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가 7일자로 편집국 디지털뉴스편집부 발령(내근)을 받자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겠다”며 불복 의사를 밝혔다. 강 기자가 SNS에 인사발령 전후 상황을 알려 이목을 끌었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장하는 노동자 권리다. 이 법 52조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인사발령으로 인한 “정신적 재해”를 이유로 이 법 조항을 꺼낸 것이다.

경향신문은 “디지털뉴스편집팀에 배치하는 것이 산업재해를 초래할 만큼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강 기자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 열린공감TV에 출연하고 있는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사진=유튜브 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 열린공감TV에 출연하고 있는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사진=유튜브 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최근 오창민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사내에 강 기자가 발령받은 디지털뉴스편집팀 부서의 중요성과 결원 사실 등을 공지하며 “인사 업무 특성상 모든 구성원이 인사 결과에 만족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공동체 일원으로서 회사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 기자는 한 발 나아가 인사에 삼성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삼성 외압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본인이 현재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부와 삼성의 유착 의혹을 취재하고 있는데, 취재를 마무리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내근부서에 발령한 것은 취재를 막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삼성 외압 때문에 내근부서로 발령한 것이 아니라면 윤석열·삼성 관련 취재 활동은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강 기자 요구 사항이다. 

다만, 강 기자가 의심하는 ‘삼성의 압력에 의한 부당한 인사’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다. 삼성 임원이 강 기자에게 연락한 직후 경향신문이 본인을 불러 유튜브 ‘열린공감TV’ 출연 등 외부 활동을 문제 삼고, 종국적으로는 내근발령을 했다는 주장이지만, 그 이상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오 국장도 “사실무근이다. 이는 경향신문 동료들에 대한 부당한 음해”라며 “이를 SNS에 퍼뜨리는 것은 명백한 해사 행위”라고 비판했다.

양쪽 대립 이면에는 강 기자와 경향신문 구성원들 사이의 감정적 갈등과 상처도 자리하고 있다.

강 기자는 지난해 박재동 화백 성추행 의혹이 기획된 것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승인 없이 출고했다가 정직 1개월을 받았다. 경향신문 안팎으로 비판과 반발이 제기되기도 한 보도였다.

이후 강 기자는 경향신문 소속임에도 친여성향 유튜브 ‘열린공감TV’에 출연해 자신의 취재물을 공개했다. 경향신문 소속보다 ‘열린공감TV 기자’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조직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았던 것. 강 기자는 등기상 열린공감TV ‘지배인’이기도 하다. 방송에 단순하게 출연하는 출연진 그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강 기자는 7일 통화에서 “경향신문에서도 등기상 지배인이었던 적 있다. 지배인은 소송이 들어왔을 때 변호사를 대신해 소송을 수행할 수 있다”며 “열린공감TV는 영세한 언론인 만큼 소송에 함께 대응하는 취재연대 차원으로 지배인 등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기자는 열린공감TV 활동에 대해 “회사에 외부 활동 신고를 한 사안”이라며 “전임 국장 시절 열린공감TV에서 취재했던 내용을 먼저 경향신문에 몇 차례 보냈다. 4·7 재보궐 선거 때 ‘박형준 후보 자녀의 홍익대 입시 비리 의혹’, ‘윤석열 장모 100억대 LH 땅 투기 시세 차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은 이 기사들을 싣지 않았다. 12가지 항목에 걸쳐 취재 계획을 올려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경향신문 선수’로서 그동안 등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
▲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

강 기자는 “나는 취재 열의를 그만큼 보였지만 회사의 취재 지시는 없었다. 오 국장이 면담에서 열린공감TV 때문에 경향신문 활동을 등한시하는 거 아니냐고 해서 ‘경향신문이 기회를 주지 않아 동기부여가 안 된 것인데 오 국장이 그래도 관심을 갖고 기회를 준다면 내가 열심히 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윤석열 검증 기사나 관련 취재일지도 게시했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출고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이나 지면에 싣지 못할 만큼 기사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강 기자는 “내 기사에 하자가 있다면, 어디어디에 하자가 있다고 설명하고 보완 등을 지시·주문해야 했지만 회사의 취재 지시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열린공감TV 성향 때문에 회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열린공감TV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일반 시민기자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정치적 색깔을 드러낼 수 있다. 또 매체가 어떤 성향을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 기자가 참석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면서도 “열린공감TV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관한 여러 의혹을 공격적으로 제기했다. 이 매체를 친여 매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강 기자는 경향신문과 열린공감TV의 협업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자신의 제안에 오 국장이 한 달 후 성과를 보고 인사발령을 하겠다는 등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오 국장이 불과 이틀 만에 약속을 번복하고 내근부서 발령을 냈다는 것이 강 기자 설명. 강 기자는 인사발령이 강행되면 “어떤 정신적 재해가 발생할지 몰라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오창민 편집국장은 사내 입장을 통해 “작업중지권은 2018년 산안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것인데 주로 물리적 위험 상황에 대한 작업중지 요청”이라며 “편집국 디지털뉴스편집팀에 배치하는 것이 ‘산업재해’를 초래할 만큼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라고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다. 강 기자가 요구하는 작업중지권은 수용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강 기자의 2년 후배인 오 국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강 기자를 줄곧 ‘선배’라고 지칭했다. 그는 “강진구 기자는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기자이자 선배다. 편집국장을 해도 손색이 없는 선배”라면서도 “이제는 백의종군을 하셨으면 좋겠다. 당신이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는 것이고, 후배들에게 넘길 것은 넘겼으면 한다. 윤석열 검증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국장은 “강 선배가 서운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외부에 공표하긴 어렵지만, 강 선배에게 시간을 더 드리기 어려운 상황적 변화도 있었다”며 “무엇보다 강 선배가 외부에서 단독 플레이를 하시는데, 회사로서는 강 선배를 안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결원 등으로 인력이 부족하다. 강 선배가 이번 인사를 받아들이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 국장은 강 기자의 열린공감TV 활동에 “그 활동 자체가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오 국장은 강 기자 기사가 출고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다소 위험한 기사였다. 출고할 만한 기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정상적 판단에서 이뤄진 게이트키핑이었다는 취지다.  

오 국장은 윤석열 전 총장 검증에 대해 사내에 다음과 같이 입장을 남겼다. “윤석열 등 대선 후보들에 대한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편집국장을 비롯해 경향신문 구성원 전원이 뛰어들어야 할 일이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정치부와 사회부를 강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은 시스템으로 하는 것이다. 이 사안은 강 기자 개인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강 기자의 현재 보직은 노동전문기자다. 윤석열 검증이나 탐사보도는 그의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 조직을 운영하는 시스템상 한 개인에게만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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