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을 한 등이 훤히 보인 채 빈틈없이 몸에 착 붙는 보라색 원피스. 보란 듯이 카메라를 등지고 허리 위로 양손을 건 류호정 의원을 보며 실은 염려스러웠다. 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며 동영상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실리면, 옮겨 적기도 힘들 온갖 성희롱이 올림픽이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달릴 것이었다. 의정은 등한시하고, 주목받으려고 기를 쓴다는 비난도 뻔했다.

그런데 류 의원이 몰랐을까. 그는 도리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게 국회의원”이란다. 문신사법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다면 욕먹는 건 각오했다고. 20대 젊은 의원을 향해 어떤 비아냥이 쏟아질지 알면서도,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한 퍼포먼스였다. 이름만 대면 ‘우와’ 할 세계적인 스타들의 문신을 한 이름난 문신사지만, 의료법 위반으로 전과자가 된 김도윤 씨는 류 의원을 두고 “우리(문신사들) 대신 희생한 것”이라고 했다. 

나만 해도 류 의원의 퍼포먼스 이후에서야 문신사법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의사만이 문신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1992년 대법원 판례 이후로 우리나라에서 문신사는 범죄자다. 이렇게 문신사가 음지에서 영업하는 상황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데 이 불법적인 시술을 받은 국내 인구는 1300만명, 문신으로 생계를 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은 35만명이나 된다. 이미 대중화한 서비스가 여전히 불법이다 보니, 문신사들은 기껏 문신해 주고도 신고해 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고 한편 소비자는 마음 놓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테두리 밖에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 서비스를 양지로 끌어와야 하지 않나.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퍼포먼스 모습. 사진=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퍼포먼스 모습. 사진=류호정 의원 페이스북

그러니 이번 류 의원의 퍼포먼스를 두고 ‘의원답지 않다.’는 식의 비난은 두말할 것 없이 온당치 않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 대해서, 그는 의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그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훌륭하게 해냈다. 보라색 원피스를 보고 퍼뜩 염려부터 했던 나 같은 사람들조차, 그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결국에는 들여다보게 했다. 15년 이상 기약 없이 계류 중이던 법안을 헤드라인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의원이 하는 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2009년 미디어법 등 쟁점 법안을 두고 로텐더홀에서 주먹질을 주고받던 여야 의원들. 10년 뒤 같은 장소,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 검 경 수사권 조정 관련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매트리스를 깔고 드러누웠던 날. 그 밖에도 누구를 위해 뭘 말하려는지가 가려진 채 ‘소음’만 무성했던 의원의 일이 숱하다. 그에 비하면 류 의원은 잘 들리지 않던 ‘소리’를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반박 불가능한 ‘의원의 일’이었고, 품위로 봐도 의원의 것에 걸맞다. 

다만 기발한 방식으로 사람들 시선을 끄는 것도 매번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여성의 신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일이 반복된다면 진의가 오염될 테다. 그렇기에 그의 행보가 이대로 정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기성 정치인은 그를 본받아야 한다. 방식은 저마다 정할 일이지만, 어딘가에서 들리지 않게 고함치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의원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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