자’만 추종.’이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한국엔 이 ‘악한 강자 빙의 현상’을 줄곧 연구한 분이 있다. 강수돌 前 고려대 교수다. 그가 ‘강자 동일시’라고 명명한 이 현상의 핵심 중 하나는 ‘승자에 대한 부러움과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일베 혹은 그와 비슷한 심리의 근간엔 인간을 이해하는 속성이 성공과 실패만 있을 뿐이다.

저들이 추종하는 세계. 이른바 ‘쩐의 세계’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최우선 요인은 단연 돈의 많고 적음이다. 학벌, 직장, 외모 등은 2등 과시제에 불과하다. 여기서 인스타그램은 특유의 시스템과 문화가 섞여 재산 격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돈의 많고 적음을 사진으로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음식, 외제차, 명품 시계, 고가 여행지. 사진 속에 담긴 수많은 부의 기호 앞에, 자연스레 ‘많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망각한 채 선망만이 남는다. 요즘 10대 20대들 일부는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에 자기 사는 아파트 이름을 써넣는다고 한다. 아예 돈 많음을 계급장처럼 달고 다니는 꼴이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3월3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 창단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3월3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단 SSG 랜더스 창단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랑할 껀덕지라도 있으면 그나마 숨통이라도 트인다. 문제는 과시제가 없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점. ‘쩐의 세계’에선 그 시점에서 이미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이때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한 전략 중 하나가 악한 강자의 심리에 빙의하는 것이다. 앞잡이가 되어 폭군의 생각과 논리를 빌리면 어려운 생각할 필요 없이 손쉽게 약자를 깔아뭉갤 수 있다. 반론이 들어와도 실패자들의 열폭이라며 비웃어주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이런 악순환 굴레는 정용진 인스타 댓글창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정말로 동일시해야 할 대상은

문제는 이 앞잡이 노릇이 실리로 이어지질 않는다는 점이다. 제 암만 대기업 오너 두둔해도 실제 삶이 나아질 일은 없다.

그럴 바에 아예 쩐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게 낫지 않을까? 애초에 정용진이란 사람이 왜 대한민국 재계 서열 9위 대기업의 부회장인가? 오로지 삼성가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돈방석에 앉는 행운을 누리고선, 세상 밖으로 보이는 행태는 오만하기 그지없다. 2018년 3월은 이마트 노동자들에게 너무도 잔혹한 날이었다. 28일엔 21세 노동자가 무빙워크 수리 중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31일에는 이마트 구로점 계산원으로 근무하던 48세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으나 아무 조치도 못 받고 사망했다. 이 마당에 정용진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이마트는 추모하려고 모인 시민들을 물리력으로 막았다.

진짜 동일시해야 할 사람은 누굴까. 자기 회사에서 죽은 사람보다 위장 다 건너간 음식한테 더 미안한 분일까? 아니면 우리 삶에서 수없이 마주치고, 일상에 언제나 녹아있는 노동자들일까? 감히 훈계할 마음은 없다. 다만 생각은 해보자는 소리다. 대한민국은 재벌이 될 가능성보다 산재를 당할 확률이 훨씬 높은 나라다. 만약 내가 피해자나 혹은 유가족이 됐을 때, 악한 강자들에게 빙의한 이들이 손가락질한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일베가 피자 치킨 퍼먹던 시절이 10년도 되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 사람들끼리 냉소할 바에, 같이 손잡고 목 뻣뻣한 악한 강자들이 꺼드럭대지 못 하는 세상을 만드는 쪽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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