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고통. 지금 그 말을 쓰면 낡은 상투어로 조롱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쓴다. 꼭꼭 눌러 쓴다. 이른바 ‘진보언론’까지 모르쇠를 놓고 있기에 더 그렇다.

며칠 전 홈플러스 매장의 여성노동인 50명이 집단 삭발했다. 대주주 MBK의 본사로 찾아가 ‘폐점 매각’ 중단,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하며 투기자본 규제법 제정을 촉구했다. 투둑투둑 떨어지는 머리칼 아래 눈물 젖은 손은 ‘투기꾼 MBK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팻말을 꽉 쥐었다. 민주노총은 집단 삭발을 “멀쩡한 기업을 팔아먹는 먹튀자본, 투기자본을 막아내는 싸움”으로 규정했다. MBK는 2015년에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5조원을 대출받아 인수했다. 자기 자금은 2조원을 조금 웃돌았다. 노동조합은 사모펀드 MBK가 끊임없는 자산 매각으로 현금 3조5000억원을 빼가며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을 저질렀다고 고발한다. 직영·간접 고용까지 9000명이 줄었고 몇 년째 신규 채용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먹튀 매각’ 조짐에 2만여 노동인들이 불안에 떨며 노동조건 악화를 애면글면 참아낼 때, 박태준의 사위인 MBK회장 김병주의 재산은 돈벼락처럼 불어났다. 노조가 파업을 벌이며 투기자본 규제법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보도된 것은 홈플러스 문화센터가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 계층”을 위해 ‘디지털격차 해소’에 나선다는 ‘미담’이다.

▲ 6월16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폐점매각 중단, 고용안정 대책, 투기자본 규제를 촉구하는 홈플러스 여성노동자 2차 집단삭발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 6월16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폐점매각 중단, 고용안정 대책, 투기자본 규제를 촉구하는 홈플러스 여성노동자 2차 집단삭발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이 눈 돌릴 곳엔 등 돌리고 기업 홍보에 무람없이 눈 맞추는 행태는 같은 시기 벌어진 한국가스공사의 비정규직 몸짓 앞에서도 나타난다.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인들은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규직을 요구하며 4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도무지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가스공사 평택기지부터 청와대까지 배관망을 따라 ‘300리 도보행진’에 나섰다.

언론은 보도했을까. 아니다. 생먹었다. 지면과 화면에 담긴 것은 도보행진 다음날 가스공사가 얍삽하게 낸 보도자료였다. 가스공사가 대구의 호텔에서 프로농구연맹과 ‘프로 농구단 인수 협약’을 맺는다는 내용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언론은 마치 가스공사 경비‧미화 노동인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를 원한다는 듯이 언구럭 부렸다. 명백한 가짜 뉴스다. 노조는 그걸 요구한 적이 없다. 다만 용역회사가 중간에서 챙겨가는 돈을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에 써달라고 호소할 뿐이다. 직접 고용할 때 임금 또한 정규직 임금 체계가 아닌 담당 직무에 따른 임금테이블을 두자고 먼저 제안했다. 문제는 언론의 가짜뉴스에 홀린 네티즌, 특히 청년들이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의 맹점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이라는 대통령 정책을 이행하지 않는 사장 채희봉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출신이다. 딴은 지난 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무기계약직 노동인들도 농성에 나섰다가 경찰에 해산 당했다.

언론이 민중의 고통을 외면해왔기에 지금까지 숱한 분신과 투신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성 노동인들의 집단삭발, 비정규직의 300리 도보행진은 언론이 먹튀 자본과 비정규직 전환을 의제로 설정해주기를, 최소한 단신이라도 보도해주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도통 먹통이다. 무조건 노조 편을 들자는 뜻이 아니다. 노사 양쪽의 주장을 모두 담되 사회적 약자의 처지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보도가 좋은 저널리즘이다.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앞장서서 날마다 이준석 기사를 돋을새김하거나 조금이라도 이재명을 흠집 내려 윤희숙의 꼬투리잡기마저 줄줄 ‘중계방송’ 할 때, 민중의 고통은 무장 커져가고 있다. 진보언론마저 현장을 소홀히 한다면 더 그렇다. 눈 흘기더라도 꾹꾹 눌러 쓴다. 언론의 먹통, 민중의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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