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이었던 이동훈 대변인이 지난 20일 “일신상 이유”로 사퇴했다. 지난 21일 또 다른 ‘입’인 이상록 대변인은 윤 전 총장 측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영입사실과 사무실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소식만 내놨다. 대변인만 두명 있던 ‘윤석열 캠프’에 대변인 1명이 나가고 ‘예산전문가’로 불리는 인사 1명이 들어왔다. 

세간의 호기심은 더 커지고 있다. 이동훈 대변인이 말했던 오는 27일 정치선언이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윤 전 총장 본인의 생각, 대변인 사퇴로 촉발된 리더십 문제와 캠프 내부 분위기, 주말새 시끄러웠던 X파일 등 여러 의혹에 대한 입장, 궁금한 게 한두개가 아니다. 물론 측근들 입을 통해 일부 입장이 나왔지만 기자들과 국민들은 윤 전 총장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한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잠행이 길어지고, 출마를 공식 선언도 하기 전에 악재가 터지면서 윤 전 총장에 대한 국민의힘 주자들의 비판은 물론 언론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커지고 있다. 윤 전 총장이 거대 양당에 속하지 않는 제3지대에서 활동하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야권의 최종 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흔들린 시점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예비경선에서 이준석 당시 후보가 1위로 통과하면서다. 이는 지난달 28일인데 나경원 후보를 꺾으며 ‘이준석 돌풍’의 실체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 

이는 당분간 제3지대에 머무르려던 윤 전 총장에게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제3지대의 축소를 뜻한다. 여권에는 실망했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못했던 일부 유권자들에게 이준석 돌풍은 국민의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 계기다. 이준석 후보가 아깝게 2등을 하고 나경원 후보가 당대표가 되는 그림, 변화의 열망은 확인되지만 대표까지 교체하진 못하면 자연스레 윤 전 총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3일뒤 윤 전 총장은 언론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만난 사실을 공개했다. 이후 윤희숙·정진석 의원 등을 만난 사실을 더 공개했다. 시간순으로 보면 윤 전 총장은 잠행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났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이준석 돌풍’을 확인하면서 공개한 것이다. 이는 윤 전 총장의 다급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공개는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을 말한다.

다음날인 6월1일 조선일보는 1면에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제목으로 뽑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시점부터 윤 전 총장 관련 기사에 ‘피로감’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윤 전 총장의 패착이다. 조기입당이든 나중에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든 어떤 전략을 세웠다면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갈지(之)자 행보는 가장 신뢰감이 떨어지는 선택지다. 

조기입당은 윤 전 총장 운신의 폭을 좁히는 행동이다. 본격 당내 경선 경쟁자가 된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 이유다. 최근 일부 언론에선 국민의힘 주자들의 윤 전 총장 공격을 ‘반윤연대’라고 부르고 있다. ‘윤석열 X파일’이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활동하던 평론가에게 그 존재만 확인된 채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방식의 정치적 칼로 쓰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훈 대변인의 사퇴(사실상 경질) 배경으로 꼽히는 입당 공식화 발언은 이 대변인의 실언(혹은 사견)으로 보이지만 윤 전 총장이 권 의원과 만남 사진을 공개한 것이 정치적으론 더 주목할 변곡점이다. 여전히 다수 정치부기자들이 윤 전 총장에 대한 답답함을 기사에 녹여내는 가운데 최근 윤 전 총장 의중을 잘 담아낸 매체는 조선일보다. 

윤석열 X파일은 윤 전 총장에게 악재다. 장성철 공간과논쟁센터 소장은 X파일의 존재를 알리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선 자신이 감옥에 갈 수 있으니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공개도 못하는 X파일의 존재를 폭로하면 윤 전 총장은 그 내용을 알더라도 공개적으로 반박할 수 없다. 분명 불편한 존재다. 

▲ 21일자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 21일자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를 정치공방으로 처리했다. 지난 21일 관련 기사 제목을 ‘野 “여당, 윤석열 X파일 공개하라”…與 “파일 있다고 한 적 없다”’에서 X파일의 작성주체를 여당으로 규정했다. 장 소장이 이날 오후 각종 인터뷰에서 말한 X파일의 출처는 ‘여야할 것 없이 정보를 유통하는 분’이었고, 정치권에선 대체로 야권진영의 다른 캠프를 작성주체로 추정한다. 

조선일보는 22일 ‘X파일’ 논란을 두고 “‘윤 전 총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음습한 선거공작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발언을 인용보도했다. 21일 보도와 같은 맥락이다. 

자사 출신인 이동훈 대변인 사퇴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사퇴 소식만 전했다. 대다수 매체에선 이동훈 대변인이 지난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입당을 공식화했다가 번복한 뒤 윤 전 총장이 직접 다른 매체에 조기입당을 부인하는 인터뷰를 한 일 등을 사퇴의 배경으로 꼽는다. 조선일보가 윤 전 총장에게 불리한 소식을 축소한 것이다. 

▲ 22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 22일 조선일보 정치면 기사

 

윤 전 총장의 이석준 전 실장 영입 소식을 전하며 조선일보는 22일 “윤석열, 조기입당 대신 중도확장 나선다”로 제목을 뽑았다. 캠프가 갖춰지고 표 확장에 나서는 장면으로 초점을 옮기는 기사다. 부제는 “탈문 진보도 아울러 외연키우기” “통합 내걸고 정권교체 나설 것” 등이다. 이 전 실장 영입을 “윤 전 총장이 당분간 입당 문제에 거리를 두며 정책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오피니언 면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조선일보 22일 김대중 칼럼을 보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그 사람들(윤석열 등 대권주자)을 ‘이리 오라 저리 가라’ ‘버스 떠난다’는 말로 자극하지 말고 잘 대접해서 모두 한배에 타게 하고 그들을 묶어 ‘드림팀’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거론되는 사람을 서로 적으로 만들지 않고 대통령·총리·장관 등 ‘섀도 캐비닛’으로 엮어 국민 앞에 제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 2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국민의힘 주자들의 ‘윤석열 때리기’의 분열이 아닌 원팀을 강조하는 그림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21일 류근일 칼럼 “이준석의 ‘윤석열 가두리 양식’ 작전”에선 이준석 대표에 대한 날선 비판이 있었다. “국민의힘엔 여론 지지율 1~3%를 넘는 감조차 없다는 사실”이라며 “이준석 대표가 윤 전 총장에게 ‘버스 놓치지 말라’ 어쩌고, 그를 가두리에 넣고 바보 만들 처지가 아니란 말”이라고 했다. 이어 “당분간 (국민의힘) 밖에서 정권 교체 대형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지를 설파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1일 조선일보는 윤석열 당시 총장에게 ‘중대 결단’을 요구했고, 윤 총장은 2일 이례적으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4일 총장직을 사퇴했다. 조선일보가 윤 전 총장에게 4월 재보선 개입을 요청하자 그는 선거 1주일전 ‘성범죄로 인한 선거’라고 발언했다. 아직은 국민의힘 조기입당과 선을 긋고 제3지대에서 지지세를 최대한 유지하자며 사소한 악재를 적당히 덮고 가는 조선일보가 윤석열의 또 다른 입이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바람대로 입연 윤석열, 재보선 변수되나]
[관련기사 : ‘정치인’ 윤석열 뒤에 아른거리는 조선일보]
[관련기사 : 4·7 재보선 메시지 들고 조선일보에 등장한 윤석열]
[관련기사 : 사퇴로 마무리한 이동훈 전 윤석열 대변인 진짜 문제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