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상파 방송사 3곳의 근로감독을 실시 중인 가운데, 방송사들이 근로감독 대상 명단을 노동부에 제출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의 노동자성이 드러날 증거를 없애는 등의 방해가 속출한다는 고발이 나왔다. 

언론노조와 미디어비정규공동사업단은 21일 정오께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감독이 시작된지 50여 일이 지났지만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며 “방송 3사는 70년 만에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한 전면 근로감독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비정규직 실태를 숨기는데 급급하는 등 비협조적 행태를 보인다”고 밝혔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등은 지난 4월27일 근로감독 시작 때부터 근로감독 방해 사례 제보를 받아왔다. 김한별 방송작가지부장은 이날 “KBS는 근로감독 대상인 방송작가들 명단과 연락처를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노조가 문제제기를 하고 한참 시일을 끈 후인 최근에야 개인정보 제공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며 “작가 개인들에게 ‘응하고 싶은 작가들은 응하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의도를 떠나, 사실상 전수조사 취지를 몰각시키는 해태 행위”라고 밝혔다. 

KBS는 이와 관련 “프리랜서는 KBS와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 위임의 계약을 맺고 있는 관계이기에 KBS는 이들의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인 본인들의 동의 없이 제공해도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이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했다”며 “5월7일 근로감독관과 이 부분을 협의했고,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법적 해석을 명확하게 내려주기를 기대하며 5월10일 공식 질의했다. 그러나 약 3주 후인 5월 31일 도착한 회신 결과만으로 프리랜서의 개인정보를 제출해도 된다고 판단하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자료 제출이 지연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 KBS는 근로감독 업무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자료인 명단 자료를 먼저 제공했다”며 “민감한 개인정보라 할 수 있는 기타 자료의 제공을 위해서는 프리랜서 종사자에게 개별적으로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서를 받아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6월3일부터 온라인 동의서 접수를 개시했고 동의서 제출을 독려하는 공지 문자를 여러 차례 발송했으며 지금은 동의서 접수가 확인되는 대로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 등이 6월2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상파 3사는 근로감독에 제대로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노조 등이 6월2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상파 3사는 근로감독에 제대로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KBS가 근로감독 대상 작가들에게 보낸 문자. 노동부의 명단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개별 작가들에게 ‘응할 사람은 직접 연락해 조사에 응하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전수 조사 취지를 무색케 한다”고 비판했다.
▲ KBS가 근로감독 대상 작가들에게 보낸 문자. 노동부의 명단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개별 작가들에게 ‘응할 사람은 직접 연락해 조사에 응하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전수 조사 취지를 무색케 한다”고 비판했다.

자료 폐기 등 각종 증거 은폐 행위도 발견됐다. 언론노조 등은 이날 “일부 방송사는 조사대상인 방송작가에게 출·퇴근 시간과 업무지시를 받은 내용을 노동부에 말하지 말 것을 종용했고, 팀 내 비상 연락망과 제작일정표 등의 자료를 폐기하고 새로운 제작일정표를 만든 사례도 고발됐다”고 전했다. 울산KBS는 작가들이 업무를 보던 책상을 사무실에서 뺀 부당행위가 방송작가지부에 고발됐다. 

MBC 경우 노동부의 비정규직 면담 조사를 두고 장소 등을 회사가 지정해 조사를 지연시킨 사례도 있었다. 김한별 지부장은 “자연히 면담 일정은 지연되고 면담 당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프리랜서로 불안한 위치에 놓인 작가들을 두렵게하고 입 다물게 만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또 “방송사에 근거 없는 억측이 떠돌고 있다”며 “‘작가들이 노동자가 되면 방송사에서 작가들을 뽑겠느냐’ ‘결국 니들 일자리 잃는 거다’ ‘근로자성 인정받으면 최대 2년(기간제)까지만 일할 수 있고 다시는 방송사에 돌아올 수 없다’ 등의 악의적인 소문이 방송사 내에 퍼지고 있다”고 규탄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상파 3사 경영진에 촉구한다. (비정규직 남용 실태는) 손바닥으로 가려질 하늘이 아니”라며 “문제를 직시하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근로감독을 방해·회피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부를 향해선 “힘있는 권력이라고, 목소리가 큰 방송사라고 대충 근로감독하는 시늉을 하지 말라”며 “정확한 결과를 내놓을 때만이 우리 노동자들이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와 미디어비정규직공동사업단 등이 6월2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상파 3사는 근로감독에 제대로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언론노조와 미디어비정규직공동사업단 등이 6월2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상파 3사는 근로감독에 제대로 협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진보정당, 시민사회 단체들은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에 대응할 공동 기구를 꾸렸다. 가칭 ‘방송작가친구들’이라 불리는 미디어비정규직공동사업단이다. 언론노조, 정의당,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등 여러 단체가 참여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방송사들의 방해·지연 시도에 “도리어 방송사 내 노동권 침해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비정규직들의 노동자성이 인정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니냐”며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고, 방송사 내에서 을, 병도 되지 못하는 작가들의 노동조건 개선 위해 노력하겠다. 국회에서도 이번 근로감독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언론사는 진실을 밝혀야 한단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다. 그런데 내부 진실을 밝히는데 어찌 이리 힘이 드느냐. 그런 자세와 태도로 지금까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며 “구조적 문제가 단 한 방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해결은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가능하다. 드러내야 대화가 가능하고 희망도 보인다.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27일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 세 곳의 근로감독에 돌입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시사·교양·보도 분야를 중심으로 방송작가를 포함한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 환경 실태를 조사한다. KBS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MBC는 서울서부지청, SBS는 서울남부지청이 각각 근로감독을 실시한다.

KBS는 “사내구성원에게 근로감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근로감독을 방해하는 일탈 행위가 발견될 경우 사규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며 “또 향후 방송작가의 인력운영 계획은 근로감독 결과에 따라 검토할 예정이므로 기자회견에서 언급된 ‘괴담’은 현재 어떠한 근거도 없는 주장이다. KBS는 이번 근로감독에 대해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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