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이 부족하다. 유럽 축구 국가대항전인 ‘유로2020’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너무 재미있고 궁금해서 밤잠을 설쳐가며 남의 나라 경기를 보고 있다. 그런 스포츠팬의 입장에서 한 가지 미스터리가 있다. 영국의 ‘맨체스터’라는 도시 말이다. 인구 55만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안양시와 비슷한 공업도시이다. 수원이나 용인, 성남보다 적다. 그런데 이 도시에 세계적인 축구 클럽이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우리 박지성 선수가 몸담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또 하나는 중동의 갑부 만수르가 대주주인 ‘맨체스터 시티’이다.

두 팀 모두 5만석 이상의 경기장을 갖고 있는데 경기를 할 때마다 꽉꽉 찬다.(코로나 상황 예외) 맨유의 경기장이 7만6천석이고 맨시티 경기장이 5만5천석이니 합하면 13만명이 넘는다. 물론 모든 관객이 맨체스터 주민은 아니겠지만 도시 인구의 1/5이 매주 축구 경기장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이처럼 축구에 미친 도시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분은 축구의 역사를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133년 전인 1888년에 세계 최초의 축구 리그를 출범시킬 만큼 오래됐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부터 10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안양이나 수원도 맨체스터처럼 될까?

내가 찾은 해답은 ‘스포츠 클럽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하면 대부분 공 잘 차는 엘리트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부모의 지독한 헌신 등 ‘남의 집’ 이야기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소위 공 좀 찬다는 나라들에서 ‘스포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집 아이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이다.

영국 전역에 15만개가 넘는 스포츠 클럽이 있다. 클럽 한 개 당 평균 114명의 성인 남녀가 등록돼 있다고 하니 1천7백만명, 영국 인구의 1/4 가량이 다양한 스포츠 클럽에 가입해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 그것도 월 1만원 안팎의 저렴한 비용으로. 독일도 마찬가지다. 세 명만 모여도 스포츠 클럽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동네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독일 정부는 2차 대전 이후 분열된 국민을 화합시키고 여성과 노인, 장애인 등 독일 국민이면 누구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공공 체육시설을 늘리는 등 복지차원에서 지원해왔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즐기는 스포츠가 되다보니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 같은 엘리트 체육도 두터운 팬층과 선수층을 확보하며 발전했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어 우리나라 팬에게도 익숙한 독일의 스트라이커 ‘미로슬라프 클로제’ 선수도 실은 청소년 시절 목공 일을 하면서 지역의 7부 리그에서 뛰던 스포츠 클럽 출신이다.

▲ 축구. 사진=gettyimagesbank
▲ 축구. 사진=gettyimagesbank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클럽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 스포츠 명문 학교를 가거나 시장 군수에게 잘 보여야만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던 엘리트 체육의 한계를 벗어나 지역민 스스로 스포츠 클럽을 만들어 등록 후 공모를 통과하면 누구나 정부의 다양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밑그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형태의 자생적인 스포츠 클럽들이 운영되고 있다.

동네마다 조기 축구회 없는 곳이 없고 배드민턴 클럽에 수영 동호회들이 있다. 우리 아파트에는 족구 클럽이 세다.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 등 학교 시설을 운영하는 게 불편했는데 스포츠클럽법에는 학교 시설에 대한 사용지원도 명시돼있다. 학생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요즘 학교 체육 만으로는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계속하기 힘들고 지역 스포츠 클럽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현실적인 요구도 있다. 영유아 체육 활동은 사교육의 영역에서 활성화돼왔는데 이를 공공의 영역에서 받아안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인성교육이 될 것이다.

이런 전환의 시기에 지역 언론, 특히 지역 방송이 우리 동네 스포츠 클럽 활성화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보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는 프로든 아마추어든 우리 지역의 스포츠 경기 결과나 화제 거리를 방송아이템으로 적극 소개하는 것이고, 지자체와의 협업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클럽 대항전을 프로스포츠급으로 중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상도동 말디니, 신길동 메시가 활약하고 있다. 안양의 한 조기축구회는 경기장면을 드론으로 찍어올렸는데 영상도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미 산업화된 옐리트 스포츠에는 자본력이 취약한 지역방송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지역에는 우리 동네 손흥민이나 우리 지역 김연아들이 많다. 이제 그들과 함께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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